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그 변화와 전망

2006-03-09     한국불교신문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정보화는 미래세의 변화와 그에 대한 전망을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포인트를 전환한 현대인들은 <경험의 가치>와 <감정의 가치>를 재정립하여 신선하고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를 창안하고자 한다. 시대적인 기류의 변모에 주의를 기우리며 관점과 논리체계가 전환되어 가는 21세기에 적응하고자 고정관념을 씻어낸다. 급격한 사회변동이 동반된 문명의 전환기에 한국불교는 불확실한 진로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어떠한 변화를 모색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차적으로 해야될 일은 현대인들이 체계화한 <삶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일이다. 현대세계는 <관점의 논리화>를 통한 체계화된 세계관을 기대(基臺)로 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정립한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숙지해야 한다.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알지 못하면 현대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20세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분법적인 카테고리를 적용하거나 세간을 경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현대인들 곁으로 다가서기 어렵다. 현대인들이 갖춘 <삶의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모른 채 생명의 창발성(創發性)을 발휘하지 못하면 역동적인 포교활동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물리학이 리드하는 오늘의 세계관은 역학체계와 부분의 패러다임에 기저를 둔 기계주의적 세계관이다. 불교의 세계관은 전체와 부분이 상즉상입하고 보편성과 특수성이 원융회통하는 유기체주의적 세계관이다. 물론 이 두 세계관은 서로 상대적이다. 중생을 제도해 나가야 되는 입장에 서 있는 불교 지도자들은 정상과학과 기계주의를 도외시하면 세계와 존재에 관한 설명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문화 창조의 주류층에 접근하여 그들과 함께 섞이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숙지해야 한다. 지식인과 비불교인들에게 불교를 전도하기 위해서도 현대세계의 관점과 논리체계를 숙지해야 한다. 본지는 21세기 초입에서 맞이한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불교의 당면과제는 무엇이며, 불교의 변화가 요구된다면 어떻게 변화를 모색할 것이며, 앞으로의 진로를 어떤 방향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정담(한국불교, 그 변화와 전망)을 통해서 짚어 보았다. <편집자주>
-----------------------------------------------참석자윤자월 스님(행정부원장)문보경 스님(교육부원장)우혜공 스님(재정부원장)-----------------------------------일시 : 2006년 3월 6일 월요일 오전 11시장소 : 총무원 회의실--------------------------------------
▲자월스님 : 세기 초에 발발한 사회변동과 수많은 문제들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패권주의의 팽창, 미국문화의 창궐, 세계주의의 지향은 자유 정의 평화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현상을 비롯하여 기독교와 회교의 문명충돌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합니다. 팍스아메리카나에 기저를 둔 세계화는 미국문화 콘텐츠의 창궐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강대국의 파워플레이에 짓눌린 약소국 국민들의 삶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삶의 도구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인류가 추구하는 자유, 평화, 정의는 침해받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극심한 빈익빈부익부와 종교간의 갈등은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합니다.현대 문명의 지배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배금주의요 둘째는 컴퓨터에 의한 메카니즘입니다. 기계주의적 메카니즘은 세계주의를 부추겨 정보산업을 일으켰다는 측면도 있지만 인간적인 삶의 현실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언론매체의 지배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적 정황 속에서 불교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자기유지능력을 함양할 것이며 어떠한 설명체계를 원용하여 대중들에게 창의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보경스님 : 이 시대의 맹점은 한 마디로 자비사상의 해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명예도 얻고 부도 축적하기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다툼을 벌이고 생사를 가르고자 극열한 대결을 벌입니다. 따지고 보면 패권주의나 극열한 투쟁도 역시 지나친 자기 욕망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확장된 욕망에 의해서 다툼과 파벌이 생기고 죽고 사는 문제로까지 이어집니다. 자비사상이 수면의 밑으로 숨어버린 오늘의 이 정황에서는 부처님의 사상을 습득하고 수행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수행은 있는데 교육이 없다면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이 있는 조직은 눈을 뜨고 교육이 없는 조직은 어둠에 묻히기 때문에 교육을 항상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과 수행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불교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혜공스님 :21세기에는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리라는 예상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변화를 몸으로 감지할 수 있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상대를 꺾기 위해 전력을 쏟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외적인 삶의 조건만 개선하고자 했지 인간의 내적인 정신승화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신적인 공황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의 내적인 정신승화가 도구와 물질의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자월스님 : 국내의 문제와 국제문제를 가려서 이야기할 필요를 느낍니다. 국제문제와 국내문제가 서로 서로 연관되는 글로벌 시대에 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상호 의존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세계 중심에는 무엇이 서 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기계, 컴퓨터, 파워입니다. 이에 곁들여 군사패권 정치패권 문화패권이 날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사회병리현상, 향락주의의 창궐, 가족의 해체 같은 문제들이 중핵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암담합니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볼 때 중국과 일본을 위요한 동아시아 정치질서의 재편에도 시선이 가지만, 한탕주의나 향락주의, 가족해체, 자기 정체성의 불확실성 같은 대내적인 것들도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들입니다. 대내외적인 모든 현상적 문제 이외에도 인성의 실종이나 마비를 큰 문제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려는 양심, 자비심과 사랑, 질서와 도리를 지켜나가는 예절, 스스로 지은 허물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인성은 개인과 사회 간 충돌이나 사고를 막아주는 신호등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생각합니다.▲보경스님 : 예의와 도덕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가섭존자는 부처님과 동년배이셨지만 부처님을 극진히 공경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스승과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 희박해져 갑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더욱 더 스승과 삼보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기 욕망 때문에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자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서를 읽고 수행을 철저히 하면서 마음자리를 밝히고자 바람직한 실천행을 계속하는 자세가 나올 때 불교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달마스님의 가르침대로 이입과 사행이 올바로 실천에 옮겨질 때 태고종의 발전과 밝은 미래가 동시에 구현되리라고 생각합니다.▲혜공스님 :자월부원장님께서 금세기의 세계질서를 언급하시는 과정에서 파워와 연관된 양상을 지적하셨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선진국이나 계발도상국이나 모두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분분합니다. 우리의 세계화 추진에 있어서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가 많습니다. 세계화와 연관해서 생각하는 과제는 (1)단일 민족 선호 (2)농촌 총각들의 이국 여인들과의 결혼 (3)혼혈아의 배척 등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외국인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개인과 개인간에도 정의가 우위를 점하는가 힘이 우위를 점하는가 하는 문제는 항상 분분한 논의를 일으킵니다. 최근에 일어난 인도와 미국 사이의 핵문제를 위요한 논의과정을 두고 볼 때 원칙이나 규범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안 됩니다. 국제적 질서를 잡아나가는 과정에서도 정의보다는 힘의 논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간에 있어서도 정황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이나 잣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상대국의 국력이나 위상에 따라 논의의 관점이 바뀌고 대처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은 힘의 논리를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힘의 논리에 의한 사례를 놓고 볼 때 우리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월스님 : 종교는 인간인식이 만들어낸 문화현상입니다. 불교의 고유한 교리체계는 인생과 우주문제를 사유하고 존재의 본질을 밝히는 데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본질적 내용은 사람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가에 있고 그것은 번뇌와 무명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는 것입니다. 물론 불교의 목표는 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만 번뇌로부터의 해탈이라고 해서 사회와 교류하지 못하거나 사람 사는 내용과 동떨어져서는 안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 해탈이므로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실행방법으로 불교계에서 선법, 교학, 염불 수행을 하고 있지만 불교의 기능적 부분, 즉 대승적인 보살행도 충실히 하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요컨대 앞서 말한 삶의 기준이나 현실적인 잣대를 세우는 일에 불교가 지혜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불교계는 비구사상과 보살사상을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보편성과 특수성이 원융회통하는 힘 있는 불교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혜공스님 : 수행과 교육은 같이 가야 하며 조화와 균형을 갖춰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수행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2,500년 전 부처님이 이미 제시했듯이 진리는 변함없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수행과 교화를 함께 해나감으로써 수행의 깨달음을 세상에 베풀고 중생구제에 육바라밀을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수행이 되면 현상적 문제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환란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중생구제, 즉 불교의 보살사상인데 이 부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겠지요. ▲자월스님 : 군사정권 하에서 지식인과 학자가 죽어가도 불교는 침묵했습니다. 그때부터 불교는 소수만의 자기종교로 바뀌어 버렸는데 부처님 사상과는 괴리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더하여 교육과 자질이 충분하지 않은 스님을 배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불교성직자가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출가하는 것은 한국불교 뿐입니다. 1890년 민족개화기에 불교계가 선사들을 도시로, 일본으로 유학 보내고 석/박사 교육기관도 만들었던 것을 떠올려봅니다. 살아있는 불교를 만들었던 당시를 되돌아보면 현재 불교계는 자성해야 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보경스님 : 오늘날 불교계는 ‘삼만’을 버려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의식적인 면에서 ‘거만’을 버려야 하고 교학적인 면에서 ‘교만’을 버려야 하며 선수행의 측면에서 ‘아만’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 대신 아상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다 보니 서로 믿음이 없어져 무시하고 헐뜯게 되는 것이지요. 해결책은 겸손하게 자신을 바로 보는 청정한 마음과 실천을 통한 보살행뿐입니다. 아무리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도를 알고 있더라도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혜공스님 : 현재 불교계의 갈등은 대승과 소승의 구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소승권에서는 대승권의 승려들을 승려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대승권에서도 역시 소승권의 승려들이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지요. 미얀마나 태국과 같은 남방불교 국가는 소승권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도 크고 불교계가 아니면 나라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될 정도로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불교계는 자기 수행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대승과 소승이 서로 보완해야 다른 종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오늘날의 불교계는 대승과 소승의 장점을 함께 하며 시대에 맞는 불교를 해야 합니다. ▲자월스님 : 오늘날 우리 불교의 침체기는 위정자가 부추긴 싸움에 휘말리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 불교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계종에 대한 반감으로 군소종단이 생겨나고 조계종단 자체로도 과도기를 겪게 되었지요. 큰 종단이 제대로 서면 통불교가 되어 하나로 뭉칠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 불교계의 문제로 사찰 재산을 갖고도 타종교에 비해 사회복지 활동이 부진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승려들의 무사안일주의와 자기가 투자한 만큼 회수하겠다는 세속적인 생각은 ‘중생구제’라는 대명제 아래 벌이는 대사회적인 활동에 소극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불교계에는 자기수행과 함께 대승적 차원의 복지사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자월스님 : 이제 교단조직의 나아갈 바를 언급해야겠습니다. 먼저 교단조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수행과 교육은 상호보완적 관계의 양축임을 전제로 불교관점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정화운동 이후 교화적인 측면이 부진했던 것은 자명합니다. 30여개의 종립학교들이 모두 1945년 해방 이전에 만든 것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단차원에서 병원, 학교 등을 만들어야 교화와 수행의 두 축을 제도로 만들고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요컨대 우리 교단은 실용적인 측면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을 해나가야 합니다.미디어에 등장하는 연예인들도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만 부처님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요즘 방송인의 영향력이란 특히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파급효과가 상당합니다. 연예인, 선교팀, 언론인팀, 사회지도자 팀의 호소력은 큽니다. 모 불자연예인은 한 교회로부터 집 한 채를 사줄 테니 교회로 오라는 제안도 받았다는 것을 보면 불교계도 발빠른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중생의 물음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철학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이 드문 반면, 현 세태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즉 주고 받는 것에만 매달립니다. 이러한 현대인들이 물질을 소유하더라도 바른 소유를 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것은 수행의 바탕 위에서 교육을 하는 불교의 몫입니다. ▲혜공스님 : 사부중이든 육부중이든 차별심을 없애야 합니다. 출가승과 재가불자를 구분하는 마음에서 출가자들이 하심으로 신도를 대해야 수행자의 상이 정립이 됩니다. 지위를 버리고 각기 맡은 바대로 주위의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불교가 가깝고 쉽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요.▲자월스님 : 한국불교는 재가불자가 살아야 일어나게 됩니다. 카톨릭은 수사나 신부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평신도 운동을 통해서 발전해왔습니다. 불교계도 평신도 운동을 통해서 교단이 탈바꿈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합니다.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신도 중심으로 사찰을 운영하는 것은 불교의 미래상으로서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봅니다.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재정관리를 하는 등의 제도개선은 출가자와 재가자 양쪽 모두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길이 될 것입니다.▲혜공스님 : 현재 태고종을 보게 되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재정이 안정적인 사찰이 많아도 종단재정은 불안정하지 않습니까. 종단차원의 건설사업단에 희망을 거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불사를 추진하는 데 있어 사찰 건축비용의 거품을 뺀 종단차원의 불사지원은 사찰과 종단 양쪽의 재정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현재 사업단의 시범케이스로 관음사 대웅전 불사를 맡길 예정인데 차후에는 모든 종도들도 믿고 따를 것입니다.▲자월스님 : 재정적인 면에서는 먼저 사설사암의 호구지책으로 만연한 개인주의를 종단으로 응집해야 합니다. 또 수행부재로 인해 보살불교로서의 부진했던 사회역할에도 충실해야 겠지요. 요컨대 역량있고 힘있는 종단이 되기 위해서는 존경받는 승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발전지표를 뒷받침하려면 종단차원의 재산융화와 같은 종도의식개혁, 법률적 제도개혁, 실천과정의 현상개혁 등이 뒤따라야 합니다. ▲보경스님 :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하고 실천할 때에도 늘 견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한 마음자세는 종단간의 모임에서도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융화는 자신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앞세우는 데서 화합을 불러옵니다. 자기종단을 우선시하고 타종단을 뒤로 한다면 불교계는 불만으로 가득한 1백여 개 군소종단으로 늘어나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사부대중과 종단이 타종단을 끌어안지 못하고 사회가 타종단을 끌어안지 못한다면 대만과 중국의 관계처럼 본말이 전도된 형국이 되겠지요.▲자월스님 : 현재 태고종단의 5대 기본사업은 승려교육, 포교, 사회교화, 복지사업, 종단기반조성사업 등입니다. 동방불교대학 캠퍼스의 이전, 분리와 승려상설연수원 조성이 시급한 과제이며 기성사찰을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 중입니다. 예를 들면 봉원사는 행정도량으로서 태고종 총본산으로, 선암사는 수행도량으로서 승려전문수행을 담당하는 태고총림으로, 문화전승관이 들어설 법륜사는 문화도량으로서 교육사회 중심도량으로 3대 사찰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