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의 일 다름이 없고 오직 내 스스로 높도다. 어떤 것이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니 어느 곳에도 어긋남이 없도다”

방 거사가 찾아간 약산유엄(藥山惟儼)선사는 17세에 출가하였다가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의 제자가 되었으며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에게 참학한 후 말 한마디에 깨쳤다.

3년을 수행하다 다시 석두희천 선사에게로 들어갔다. 그는 방 거사보다 30세나 젊었으나 법거래 하는 것에 있어서는 나이를 관계치 않았다.

好雪片片(호설편편)
不落別處(불낙별처)

뒷날 송나라의 설두중현은 방 거사의 위 시를 두고 “내가 그 때 있었더라면 그 대목에서 바로 흰 눈을 한 주먹 쥐어 던지겠다.”고 했다.

계속해서 방 거사의 법거량에 대한 일화 몇 가지를 보도록 하자.

방 거사가 좌선을 하다 딸 영조에게 물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밝고 밝은 풀끝이 조사의 뜻이라 했는데 너는 어떠하냐?”
딸 영조가 말하기를, “저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빨은 누렇건만 아직도 저런 소견을 내는구나.”
거사가 다시 “너는 어떠하냐?” 묻자 딸 영조는 “밝고 밝은 백가지 풀끝이 조사의 뜻입니다”라고 하였다.

방 거사가 초막 암자에서 좌선을 하다 말하기를
“어렵고 어렵구나. 백 가마니 참깨를 나뭇잎에 낱낱이 널어놓는 일이로다.”
옆에 앉았던 방 거사의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쉽고 쉽구나. 백 가지 풀끝이 조사의 뜻이로구나.” 라 했다. 딸 영조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구나.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잠자도다.”라고 하였다.

방 거사가 조리를 팔러 다니다가 미끄러져 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딸 영조가 이를 보자마자 아버지 곁으로 쓰러졌다. 거사가 이를 보고 연유를 묻자 영조는 “아버지가 넘어지신 것을 보고 부축하러 왔습니다.” 거사는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구나.” 하였다.

어느 날 백령(百靈) 선사가 방 거사에게 묻기를,
“남악(南嶽)에서의 득력구(得力句, 참구 중 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게 된 말이나 글귀)를 남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까?”
방 거사가 답하되, “일찍이 남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백령 선사가 “누구에게 이야기 하셨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방 거사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방공(龐公)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백령은 “설사 묘덕(妙德)과 공생(空生)이라도 찬탄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방 거사가 “스님은 득력구를 남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소?”라고 물었다. 백령이 있다고 하자 방 거사도 똑같이 누구에게 이야기 하였는지를 물었다. 백령이 삿갓을 쓰고 떠나자 방 거사는 “길조심 하오”라 했고 백령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화상이 어느 날 방 거사에게 왔다가 방 거사는 없고 딸 영조가 나물 씻는 것을 보고 “거사님 계시는가?” 하니 영조가 나물 바구니를 놓고 손을 모으고 섰다.
이에 단하스님이 다시 묻기를 “거사님 계시는가?”하니 영조는 나물 바구니를 들고 가버렸다. 단하스님도 돌아가 버렸다.
방 거사가 늦게 온 후 영조가 앞의 일을 이야기 하자 거사는 “단하가 있는가?” 이에 영조는 “갔습니다.”라 답했다. 거사가 “붉은 흙을 우내시(초나라 사람들이 붉은 흙물을 발라 푸른 기를 감추어서 판다는 감)에 바르는 구나”라고 하였다.

방 거사가 어느 날 단하선사가 오는 것을 보고도 말을 하지 않고 일어서지 않았다.
이를 보고 단하선사가 불자(拂子)를 들어올리니 거사는 종 망치를 들어보였다. 단하선사가
“그 뿐인가? 또 있는가?” 하고 묻자 방 거사는 “이번에 그대를 보니 전과 같지 않습니다.”
단하선사가 말하기를 “남의 명예를 낮추는 것은 방해가 아니오?”
이에 거사가 “이제 그대를 한 바탕 주저 앉혔습니다.”
단하는 “그렇다면 천연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군요.” 하였다.
“그대의 입이 막힌 것은 본래 그렇거늘 아직도 내가 막았다고 의심하는가?”

이 말을 들은 단하선사가 불자를 던져버리고 나가자 방 거사는 “모범된 스님이여, 모범이 된 스님이여!”하고 불렀으나 단하선사가 돌아보지 않자 “벙어리 뿐 아니라 귀까지 먹었구나” 하였다.

방 거사가 어느 날 석림선사를 보러 갔다. 석림선사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불자를 세우고 말하되 “단하의 기개에 떨어지지 않고 한마디 일러보라.”
방거사가 불자를 빼앗아 주먹을 세웠다.

이에 석림선사는 “바로 단하의 기개로다.” 하였고
거사는 ”그대는 떨어지지 않는 말을 내게 일러주시오.“ 하고 답하였다.
석림선사가 “단하는 벙어리이고 방공은 귀머거리로다.” 하자 방 거사가 “그런 것 같소이다.” 라고 답했다.

낙포(洛浦)스님이 방 거사에게 절을 하니
“한 여름은 몹시 덥고 초겨울은 약간 춥소이다.” 하였다.
낙포스님이 “어긋나게 말하지 마십시오.”하니
방 거사가 “방공(龐公)이 나이가 늙었구료.” 하였다.
낙포스님이 다시 말하기를 “왜 추울 때 춥다 하고 더울 때 덥다 하시지 않습니까?” 하니
방 거사가 “귀는 먹어서 무엇 하려는고?” 하였다.
낙포스님이 말하되 “당신에게 30방망이를 그냥 둡니다.”
방 거사가 “나의 입은 막혔고 그대 눈도 막혔구나!” 하였다.

칙천(則川)화상이 어느 날 차(茶)잎을 따는데 방거사가 묻기를 “법계가 몸을 용납하지 않는데, 스님은 내가 보이십니까?” 물었다.
화상이 말하되 “노승이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방공(龐公)에게 대꾸를 했겠소.” 하였다.
거사가 다시 말하니 “물으면 대답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입니다.”
화상이 모른 체 하니 거사가 다시 “아까 경솔했으니 고깝게 생각지 마시오.” 하였다.
화상이 또 모른 체 하니 거사가 “할(喝)!” 하고 다시 “이 무례한 사람아, 내가 낱낱이 기억했다가 눈 밝은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 하리라” 하니 찻잎바구니를 들고 돌아가 버렸다.

칙천화상이 어느 날 방장실에 앉아있는데 방거사가 들어와서
“방장에 단정히 앉아있을 줄 알았고 중이 문안드리러 올 때는 모르시는군요.”
이에 화상이 한쪽 다리를 드리웠다. 거사가 세 걸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니 화상이 다리를 오므리매 거사가 말하기를 “그토록 자유자재하십니다 그려.”
이에 화상이 “내가 주인인데 어찌하리오?”
거사가 “주인인 줄만 알고 객이 있는 줄 모르는 도다.” 하였다.
화상이 말하되 “시자야! 차를 다려라.”하니 거사가 춤을 추며 나갔다.

어느 날 석두화상이 방 거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노승을 만난이래 매일매일 하는 일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거사의 대답은 “매일매일 하는 일을 물으신다면 입을 열어도 답할 도리가 없습니다.”라 하였다. 석두화상이 “그대가 그러함을 알았으니 처음 홀연히 묻노라.”
이에 거사가 게송을 지어 바쳤다.

日用事無別(일용사무별)
날마다의 일 다름이 없고
唯吾自偶諧(유오자우해)
오직 내 스스로 높도다
頭頭非取捨(두두비취사)
어떤 것이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니
處處物張乖(처처물장괴)
어느 곳에도 어긋남이 없도다.

朱紫誰爲號(주자수위호)
붉다느니 자색이니 누가 당호하는고
丘山絶點埃(구산절점애)
언덕이나 산은 점마저 끊어진 걸
神通兼妙用(신통겸묘용)
신통이나 묘용이니 하여도
運水及搬柴(운수급반시)
물 긷고 땔나무 운반이 그대로일세.

이 게송을 보고 석두화상이 “그렇다”하고 “그대는 중으로 하는가, 속인으로 하는가?” 하니
거사가 “바라건대 좋을 대로 하겠습니다.”하여 끝내 승려가 되지 않았다.

                        지허스님(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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