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화 (서울북부교구종무원장)

▲ 석화스님 (서울북부교구종무원장).

이 지구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다. 이 많은 생명체는 모양이 다다르고 성이 다르고 형태와 사고방식이 다르다.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네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생(生) 로(老) 병(病) 사(死)를 한다는 것이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일은 모든 생명체의 공통점이다. 이 네 가지의 길을 거치지 않는 생물은 없다.

이 길속에서 인간은 방황하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며 늘 괴로움에 허덕인다. 희로애락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의 시간에 비유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짧은 삶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돈도 중요하고, 애인도 중요하고, 학문도 중요하고, 지위와 명예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아는 일이다.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종교나 철학, 과학에서는 꾸준히 인간이 누구인가를 규명해 왔고 가르쳤다.

특히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선(禪)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라고 한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마음 안에 부처가 되는 요소가 있고 극락이 있다는 말이다. “마음을 돌이키면[回心]이것이 피안(彼岸)이다”라고도 했다.

육조혜능 스님 당시 어느 날, 젊은 두 스님이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서로 언쟁을 벌였다.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또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다. 이때 혜능스님은 깃발이 나부끼거나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 하나가 움직여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안에는 여러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악한 마음, 미운 마음, 서러운 마음, 괴로운 마음, 나쁜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이 어떤 것에 사로잡히면 악한 마음, 미운 마음, 서러운 마음, 슬픈 마음, 괴로운 마음이 된다.
그러기에 사람은 마음을 정하기에 따라 일생이 좌우된다. 불행의 요소가 되는 마음들을 돌이키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미운 마음을 좋게 돌이키면 선한 사람이 된다. 슬픈 마음을 밝게 돌이키면 기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마음 하나에 극락과 지옥이 깃들여 있다고 했다. 지옥의 마음을 돌이키면 극락의 마음이 된다고 가르쳤다. 모든 사람들이 선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 기쁜 마음을 가지면 이 세상은 극락이 안 될 수 없다.

긍정적인 마음, 밝은 마음은 자비심에서 나온다. 자비의 마음은 나만을 내세우는 마음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 상생의 마음이다.
나쁜 마음, 괴로운 마음, 미운 마음을 좋은 마음, 기쁜 마음, 자비 마음으로 돌이킬 수 있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해나간다면 이 세상은 바로 극락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회심(回心)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 삶의 성공 여하는 회심하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옛 이야기가 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산사에서의 일화다.
주지스님이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노스님이 법당 앞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나이도 많고 거동도 힘든 노스님이 땡볕 아래서 열심히 울력하는 것을 본 주지스님은 놀라 “스님, 이런 일은 젊은이들에게 시키시지요.” 하면서 방에 들어가시라고 했다. 그러나 노스님은 “남이 한 일이 어찌 자기 것이 되겠는가?” 라며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기의 일이고 자기의 생명을 남에게 맡겨서 되겠느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머쓱해진 주지스님이 “노스님, 그렇다면 좀 더 시원해지거든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하자 노스님은 “어느 때를 기다리라는 말인가?”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지금 이때’가 좋지 않다고 여기고 다음에 좋은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지금 이때가 가장 최상의 시기이다.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릴 것인가?” 이 말을 듣고 주지스님은 큰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병자를 고치는 데에는 먼저 자기 자신이 건강하고 질병에 정통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먼저 마음의 중심이 딱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팔정도(八正道)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중도(中道)라고 하는 조화로 되돌리는 최상의 규범이다. 팔정도는 특히 괴로움의 원인인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규범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따라가 실천하게 되었을 때 저절로 보살행이 갖추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팔정도를 일상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마음의 위대함을 자각하고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내 마음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진리의 규범인 팔정도를 일상에서 열심히 행하는 길 밖에 없다.

<법구경>에 있는 다음의 가르침을 좌우명 삼아 명심했으면 한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순수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기쁨은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