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불교대학> 계초심학인문(5)
2006-07-21 한국불교신문
非六日이어든 不得洗浣內衣하며 臨盥漱하야 不得高聲涕唾하며육일이 아니면 내의를 빨지 아니하며, 세수하고 양치질 할 때 높은 소리로 코를 풀거나 가래침을 뱉지 말라. 非六日비육일(非六日)이어든 부득세완내의(不得洗浣內衣)라는 말의 의미는 육일이 아니면 내의를 세탁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여기에서 말하는 육일은 6일, 16일, 26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육일은 육재일(六齋日)을 뜻합니다. 육재일은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 그렇게 한 달에 여섯 날을 육재일이라고 합니다.6일. 16일. 26일을 육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8일, 14일, 15일이 있지요. 23일, 29일, 30일은 후반부에 들어 있습니다. 한 달을 둘로 분할해서 상반부에 3일, 후반부에 3일이 들어 있습니다. 이 6일을 육재일이라고 하는데 6재일의 6을 여섯으로 이해해야 제대로 된 해석입니다. 不得洗浣內衣내의를 세탁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입니다. 내의를 세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승가는 사시에 하는 공양(供養)을 재(齋)라고 합니다.정오를 넘기기 이전에, 공양하는 것을 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시에 하는 공양 시간 이전에 빨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지요. 최근으로 들어서는 전혀 지키지 않는 규정입니다. 지켜지지 않으나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요즈음에는 내의도 많을 뿐더러 땀이 많기 때문에 수시로 세탁을 합니다. 물론 아침 이른 시간에도 세탁을 하지요.보조스님이 수선사에 주석하시며 계초심학인문을 쓰실 무렵에는 육재일을 지켰겠지요.보조스님이 수선사에 주석하실 무렵에는 무신들이 고려 왕실을 좌지우지 할 때입니다. 임금은 이름만 임금이요, 모든 권력은 무신들로부터 나올 때입니다. 최씨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이거든요. 거기에다 몽고로부터 외인부대들이 내려 와 있었기 때문에 안팎으로 굉장히 어려울 때였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어려웠겠지요. 보조스님이 이 글을 썼을 때는 스님의 나이가 48세였습니다. 최씨 무신 정권에서는 수선사(修禪寺)만은 특별히 보호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수선사만 편안하게 지내서는 안되겠다는 의도에서 이러한 규범을 정한 것입니다. 경제는 물론이요 생활 그 자체가 상당히 어려울 때였기 때문에 세탁을 자주하지 말자고 한 것입니다. 되도록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으로 이런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보조스님께서 6재일을 당신 마음대로 정한 것은 아닙니다. 6재일은 보살들이 곤충을 제도하는 날이기 때문에 6재일을 정해서 세탁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익은 더 준다는 뜻입니다. 또 담아준다. 밥을 떠서 드린다. 더 담아 드린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죠. 우리말로는 진지한다고 합니다.부득당돌월서(不得搪突越序)는 당돌하게 차례를 건너뛰지 말라는 것입니다.승가의 서열은 계를 중심으로해서 정해집니다. 따라서 계를 먼저 받은이는 윗자리에 앉습니다. 먼저 수계를 한 사람이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늦게 승가에 들어와 계를 늦게 받은 이는 아랫자리에 앉아야만 서차가 바로 섭니다. 따라서 계를 먼저 받은 사람은 윗자리에 낮게 되는 것이며 계를 늦게 받은 사람은 당연히 아랫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계를 늦게 받은 사람이 계를 먼저 받은 사람보다 윗자리에 앉게 되면 순서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순서를 어기는 것이 월서입니다. 行益次 不得搪突越序 행익차(行益次)에 부득당돌월서(不得搪突越序)는 음식을 돌릴 때에 차례를 건너뛰지 말라는 것입니다.진지할 때, 의당 차례를 키켜야 합니다. 어간 스님부터 차례대로 진지를 돌려야지, 거꾸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서차를 무시하고 건너 뛴다거나 자기하고 친한 사람한테 먼저 간다든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식당에서 진지할 때 반드시 서차를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經行次 不得開襟掉臂 경행(經行)은 아픈 다리의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 가볍게 거니는 것을 말합니다.범어로 <비하라>라고 합니다. 인도는 습기가 많은 지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도 블록 같은 것을 깔아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식사 후에 가볍게 거닐도록 합니다. 아니면 앉아서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거나 다리가 아프거나 할 때 가볍게 운동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졸음을 쫓거나 불편한 다리의 근육을 풀기 위해서 가벼운 운동을 실시합니다. 포행이라고도 합니다. 경행을 우리말로 옮기면 거닌다는 뜻이 됩니다. 목적 없이 그냥 거니는 것이 아니라 화두를 타파하고자 공부를 계속하면서 일정하게 왔다 갔다 하는 운동을 경행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범어로 <비하라> 라 합니다.부득개금도비(不得開襟掉臂)는 옷깃을 풀어 헤치거나 팔을 흔들지 말라는 것입니다.덥다고 해서 옷을 풀어 헤치지도 말고 경망스럽게 팔을 흔들며 걷지 말라는 뜻입니다.왜냐하면 스님은 스님으로서 가지는 특별한 몸가짐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승행(僧行)이라고 합니다.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몸가짐이 따로 있을 것이며, 군인은 군인으로서의 몸가짐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스님도 역시 스님으로서의 몸가짐이 있지 않겠습니까. 출가를 해서 도를 공부하는 스님이 되었으면 당연히 스님들이 하는 몸가짐을 가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세속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덥다고 해서 옷깃을 풀어 헤친다든지 도량을 거닐면서 거칠게 팔을 내젓는 다면, 그것은 스님들 몸가짐에 맞지 않는 보행일 것입니다. 어떻든, 경행할 때의 규정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거니는 것입니다. 도량을 걸어다닐 때, 단정하게 다녀야지 함부로 몸가짐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言談次 不得高聲戱笑 상대방과 대담을 나눌 때 높은 소리를 지르거나 희롱하는 웃음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말하는 모습도 수도인 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인들처럼, 큰소리를 지르거나 희희낙락 해서는 수도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말할 때도 높은 소리로 하지 말고 웃음을 지을 때도 희소가 아닌 미소를 지으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이익이 되는 말을 하돼, 사리에 맞도록 조용 조용히 말해야 된다는 뜻입니다.非要事어던 不得出語門外하며 有病人이어던 須慈心守護하며 見賓客이어든 須欣然迎接하며 逢尊長이어든 須肅恭廻避하며 辦道具하되 須儉約知足하며,요긴한 일이 아니면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병자가 있으면 자비심으로 간호하며, 손님이 방문하면 반갑게 영접하며, 큰스님을 만나게 되면 공손하게 비켜 서야하며, 도구를 마련할 때에는 검약하게 하되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非要事어든 不得出於門外하며요는 ‘중요할 요’입니다.긴요한 일이 아니면 부득출어문외하라.긴요한 일이 아니면 산문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문은 통제소를 말합니다. 매표소까지 산문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문밖은 산문 밖으로 봐야합니다. 산문 밖에 나가지 표현은 동구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매표소 밑으로 내려가면 마을이 있으니까 중요한 일이 아니면 마을로 나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有病人이어든 須慈心守護하고질병을 앓는 사람이 있거든 수자심수호(須慈心守護)하고,자심은 앞에 나오는 자심상향의 자심하고 마찬가지 입니다. 자비심의 준말입니다.요즈음에는 간호라고 하죠.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간호를 해주라는 말입니다.부처님은 걸식을 안 나가실 때는 도량을 향상 살폈습니다. 도량을 살피다 보니 한쪽 모퉁이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문을 열어 보니 끔찍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노비구가 대소변을 방안에다 보아 놨지 않았겠습니까. 그 광경이 너무 끔찍해서 부처님이 손을 걷어 부치고 말끔히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를 하시고난 부처님은 비구의 이마를 만지면서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병이 차도가 있게 만들어 주심과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해 주셨습니다.“너는 어째서 너를 간호해 주는 사람이 없느냐?” “예 얼마전까지는 저를 잘 간호해 주는 도반들이 있었습니다. 하온데 제가 병이 중해지니까 다 저를 버리고 도망을 갑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이렇게 됐습니다.”부처님이 그 말을 들으시고 다시 물었습니다.“네가 건강했을 때 병이 위중한 사람을 간호해 준 적이 있느냐?” “아닙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해 병을 간호해 준 적이 없습니다.”“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을 안 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너를 위해 애를 써서 열심히 간호를 해주었겠느냐?”부처님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출가를 결행한 사람들입니다. 가문도 다르고 성도 다르지만 우리는 한 목적을 위해서 사는 수행자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 아끼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아껴 주겠습니까? 도반이 아프면 자기 일처럼 간호를 해 주기로 합시다.”<제458호> 0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