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늦가을 햇살에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단풍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다. 올 가을은 유난히 따뜻해서였는지 찾아온 겨울손님이 불청객인양 어색하기만 하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산들은 울긋불긋 곱게 화장하고 길가의 노란 은행잎은 환하게 웃으며 반겼는데 어느덧 가을은 저 멀리 손짓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이제는 꽃도 모두 지고 황량한 들판에 억새꽃만이 쓸쓸히 남았다.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지는 바람결에 묻어나는 스산한 겨울 냄새를 맡으며 고판화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야외카페를 연상케 하는 현대식 사찰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2리 명주사. 현 주지 선학스님이 1999년에 법당을 짓고 2004년도에 고판화박물관을 개관한 사찰로 대웅전, 박물관, 판화학교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명주사는 명상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친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행복 속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종교의 벽을 넘어 누구나 들러서 명상을 통해 머리와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곳이다.그래서인지 목조 황토집과 잔디밭을 뒹굴며 뛰노는 애들의 모습은 여느 사찰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원주시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인정받을 만큼 건물이 세련되고 깔끔해 보이며 산 중턱에 넓게 자리 잡은 마당은 무척이나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현대식 카페같은 절의 분위기는 다른 종교인이나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도 거부감이 들지 않게 꾸며 놓았다.동국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선학스님은 군종장교에 합격하면서 승려작가에 대한 꿈을 접고 군승으로 15년간 근무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전방지역의 불교포교가 타 종교에 비해 매우 낙후되었음을 느끼고 문화와 복지 등이 중심이 된 포교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제대하기 2년 전인 1996년에 중국 항주에서 도자기 불상을 모신 것이 인연이 되어 군 포교당 주지스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곳에 터를 잡고 문화포교도량을 만들기 위해 박물관과 판화학교 등을 설립했다. 특히 판화는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그 시대의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큰 매력이라고 한다.판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포교활동고판화박물관은 우리나라, 중국, 티벳, 몽골, 네팔, 일본 등에서 수집한 판화가 주류를 이루면 그 수가 무려 3500여점에 이른다. 이것은 판화박물관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2회 연속 원주시 예술인총연합회가 선정한 우수박물관으로 지정될 정도로 주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동양판화는 주로 불교나 절에 대한 소재로 이루어진 것이 많기 때문에 판화를 통해 저절로 불교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 중 아미타래영도나 1485년에 제작된 보물 1108호 불정심다라니경은 희귀 유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불정심다라니경은 온 마음으로 읽고 지니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불교신앙에 의해 널리 유통된 경전이다. 명나라 헌종(憲宗)13년(1477)에 중국에서 판각된 것을 8년 뒤인 조선 성종16년(1485)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수입해 조선에서 번각한 불경의 원판으로 밝혀졌다. 이를 번각해 조선에서 다시 찍어낸 책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 원본은 그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박물관은 주말에는 200여명 찾아올 정도로 명소로 자리 잡았다. 판화학교는 하루코스와 1박 2일 코스 등이 있으며 종교적인 측면을 배재한 다종교다문화시스템으로 노인, 가족, 학생, 장애인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판화체험과 함께 다도와 예절교육, 산행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부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판화는 초등학교 때부터 많이 접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다가가기 쉬운 문화입니다. 특히 인쇄문화는 중국, 인도 등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단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불자가 아닌 사람도 판화를 통해 불교와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자연과 명상,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포교도량명주사 고판화박물관처럼 작은 박물관도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선학스님은 태고종스님들도 서로 문화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해 문화와 복지사업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고 유능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종단이 문화를 통한 포교활동에 앞장서길 당부했다.“한국불교 태고종은 단청, 불화, 범패 등 문화적인 부분에서 타 종단에 비해 매우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전체적으로 확산해 앞으로 다가오는 문화시대에 미리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열린 눈을 갖고 박물관이나 미술, 음악, 연극 등을 이용한 문화적 포교에 앞장선다면 종단이 더욱 더 발전할거라고 생각됩니다.” 일부에서는 유발승이라는 이유로 일부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는데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TV에도 출연해 떳떳이 스님이라고 밝히는 등 선학스님은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안 좋게 보일수도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편견이며 오히려 박물관이나 그 외의 포교활동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사와 스님은 엄연히 다릅니다. 승가의 기본질서를 지키며 사는 것과 일반포교와는 분명히 다르지요”앞으로도 명주사를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우러진 문화포교도량으로 계속 가꾸어 나갈 생각이라는 스님은 명주사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과 명상, 문화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고판화를 관람하며 차도 한잔 마시는 그야말로 편하게 쉬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을 밝혔다.“원래부터 거창한 박물관을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사찰이 곧 자연사박물관이자 전원법당이 되어 모든 이에게 불교를 널리 알리고 불교와 좀 더 친숙해진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요” 박물관을 나서며 웃음으로 배웅하는 스님의 따뜻한 마음에서 앞으로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참다운 포교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김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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