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人和 없으면 미래도 없다

이운산 / 본지 발행인·태고종 총무원장
人和 없으면 미래도 없다
장마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장마가 끝나면 이제 폭염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장마의 무더위에 이어 삼복더위로 고역을 치러야 한다.
더위는 확실히 괴롭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자유스럽지 못하게 만든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섭씨 3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날씨의 온도는 대개 40℃까지라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머리가 몽롱해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기상학계의 보고다. 중국에서는 이미 지난 6월부터 40℃를 오르내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도 그 위험수위를 점차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더위는 8월에 그 절정을 이룬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 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더위에 가장 괴롭고 자유스럽지 못한 계절인 것이다. 고통과 부자유스러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흔히 해방이라고 한다. 바캉스는 더위로부터의 해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바캉스가 지금 한창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강마다 바캉스를 즐기는 인파들로 만원이다.
내달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념일이다. 금년으로 그 60주년을 맞는다. 우리 민족은 무려 36년 동안이나 일본의 침략과 식민정책으로 인하여 온갖 고통을 당하고 또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한 질곡의 역사가 있은 후에야 8·15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우리가 뜨거운 태양과 폭염에 시달리는 8월에 해방을 맞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일제의 식민정책은 8월의 무더위보다도 가혹했고 그 폭정은 족쇄보다도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도록 구속을 했다. 그러한 고통과 부자유로부터 벗어난 지가 꼭 6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지금 고통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는 지금 또 다른 구속과 걸림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금전과 물질에 구속되어 있다. 그리고 기계와 정보화에 구애 를 받고 있다. 금전과 물질만능의 사조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또 기계와 정보기술은 나만의 편리를 추구하는 또 다른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이기심과 이기주의가 만연이 되고 팽배하자, 나에게 이익만 되면 남의 발을 거는 것은 일도 아니고 내 마음이 좀 편치 않으면 동료의 등에 대고 총기를 난사하는 일도 서슴치를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금전과 물질만능에 의한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또 다른 고통과 부자유로움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구속과 고통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제2의 해방을 모색하고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금전과 물질보다는 인간을 중시하고 존중하며 기계와 기술에 의한 나만의 편리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위할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이타정신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제2의 해방을 구가할 수 있다.
모든 사상(事象)은 인연에 의해 생성하고 변화한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 주위와의 인연에 의해 그 존망이 성립되고 결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과 이웃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내 이익, 나의 편리함만을 고집하고 추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위한 또 다른 이기주의라 할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생존의 원리인 바에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잘 어울려야 잘 살 수 있다. 잘 어울린다는 것은 서로를 위하여 인연을 잘 맺는다는 것이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고통과 구속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잘 어울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긍정하고 존중하고 또 위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또 인화(人和)라 한다. 인화는 화합이기도 하다. 개인생활 뿐 아니라,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이 인화는 절대 필요하다. 만일, 인화가 없다면 그 조직·단체는 발전은커녕 그 존립마저도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인화가 제일이다. 옛 사람 가르침에 ‘하늘이 준 이로운 시기도 땅의 이익만 같지 못하고 땅의 이익일지라도 인화만 같지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란 말이 있다. 이도 인화가 제일이란 의미인 것이다.
인화는 위아래와 앞뒤의 호흡이 잘 맞고 호응이 잘 되어야만 이루어진다. 위아래가 어긋나거나 앞뒤가 서로 호응하지 못할 때는 인화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불교설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뱀 한 마리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뱀의 꼬리가 머리에게 말했다.
“머리야, 그 동안에는 네가 앞을 서서 가고 나는 언제나 뒤만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앞을 서서 가자.”
머리가 말했다.
“그건 안돼.”
꼬리가 말했다.
“왜 안 된다는 거야. 나도 앞을 서서 가고 싶은데.”
“꼬리에는 앞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잖아. 그러니까 위험해서 안돼.”
“그래도 이제부터는 내가 앞장을 설 거야.”
그렇게 말한 꼬리는 꼬리를 나무에 감아버렸다. 머리가 아무리 앞으로 나가려해도 꼬리는 꼬리를 풀어주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머리는 할 수 없었다. 꼬리에게 양보를 하는 수밖에.
“그럼, 꼬리 네가 앞으로 가봐.”
머리가 이렇게 말을 하자, 꼬리는 신이 났다. 그래서 그제야 꼬리를 풀고 앞으로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꼬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가시덤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그 가시덤불을 빠져 나오자 뱀의 온몸은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또 얼마 가지 않아서는 그만 불구덩이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 묻지 않아도 가히 알만한 일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과거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부자유스럽게 만들었던 이기심과 이기주의에 의한 일체의 시비와 불신과 시기와 다툼 그리고 고집과 아상을 불식하고 인화를 이뤄야 한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껴안으며 또 감쌀 줄을 알아야 한다. 상하와 선후가 서로 호흡을 맞추고 호응을 이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 같이 살 수 있는 미래가 있다.
지금은 그것을 실천할 때다. 이의 실천은 무더위를 덜어주는 해법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인화가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