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茶禮)에는 반드시 차(茶)를 올려야"
2006-09-28 한국불교신문
법현스님 '명절 차례 특강 및 시연 법회'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추석이나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낸다. 누구나 늘 지내는 차례이기에 별 생각 없이 지내지만 차례만큼 잘 모르는 것도 없을 성 싶다. 차례는 국어사전에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 보름, 또는 그 밖에 명절이나 조상 생일 등에 지내는 간단한 낮 제사' 라고 나온다.이런 의문을 풀고 뜻깊은 명절을 보내기 위해 열린선원 (선원장 법현스님, 태고종 사회부장)에서는 9월 26일 명절차례에 대한 바른 의미와 의식에 대한 특강을 마련했다. 법현스님의 도움 말씀으로 차례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1.차례(茶禮)란 무엇인가? 차례의 본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 역사 기록을 참고하면,『삼국유사(三國遺事)』「표훈대덕(表訓大德)」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경덕왕(景德王)이 즉위한 지 24년 되던 해(765) 삼짇날(음력 3월 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랐다. 왕이 능력 있는 스님을 데려오라 하자 위의(威儀)를 갖춘 큰스님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왕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내쳤다. 다시 스님 한 사람이 납의(衲衣)를 걸치고 앵통(櫻筒) 혹은 삼태기를 걸치고 오는 모습을 보고 기쁜 표정으로 누상으로 인도했다. 왕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충담(忠談)이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삼화령(三花嶺)에서 오는 길입니다." "무엇하고 오시었소?" "저는 매년 3월 삼짇날과 9월 중양절이면 차를 달여서 삼화령의 미륵 세존(彌勒世尊)님께 드립니다.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한 잔 주겠소?" "물론이지요."스님이 차를 달여 왕께 드렸는데 맛이 신묘하고 그릇 속에 향기가 그윽하였다. "내 듣건대 스님이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노래가 뜻이 깊다는데, 나에게도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살 노래를 지어줄 수 없겠소."스님은 그 자리에서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임금은 아버지이고신하는 사랑을 하실 어머니요,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할지면백성은 그 사랑을 알리라.꾸물거리는 물생(物生)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면나라 안의 유지됨을 알리라.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나라 안이 태평하리라. 그것이 다도(茶道)의 비롯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러 자료에서 충담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모두들 '다도(茶道)' 또는 재주 예자를 써서 '다예(茶藝)의 효시'라고만 했지, 예도 예자를 쓴 '차례(茶禮)'에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부처님께 차와 향을 올리고 절하는 것을 예불(禮佛)이라 하는 것처럼 충담스님의 그것도 차례라고 불러야 하리라. 그리고 충담스님이 중요하고 좋은 날 부처님께 차를 올리고 나서 다른 일을 했듯이, 모든 후손들이 모여서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나서 다른 일을 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가 차례이다. 2.차례에 술 또는 물을 쓰게 된 연유 그런데 왜 차례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차는 어디로 가고 술만 쓰고, 차례의 종가인 불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게 되었을까?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이념 때문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조오례의〉등의 기록에 의하면 종묘제례와 중국, 일본의 사신에 대한 다례 등 빈례(賓禮)에 차를 사용한 것이여러 번 나오므로 차례는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제 차의 사용이 줄게 되었을까?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피폐해지고, 차가 기호식품으로 양반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수탈이 심해지자 농민들이 차밭을 태워버리기도 하였다. 특히 임란 때 차 도자기 굽는 도공들을 다 끌어갔기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해서 영조(英祖)임금이 왕명으로 '귀하고 비싼 차 대신 술이나 뜨거운 물 즉 숭늉'을 대신 쓸 것을 지시한 후부터 차례에 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차례에 차가 빠지고 대신 술이 쓰이게 된 것은 사회, 경제적 이유에서 영조 때부터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의 차례에는 이름에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 대신 술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고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반인의 뇌리 속에 차 없는 차례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국화 없는 국화빵이요, 붕어 없는 붕어빵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3.불교식 차례지내기-위패쓰기와 상차리기 위패와 상차리기도 전 국민이 고민하는데 정신만 바로 알면 문제가 없다. 일반 가정에서 위패(지방)를 쓸 때는 관직이 없는 아버지의 경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어머니의 경우는 '현비유인(본)(관)(성)씨신위(顯孺人本貫姓氏神位)'로 쓴다. 유인은 본래 종9품 벼슬을 한 이의 부인을 일컫는 내명부의 직위인데 돌아가신 분께는 올려서 쓰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아버지의 보기를 들면 '선엄부(본)(관)(성)공(이)(름)영가(先嚴父本貫姓公이름靈駕)'라고 쓴다. 아주 더 불교적으로 하면 ‘선엄부 청신사 본관 성공 이름영가’라고 할 수 있다. 이름대신에 법명을 자주 썼다면 법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차례상은 각 가정에서 준비한 대로 차리되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정신에 따라 고기와 생선은 가급적 덜 쓰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순서는 유가에서 홍동백서(紅東白西)니, 두동미서(頭東尾西)니, 조율시이(棗栗柹梨)니 하는 원칙을 이야기 하지만 조상님이 맛있는 것부터 잡수기 좋도록 진설하면 된다. 홍동백서와 조율시이는 원칙이 서로 어긋난다. 양식집에 가서 전식(에피타이저)을 먼저 먹고, 본 음식 먹고,후식(디저트)을 먹듯이 조상님이 잡숫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하는 순서대로 진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 자손들이 먹지 않는 것을 모양내듯이 진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외국 농산물 안 쓰기는 애국심의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상님께 드려서 좋은 것이라면 국내산, 외국산을 가릴 것이 아니다. 다만 요즘은 국내산이 질이나 보관 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에 국산을 애용하자고 해야 한다. <백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