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이차 이야기
2006-07-03 김미숙
김옥기(뉴욕 스페이스월드관장) 천자만홍 (千紫萬紅),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길목이다. 고운 색깔의 옷을 입은 꽃들과 연초록의 나무와 풀들이 아름답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하다.사람이 내는 욕심은 털끝만치도 없는 자연. 그 자연을 닮고 싶어서, 그간 세상 먼지 뒤집어 쓴 마음을 조금치나마 순화시키고자 차를 열심히 마셨다. 차의 색과 향을 음미하면서 마음 비우기를 배우고 있는 터이다. 차를 우려 마신 후 남는 잎이 아까워 초고추장에 찍어먹거나 나물로 무쳐먹기까지 했다. 그렇게 차 마시기를 즐겼다. 모두가 지리산 수제차 우전이다. 이렇게 한국 차만 마셔왔는데, 최근에 엉뚱한 바람이 들었다. 지난 번 한국에 나갔을 때 경주의 동국대 교수인 화가 김호연씨를 만났다. 그는 뉴욕 주립대학서 교환교수로 잠시 있었고, 스페이스 월드에서 전시를 한 바 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이 부인 이지은씨가 운영하는 전통 찻집 ‘능포다원(陵浦茶園)’. 사람 좋은 남편 김교수가 매일 데리고 오는 손님들 뒷바라지로 긴 세월 힘들게 살면서 아이 학교 데려다 줄 때 틈틈이 배운 다도가 고도 경주의 한 가운데에 옛 정서를 가득 담은 전통찻집을 내게 했다. 남편은 반대를 했는데, 반대하는 남편의 친구들이 도와줬다고 한다. 자그마한 옛 한옥에 꾸민 찻집은 예뻤다. 한양대 조세환교수의 조경, 건축가 손병문씨, 그리고 화가인 남편 김교수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예술품이다. 들어가는 입구를 대나무와 아주 작은 연못과 평상이 있는 정원으로 꾸몄다. 작은 세 개의 방은 고가구와 함께 김 교수의 작품이 벽 여기 저기 걸려 있고, 방바닥에는 통나무로 만든 차상 하나에 다기들이 놓여있다. 진열장에는 알 수 없는 많은 차들과 다기들이 나열되어 있고. 거기에서 찻집 주인 이지은씨가 내 온 차는 발효차인 중국의 보이차다. 복부의 지방을 분해하며 몸을 덥게 해주는 역할의 이 차가 뚱뚱해져 가는 나에게 딱 좋은 차라고 말했다. 김교수가 아주 오랫동안 이 보이차를 마셔서인지 매일 술을 마셔도 끄떡없다고 덧붙인다. 그녀는 나에게 한 열 잔도 넘게 마시게 하더니 손바닥 서너 개는 됨직한 크기의 둥근 보이차 덩어리 하나를 싸준다. 1년은 마실 터이니, 이 차를 다 마시면 배가 쑥 들어갈 것이라며... 도자기나 가구를 봐도 중국의 것에는 친근감을 갖지 못했었다. 차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중국의 보이차가 몸에 그렇게 좋다는 말을 했어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중국차라니. 차를 타거나 출퇴근 중에도 마시라면서 그녀가 차를 우리기도 하고 간수하기도 할 수 있는 마호병까지 정성껏 싸 주었다. 나는 그녀의 그 정성과 함께 살이 빠진다는 유혹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들 부부가 나의 건강을 위해 떼 맡기듯 싸 준 그것들을 갖고 온 나는 이왕 보이차를 마실 바에는 꼭 갖고 다니면서만 마실 게 뭐 있냐,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도 우려 마셔야지, 하면서 보이차 다기를 갖고싶은 욕심이 슬며시 생겼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다도가 붐이 일어나면서 자신도 다도를 배우고 차를 마시게 됐단다. 그런데 다도에 매력을 느끼고 점점 깊이 들어가자 이 차가 좋다, 저 차가 좋다 하면서 여러 종류의 비싼 차를 사게 되고 다기도 좋은 것에만 눈길이 가면서 자꾸 사들이게 되더란다. 결국에 다도를 하면서 돈을 많이 쓰게 됐다는 얘기다. 아마 나도 그렇게 될 조짐이다. 꼭 고미술에 잠시 빠져있었던 때와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보이차의 다관을 자사호(紫沙壺)라 하던가. 일반차의 다관과 다르게 특수제작이 됐다 하니 보이차를 마시려면 그 다관이 필요하다. 인사동 보이차 전문 집을 기웃거렸다. 앙증맞게 생긴 황토색 다관이 보인다. 저 다관을 하나 사리라 마음먹고 있는데, 35년쯤 전인가 신문사에 함께 근무하던 김인수씨가 나타났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가 소슬다원으로 데려가더니 가장 초보적인 보이차 다기세트를 안겨준다. 차 전문가로서 사업을 하고있는 집주인 오영순씨가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천량차를 비롯하여 20년 된 맹해청병, 18년 된 하관차장 행차, 11년 된 봉경차장과 이무차 등 여러 종류의 보이차를 맛보게 해줬다. 화장실을 몇 번씩 들락거리며 그녀가 주는 대로 보이차를 받아 마시면서 보이차 공부를 한 것이다. 처음 만난 그녀에게 친근함이 느껴졌다. 돈으로 따지면 꽤 많은 값의 차를 마셨을 것이다. 약간씩 다른 맛의 보이차를 마시면서 나는 뜻하지 않게도 서서히 중국차도 마시는 사람으로 되어갔다. 뉴욕에 돌아온 후에 나는 먼저 보이차를 우려 마셨다. 기름기를 많이 먹는 중국인들이 몸의 지방을 제거하는데 최적의 차로 사용한다는 보이차. 나는 그 차를 살을 빼는 약쯤으로 여기며 열심히 마셨다. 내가 항시 마시는, 마음을 잔잔하게 해주고 향과 맛을 즐기면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우전차와는 아주 다른 향과 맛인데도.정말 이 손바닥 서너 개 크기의 보이차를 1년쯤 마시고 나면 나의 헛살이 좀 빠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