【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하늘에서 소원하는 여러 가지가 정말 내려와

⑯ 소원의 비를 내리는 명지거사

2024-04-02     민재 스님

선재 동자와 보리는 대흥성으로 내려가면서 선지식들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복을 짓는 지,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존경하고 있는지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
특히 선재는 선지식들을 만나면서 모든 일들이 원만해짐을 알고 그들을 의지함으로 복이 생기며, 받들어 섬김으로 자비로운 심성이 자라고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깨달았다.
보리는 점점 말이 없어진 선재 동자가 조금 어려워졌지만 갈수록 오빠의 얼굴이 빛나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선지식들을 닮아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명지 거사는 대흥성 사거리에서 청정한 거위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꽃비가 내려왔다. 은은한 향기가 퍼지듯 오백 가지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만여 명의 관중들과 함께 듣고 있었다.
선재 동자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보리심을 깨달은 연유와 보살도를 어떻게 하면 잘 닦아서 일체중생의 의지할 곳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명지 거사가 말했다.
“착하고 착하다. 선재여! 보리심을 깨달았다는 것은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1)을 내었다는 것인데, 그러한 무상보리심을 내는 사람을 참으로 만나기 어렵도다. 그러니 선재는 능히 보살의 행을 구할 수 있고, 선지식을 만나는 게 항상 싫지 않으며, 그들을 존경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니라.”
선재는 두 손을 합장하고 예를 갖추어 마음 깊이 존경심을 표하였다.
이어서 명지 거사가 만여 명의 대중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대는 나의 이 대중을 보았는가?”
“예, 보고 있습니다.”“나는 마음대로 복덕이 나오는 창고의 해탈문을 얻었으므로 무릇2) 필요한 것은 다 소원대로 이루어지나니 저들이 지금부터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하늘에서 비처럼 많이 쏟아져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 말에 선재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보리는 하늘에서 소원하는 것이 비처럼 내려온다는 소리에, 무얼 빌어야 할지 수많은 생각이 짧은 사이에 오갔다. 눈을 감으니, 불현듯 엄마와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렸을 때 셋이 함께 사 먹었던 팥빙수가 생각났다. 하긴, 지난번 해주성 구족 우바이님의 집에서 밥 먹을 때도 너무 더워 시원한 망고 빙수를 먹고 싶었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옛날에 할머니는 보리의 집에 오시면, “보리야, 오늘은 내가 쏜다! 팥빙수 먹으러 가자! 그리고 치킨도 사줄게.”
“우와! 신난다. 엄마, 엄마가 진짜 사주는 거야?”
보리보다 보리 엄마가 더 신나서 할머니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다. 치아가 없어 틀니를 끼신 할머니는 평소 차가운 것을 싫어해도 팥빙수는 틀니 때문에 차가운 것을 느끼지 못하셔서 좋아했다. 팥빙수에는 깍두기 같은 인절미 서너 개와 알록달록한 젤리가 여러 개 얹혀서 나오는데, 유독 보리와 할머니는 인절미와 젤리를 서로 먹으려고 숟가락 싸움을 하며 장난치다가, 보리가 먼저 집어먹게 되면 할머니는 일부러 아주 슬픈 얼굴로 말했다.
“보리야, 할머니도 좀 줘.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일곱 살 무렵인가, 보리는 씹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결심한 듯 입속의 젤리를 쪼끔 떼어서, “할머니, 이거 꼭꼭 씹어먹어야 해. 그리고 아껴서 먹어.”
손바닥에 병아리 똥만 한 노란 젤리를 보고 엄마와 할머니는 아주 귀하게 받아먹으며,
“응, 응, 고마워. 꼭꼭 씹어서 아껴 먹을게.”
하면서 한바탕 웃었던 생각이 났다. 그땐 왜 그랬지? 지금 생각해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모여있던 대중들도 제각기 자신들의 욕망과 소원을 요청하였다. 그때 거사는 모든 대중들의 뜻을 알고 잠깐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보니, 정말 하늘에서 여러 가지가 소원하는 대로 내려왔다.
“야아, 나는 말이 필요하다니까 진짜 말이 내려오네!”
“나는, 소!”
“난, 맛있는 음식!”
“어어…. 나는 몸이 아파서 시중들 하인이 필요했는데 정말 하늘에서 내려오셨네. 아이고, 고맙습니다!”
“나는 수레를 달라고 했는데, 짜잔. 진짜 나타났다!”
“난, 약을 달라고 했어요.”
보리가 갑자기 소리쳤다.
“오빠, 오빠!”

 

삽화=서연진 화백

선재 동자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왜? 무슨 일이야?”
“파, 파, 파, 팥빙수!”
“팥빙수? 그게 뭔데?”
“얼음을 갈아서 눈 조각처럼 만든 데다가 달콤한 팥과 젤리를 얹어서 먹는 거야.”
“그럼, 네가 지금 들고 있는 게 팥빙수라는 거니?”
“응, 하늘에서 내려왔어!”
“어디 한 번 먹어보자, 무슨 맛 인지...”
“근데 숟가락이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럼, 네가 떠먹여 줘. 내가 입 벌리고 있을게.”
“알았어.”
보리는 처음에는 오빠 한 입, 저 한 입 먹다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재빨리 한 입씩 더 먹고 준다. 처음 먹어보는 시원하고 달콤한 맛에 선재동자가 보리의 손을 잡아챘다.
“너만 두 번씩 먹으면 어떡해?”
“빨리빨리 먹어야지, 안 그러면 다 녹는다 말이야.”
그러자 선재가 꾀를 내었다.
“그럼 떠먹지 말고 들고 마시자.”
오랜만에 팥빙수를 먹어본 보리는 얼굴이 빨개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중에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명지 거사가 모여있는 만 명의 대중들에게 부처님 법을 연설하였다.
“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제각기 욕망이 다르고 소원이 다르며 종류도 다 다르지만 모든 것들이 허공에서 내려와 모두의 뜻대로 다 만족하셨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부처님의 법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갖가지 복덕을 모으는 행을 하시고, 의복을 받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떨치고 청정3)한 모습의 부처님을 닮으십시오. 또한 좋은 약을 얻은 사람은, 나고 죽는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부처님의 해탈에 동참하십시오. 소나 말, 수레를 얻은 사람들은 빈곤함을 없애고, 마귀와 원수를 항복 받는 공덕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선재 동자가 보리와 팥빙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명지 거사는 밝은 지혜의 눈으로 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갖가지 좋은 맛을 얻어 기분이 좋아진 사람은 부처님의 법! 맛 좋은 법 맛을 얻어 가십시오.”
보리가 오빠에게 얼른 한입 먹게 한 뒤, 나머지를 홀딱 마시고 입을 닦으며 물었다.
“부처님의 법 맛이 뭐지? 그걸 어떻게 얻어 가?”
“부처님 법은 생사윤회4)를 벗어나기 위한 진리의 말씀이야.”
“생사윤회? 그 어려운 말이 어떻게 맛 좋은 거야?”“아이고, 골치가 아프네.”
보리가 얼굴을 찡그리는 선재를 보고 팥빙수 때문에 삐졌나 싶어 슬쩍 눈치를 본다.
“왜에?”
“그냥, 보리 너는 착하고 바르게 잘 살면 부처님 밥이 맛있을 거야. 팥빙수 조금 준 것은 나에게 사과하고...”
명지 거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역시 오빠가 생각이 깊구나. 나는 저 만 명이 넘는 대중들에게 그들이 요청하는 바를 다 들어준 뒤, 발심을 내어 부처님의 법을 알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부처님의 품 안에서 한없이 평화롭고 자비심으로 그들의 생사고해5)를 없애는데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일체중생을 구호하고 모든 이들이 밝은 지혜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제서야 부처님께 감사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서 그들의 길을 가게 되는 거야.”
“오빠, 아뇩다라삼먁...”
보리가 명지 거사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그 말은 부처님 법을 깨우치는 거야, 깨달음.”
명지 거사가 선재 동자에게 손을 들어 축복을 주며 말했다.
“착하고 착한 선재야, 나는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를 나타내 보이려고 대중들에게 복덕의 창고를 열었다. 또한 자유자재6)한 힘으로 모든 살림살이 도구를 비처럼 널리 널리 내리게 하여, 그들을 만족시켜주고 대신 법문을 통해 일체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공양을 깨닫게 한다. 이것은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필요하지만, 강을 다 건너고 나면 뗏목이 필요 없고, 절벽을 오를 때는 사다리가 필요해도 다 올라가면, 사다리를 거둬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하지만, 나도 부처님의 모든 공덕과 자제한 신통력의 힘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선재야, 여기서 더 남쪽에 있는 사자궁에는 ‘법보계’ 라는 장자가 살고 있으니 그에게 ‘보살의 행’과 ‘보살의 도’를 어떻게 닦는지 물어보아라.”
선재는 명지 거사에게 그를 만난 기쁨과 한없는 존경심으로 극진히 예를 갖추어 절을 올리며 생각했다.
‘명지 거사님은 나를 인정해 주시고, 일체 지혜의 길을 밝게 볼 수 있는 자유자재한 힘을 주셨으니 나도 선지식을 존경하고 가르침을 항상 따르고 섬겨야겠다.’
환희심에 불타올라 선재 동자는 아직도 팥빙수의 달콤함에 빠져 아욕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이해 못 한 보리의 손을 잡고 힘차게 남쪽으로 향한다. 

-2022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입상자

【각주】
1) 깨달음의 최고의 경지.
2) 헤아려 생각하건대.
3) 맑고 깨끗함.
4) 살고 죽는 것이 수레바퀴처럼 계속 도는 것.
5) 죽고사는 것의 윤회가 끝이 없음이 바다와 같다는 말.
6) 거침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