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이 끊어진 근원에 적멸이 있고 적멸 속에 살아있는 고요한 즐거움이 있다. 그 고요한 즐거움이 부처님의 경지요 조사의 도리

출가 전의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대사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에서 나무를 구해 장에 파는 땔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장작 짐을 지고 가는 길에 담장 너머로 주워들은 <금강경> 한 구절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즉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이 말에 의구심을 내어 참구하였다.

8개월 동안 디딜방아를 찧다가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를 찾아가 깨달은 바를 보임으로써 인가를 받아 행자의 신분으로 육조 혜능대사가 되지 않았던가! 견성오도에는 행자도 사미도, 승속 또한 없는 것이며 이 같은 바가 바로 조계 육조 혜능의 가풍이 되었다.

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아를 찧었고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오직 자성만을 찾아 오매불망(寤寐不忘)하였다. 부처님은 중생에게 자성을 찾아 성불하는 법을 가르쳤지만 업장의 구름에 싸인 중생은 자성인 근본마음을 보지 못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팔려 보이면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 머물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매여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다.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중생이 부처되는 단 한 번의 귀중한 기회를 잃고 만다.

어쩌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다고는 하지만 마음 찾는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형상에 머물거나 자가당착에 빠져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다가 정작 달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

널리 알려진 중국의 조계산 혜능대사의 얘기를 다시 예로 들어보겠다. 오조 홍인대사 문하 최고의 수행자인 신수(神秀, ?~706)대사는 그간에 수행으로 얻은 바를 시로 써서 대중에게 알렸고, 아직 스님도 되지 못한 방앗간의 노 행자는 이 사실을 듣고 자기가 얻은 바를 내 놓았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몸은 보리수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네.
쉬지 말고 시시로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 하세.

이 몸뚱이는 지혜를 얻는 나무와 같고 이 마음은 밝은 거울이라니 얼마나 좋은 표현인가! 다시 말하면 이 몸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을 나무라 하며 마음은 업장이 다 녹고 탐진치(貪嗔痴)를 제거한 맑고 맑은 거울과 같다. 그러니 부지런히 쉬지 말고 닦고 닦아서 다시는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신수대사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다 같은 깨달음이 아니며 그 깨달음에도 깊고 얕음이 있다. 다 같이 히말라야를 오르지만 중간에 그친 사람도 있고 정상에 오른 사람도 있다. 위와 같은 신수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듣고 노 행자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지혜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 또한 형태가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었거니
티끌 묻지 않는다네.

육조 대사의 이 시는 이 몸뚱이에 지혜가 있는 것 아니고, 맑은 거울같은 마음도 역시 형태가 아니며, 본래 자성에는 물질 형태가 하나도 없으니 티끌 묻을 데가 어디 있겠느냐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의 안이비설신의에 잡히는 것은 모두 무상하여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생멸이 끊어진 근원에 적멸이 있고 적멸 속에 살아있는 고요한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다. 그 고요한 즐거움이 부처님의 경지요 조사의 도리이다. <금강경> 한 구절을 참구하다 깨달음을 얻은 행자가 수십 년 수행한 납자의 얻은 바보다 명쾌한 것이 이러했다. 이는 다만 절실한 참구의 차이이다.

우리는 흔히 참선이라면 좌선을 으뜸으로 삼지만 좌선은 선(禪)의 기본일 뿐 일상의 모든 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동할 때, 멈춰있을 때, 말할 때, 침묵할 때, 앉아있을 때, 누워있을 때 화두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누워있을 때 잠을 이기고 나태를 벗어나서 선에 드는 일이다. 이의 극치는 몽매가 일여하게 화두가 철저해야 하는 것이다.

순천 선암사의 침굉현변(枕肱懸辯, 1618~1686) 대사는 일생을 거의 누워서 깨어있는 참선으로 도를 성취한 어른이었다. 참선이 익으면 이 몸은 이 몸대로 충실하고 마음은 마음대로 정돈되어 일치된 한 생각이 화두에 전념하게 한다.

중국의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라는 스님이 있다. 회해 스님은 육조혜능의 손제자이고 마조(馬祖) 스님의 제자이며 <백장청규(百丈淸規)> 두 권을 지었다. 이로부터 선종사찰의 종지가 분명해지고 승려의 규범이 정해졌다. 사찰의 영역에 법당, 승당, 방장의 제도가 생기기 시작했고 당주(堂主), 화주(化主) 등의 직책이 정해졌다. 방장이 때때로 법당에 나와 상당법문(上堂法門)을 하는 것도 이 때 생겼다.
또한 대중에게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하는 엄격한 지침을 내리고 스스로 날마다 일했다. 방장스님이 날마다 일을 함에 안거 대중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장스님이 쓰던 농기구를 숨겼더니 일체 공양을 전폐하였다. 이에 할 수 없이 농기구를 다시 내놓아 일을 하게 하였다 한다.

백장청규는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하여져서 해방 후 불교분규가 일어나기 전 모든 절들이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전통을 유지하여 왔다.

조계산의 두 절 선암사와 송광사만 보더라도 절 주변의 2만~ 3만 평의 밭과 논이 모두 스님들의 손에 의하여 경작되었다. 또한 도량 부근에 차나무, 감, 배, 호두 등을 심었는데 바쁜 사람들을 가리켜 ‘가을 중’같다는 말은 여기서 일컬어졌다. 각 암자에서는 물을 댈 수 있는 데에 물을 실어 논을 만들었고, 경사지는 밭을 만들어 자급자족하였다. 수확되어 건조된 농산물은 승당의 2층 공루(空樓) 궤짝에 넣어 개개인이 보관하고 필요할 때 지출하여 썼다.

봄, 가을은 주로 농사에 노력했고 여름, 겨울의 농한기엔 하안거와 동안거에 들어 철저하게 정진했다. 안거 때는 좌선으로 오후불식을 하며 눕지 않는 수행자의 수가 늘었고 봄, 가을 농번기엔 일을 하며 화두정진에 일여(一如)하였다.

이와 같은 풍경이 한말의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대사의 오도송에도 나타나 있다.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吾家(돈각삼천시오가)
六月燕岩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홀연히 콧구멍 없는 소란 말에
문득 깨치고 보니 온 우주가 내 집이로다.
6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 없듯 태평가를 부르노라.

놀면서 밥만 먹는 사람은 죽어서 다음 세상에 소로 태어난다는 방 밖의 말에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는 소’가 되겠다고 행자가 대답한다. 이를 스님께서 방 안에서 정진 중에 듣고 찰나에 깨치고 보니 삼천대천세계가 자유자재한 모두 내 집이라 털끝 하나 거칠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산 밑에서 농부가 아무 일 없이 태평하게 노래나 부른다는 말이다. ‘콧구멍이 없는 소’는 구속이 전혀 없는 소이다.

생로병사와 탐진치, 번뇌망상과 오욕락이 중생의 고삐가 되어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속하고 이 몸과 마음은 온갖 외부적인 조건들에 구속하여 끌려 다니다가 마침내 허무하게 죽는다. 이를 벗어나 내외에 구속이 없는 스스로의 불성을 발견하고 이를 성취하는 일이 해탈이고 극락이며 부처이다. 부처는 삼천대천 세계의 어디에도 걸릴 것이 없다. 우주가 이 주인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이다.

주인을 찾는 농부는 일을 해도 그것은 일이 아니며, 일과 마음이 둘이 아니니 사사처처에 여여(如如)하여 자연히 노래가 나온다는 말이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