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69주년 맞아 4•3평화공원서 영산재의 장엄한 시연은 한층 뜻깊어

▲ 4 •3항쟁 유가족들이 제주4 •3평화공원내 각명비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 예를 올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제주4•3항쟁’. ‘제주4•3항쟁’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 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7년 7개월 동안 당시 30만명이었던 제주도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희생됐다. 특히 좌익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까지 참혹하게 학살되면서 제주도민의 깊은 한으로 남았다.

지난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조사와 정부의 공식사과가 이뤄졌지만, 가족과 친지를 잃은 제주도민들의 깊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남아있다.

▲ 집전을 맡은 ‘영산재’ 보유자 구해스님(사진 오른쪽에서 3번째).
▲ 영산재 법회를 증명하는 법사와 회주, 법주.
4•3사건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과 제주도민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2003년 4월 제주시 봉개동에 ‘제주4•3평화공원’이 세워졌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사)영산재보존회는 제 69주년을 맞는 4월 3일, 뜻 깊은 제주4•3평화공원에서 영산대재를 여법하게 봉행했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 인사말을 하는 봉원사 주지이며 (사)한국불교영산재보존회장 선암스님.
▲ 제주교구종무원장 탄해스님이 상축을 하고 있다.
3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제 69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1만 여명의 제주도민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추념식이 끝난 후 참석자들의 분향이 쉴 새 없이 이어진 후, 수많은 국화꽃이 놓여지고 향 내음 진동하는 위령제단에 영산재보존회에서 마련한 공양물이 정성스럽게 진설됐다. 특설도량 주위를 장엄하고 있는 수많은 번(幡)들도 희생자 영령들을 위로하는 듯 바람에 자유로이 춤을 추었다.

▲ 선암스님은 양윤경 유족회장(사진 왼쪽)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사)한국불교영산재보존회(회장 선암스님)와 제주교구종무원(종무원장 탄해스님) 주최로 봉행된 ‘제주4•3희생자를 위한 영산재’에는 서울에서 제주를 찾은 봉원사 신도들과 제주 불자들, 그리고 4•3유족회 등 200여명이 동참했다.

본격적인 시연에 앞서 봉원사 주지이며 (사)한국불교영산재보존회장 선암스님이 인사말을 했다. 스님은 “4•3제주항쟁은 미 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까지 이어진 사건으로 7년간 지속됐으며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현대사의 가슴 아픈 사건”이라면서 “이른바 ‘빨갱이 사냥’에 희생된 양민들의 억울한 죽음과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그들의 영혼을 우리 후손들이 위로하고, 억울하게 ‘공산주의자’ 낙인이 찍힌 선량한 제주도민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더 나아가 평화와 상생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 후손의 몫”이라고 밝혔다.

▲ 천수바라.
▲ 도량게 작법.
선암스님은 이어 “7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현장에서 펼쳐지는 영산재는 우리의 아픈 역사의 진실을 알리며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고 이 땅에서 다시는 참혹한 장면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평화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말이 끝난 후 선암스님은 ‘제주4•3유족회’ 양윤경 회장에게 성금을 전달했다.

우렁찬 홍고(弘鼓) 소리와 함께 영산재가 시작됐다. ‘영산재’ 보유자 구해스님(옥천범음대학장)의 집전에 따라 영산재보존회 30여 스님들은 신중작법, 복청게, 천수바라, 도량게, 법고, 거불, 상축, 향수나열, 사다라니, 가지게, 화청, 시식 등을 차례로 시연했다.

▲ 법고무를 추고 있는 능화스님(인천교구종무원장).
참석대중은 의식이 봉행되는 내내 두 손 모아 합장하며 향을 올리고 절을 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기원했다.

제주4•3유족회 양윤경 회장도 “많은 유족분들이 믿는 종교가 불교인데 태고종에서 이렇게 4•3희생자를 위한 영산대재를 봉행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하다. 영령들도 오늘 영산대재를 잘 지켜보고 매우 흡족해 하셨으리라 생각된다”면서 태고종과 영산재보존회에 고마움을 표했다.

▲ 환우스님과 선암스님 등이 헌향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제주교구종무원장 탄해스님은 법회 마무리발언을 통해 “(사)한국불교영산재보존회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제주4•3희생자추모기념일’에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영산재를 시연해 주셔서 20만 제주 사부대중과 함께 감사드린다”면서 “오늘의 영산재를 통해 한 맺힌 4•3 영혼들을 아미타부처님의 품인 극락세계로 인도했을 것이고 오늘 동참한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4•3은 화해와 상생을 넘어 진정한 평화의 세계로 나아갔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 영산재 법회에 동참하고 있는 송진여심 관음회 회장 등 봉원사 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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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불자들과 양윤경 유족회장 등 제주 4 •3유족회원들이 영가에 분향하고 절을 올리고 있다.
사)영산재보존회는 지난 2015년 독도에서, 2016년에는 백령도에서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재를 봉행하는 한편, 베트남과 캄보디아 에서도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산재를 봉행해 오고 있다.

제주4•3 희생자 추념장소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자 부처님을 찬탄하는 최고의 전통불교의식인 영산재의 시연은, 이념의 갈등을 넘어 인류 공통의 과제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재확인하고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대내외에 깨우친 장엄한 의식이었다.

▲ (사)한국불교영산재보존회 스님들과 제주 4•3유족회, 제주교구 스님들 및 신도회 간부들이 영산재 시연 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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