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경 칼럼> 무더위 속의 오행(五行)
2006-07-21 한국불교신문
만물의 생성·변화·소멸을 설명하는 ‘오행설’(五行說)은 사람의 손가락 수 ‘5’에 맞춰 선정한 5가지 즉 ‘민용오재’(民用五材)에서 나온 것이었다. 행(行)은 운행, 서경 홍범편에는 삶에 가장 필수적인 수화(水火)로 시작하여 목금(木金)을 거쳐 그 기반이 되는 토(土)로 끝나는 생성오행(生成五行)이 언급돼 있지만, 전국시대 음양가 추연은 토목금화수(土木金火水) 즉 뒤에 오는 것이 앞의 것을 이기는 오행상승(五行相勝)을 주장했었고, 예기 월령편에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즉 앞에 있는 것에서 뒤에 있는 것이 생기는 오행상생(五行相生)이 기술돼 있다. 이를 종합하면 화(火)는 목(木)에서 나와 토(土)를 만들어내고 수(水)에 의해 소멸된다. 낮이 길어 빛이 충만하고 열(熱)이 많은 여름은 오행상 ‘火’, 한자 ‘火’는 타오르는 불꽃을 형상화한 것, 불은 ‘연소에 의해 빛과 열을 발하는 상태’, 심을 예(藝) 밑에 불 화(火)가 깔려있는 더울 ‘熱’은 ‘더운 느낌의 본원’을 표현한 것으로서 사람의 몸과 관계가 깊다. 건강한 때의 사람의 체온을 ‘평열’(平熱)이라고 했고 체온이 높아지는 병은 ‘번열’(煩熱)이라고 했다. 영어 ‘heat’도 마찬가지다. ‘heat’는 ‘hot’이 변형된 것으로서, ‘hot’의 뿌리를 더듬어보면 고대고지게르만어 ‘heiz’ 고대노르웨이어 ‘heitr’ 고트어 ‘heito’ 등이 나오는데, 모두 사람의 몸보다 덥다는 의미였었다. 그래서 지금도 웹스터사전은 ‘hot’의 풀이 중 “having heat in a degree exceeding normal body heat”를 맨 앞에 달아놓고 있음을 본다. 사람의 정상체온은 섭씨 36.5도 화씨로는 98도 정도, 의학적으로도 그 이상을 넘어가면 고열로 간주된다. 요즘 그게 어떤 것인지 뼈가 흐느적거리도록 체험하고 있다. 폭염으로 뉴욕시내가 펄펄 끓어 거리에 나서면 찐빵집 솥 안에 들어앉은 것처럼 푹푹 찐다. 어제 기온이 화씨 100℉에 육박한 데 이어 오늘은 화씨 104℉에 달하면서 체감온도가 화씨 110℉에 이를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얄밉도록 정확하게 들어맞아 되레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코리아타운의 냉면집이 북적거리고 냉방기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무더위의 주범으로 지구온난화가 꼽히고 있지만 그게 북극권의 불모지 그린란드에서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에는 뒤통수를 긁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빙산이 녹아 내린 자리에 새 초지가 형성되어 지난 1980년대 620 에이커에 불과하던 경작지가 현재는 2천500에이커로 늘어났고, 포플러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는가 하면, 사상 처음으로 백조가 찾아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기온이 상승해주기만 한다면 조만간 딸기와 사과 같은 과일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화(火)에서 나온 열(熱)이 냉면과 냉방기의 냉(冷←氷←水)에 의해 꺾여지고 그린란드에 땅(土)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오행(五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상극(相剋)도 순서를 바꾸면 상생(相生), 생성한 것은 소멸하고 소멸한 것은 다시 생성되므로, 무덥다고 짜증만 낼 게 아니라 이 또한 천지간 만물의 변화로 간주하여 순응하는 게 보신하는 지혜이리라. <제458호> 0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