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온, 오온은 나의 것’이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의 오온은 변하고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서 근심 • 탄식 • 괴로움 • 절망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문]

(一○七) 如是我聞: 一時, 佛住婆祇國設首婆羅山鹿野深林中. 爾時, 有那拘羅長者, 百二十歲, 年耆根熟, 羸劣苦病, 而欲覲見世尊及先所宗重知識比丘. 來詣佛所, 稽首佛足, 退坐一面, 白佛言: “世尊! 我年衰老, 羸劣苦病, 自力勉勵, 覲見世尊及先所宗重知識比丘, 唯願世尊為我說法, 令我長夜安樂!”
爾時, 世尊告那拘羅長者: “善哉! 長者! 汝實年老根熟, 羸劣苦患, 而能自力覲見如來并餘宗重知識比丘. 長者當知: 於苦患身, 常當修學不苦患身[心].” 爾時, 世尊為那拘羅長者示教照喜, 默然而住. 那拘羅長者聞佛所說, 歡喜隨喜, 禮佛而去.
時, 尊者舍利弗去世尊不遠, 坐一樹下. 那拘羅長者往詣尊者舍利弗所, 稽首禮足, 退坐一面. 時, 尊者舍利弗問長者言: “汝今諸根和悅, 貌色鮮明, 於世尊所得聞深法耶?” 那拘羅長者白舍利弗: “今日世尊為我說法, 示教照喜, 以甘露法, 灌我身心, 是故我今諸根和悅, 顏貌鮮明.” 尊者舍利弗問長者言: “世尊為汝說何等法, 示教照喜, 甘露潤澤?” 那拘羅長者白舍利弗: “我向詣世尊所, 白世尊言: ‘我年衰老, 羸劣苦患, 自力而來, 覲見世尊及所宗重知識比丘.’ 佛告我言: ‘善哉! 長者! 汝實衰老, 羸劣苦患, 而能自力詣我及見先所宗重比丘, 汝今於此苦患之身, 常當修學不苦患身.’ 世尊為我說如是法, 示教照喜, 甘露潤澤.” 尊者舍利弗問長者言: “汝向何不重問世尊: ‘云何苦患身․苦患心? 云何苦患身․不苦患心?’” 長者答言: “我以是義故, 來詣尊者, 唯願為我略說法要.”
尊者舍利弗語長者言: “善哉! 長者! 汝今諦聽! 當為汝說. 愚癡無聞凡夫於色集․色滅․色患․色味․色離不如實知; 不如實知故, 愛樂於色, 言色是我․是我所, 而取攝受. 彼色若壞․若異, 心識隨轉, 惱苦生; 惱苦生已, 恐怖․障閡․顧念․憂苦․結戀. 於受․想․行․識亦復如是, 是名身心苦患. 云何身苦患․心不苦患? 多聞聖弟子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 如實知已, 不生愛樂, 見色是我․是我所; 彼色若變․若異, 心不隨轉惱苦生; 心不隨轉惱苦生已, 得不恐怖․障礙․顧念․結戀. 受․想․行․識亦復如是, 是名身苦患․心不苦患.” 尊者舍利弗說是法時, 那拘羅長者得法眼淨.
爾時, 那拘羅長者見法․得法․知法․入法, 度諸狐疑, 不由於他, 於正法中, 心得無畏. 從座起, 整衣服, 恭敬合掌, 白尊者舍利弗: “我已超․已度, 我今歸依佛․法․僧寶, 為優婆塞, 證知我, 我今盡壽歸依三寶.” 爾時, 那拘羅長者聞尊者舍利弗所說, 歡喜隨喜, 作禮而去.

[역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지국(婆祇國) 설수바라산(設首婆羅山)의 사슴동산 깊은 숲 속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나구라(那拘羅)’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120세 노인으로서 감각기관은 허물어지고, 파리하고 쇠약하여 병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세존과 예전부터 존경하던 비구들을 뵙고 싶어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쇠약하며 병으로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힘써 세존과 예전부터 존경하던 비구들을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오랜 세월 동안 안락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나구라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십니다, 장자여. 그대는 실로 늙고 쇠약하여 감각기관이 허물어지고 파리하고 쇠약하여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스스로 힘써 여래와 다른 존경하는 비구들을 보고 싶어 찾아왔구나! 장자여, 마땅히 알라. 괴롭고 병든 몸에서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는 마음을 닦아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나구라 장자를 위해 가르치고 기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나구라 장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때 존자 사리불은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어떤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나구라 장자는 존자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이때 존자 사리불이 장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모든 감각기관에 기쁨이 넘치고 얼굴빛이 선명합니다. 세존의 처소에서 어떤 깊은 법을 들었습니까?”

나구라 장자가 사리불에게 아뢰었다.
“오늘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시고 가르쳐 기쁘게 하시고, 감로법(甘露法)으로써 제 몸과 마음에 관정(灌頂)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지금 모든 감각기관에 기쁨이 넘치고 얼굴빛이 선명한 것입니다.”

존자 사리불이 장자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그대에게 어떤 법을 설하여 가르쳐 기쁘게 하시고, 감로법으로 윤택하게 하셨습니까?”

나구라 장자는 사리불에게 아뢰었다.
“제가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아갔더니 세존께서는 ‘그대는 늙고 쇠약하여 감각기관이 허물어지고 파리하고 쇠약하여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스스로 힘써 나와 예전부터 존경하던 비구들을 보고 싶어 찾아왔구나! 그대는 지금 이 괴롭고 병든 몸에서 항상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는 마음을 닦아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이러한 법을 말씀하시어 가르쳐 기쁘게 하시고 감로(甘露)로써 윤택하게 하셨습니다.

존자 사리불이 장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어떤 것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입니까? 어떤 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입니까’라고 세존께 거듭 여쭈어보지 않았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그 때문에 존자께 찾아왔습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위해 그 법의 요긴한 점을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 사리불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장자여.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십시오. 그대를 위해 마땅히 설명하리다. 어리석고 배움이 없는 범부들은 색의 발생[色集]과 색의 소멸[色滅]과 색의 재앙[色患]과 색의 맛들임[色味]와 색의 벗어남[色離]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색은 나다. 색은 나의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거두어 취합니다. 그러다가 만일 그 색이 무너지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따라 움직여 번민과 괴로움이 생깁니다. 번민과 괴로움이 생긴 뒤에는 두려워하고 마음이 막히며, 돌아보고 근심하며 잊지 못합니다. 수․상․행․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을 몸과 마음이 병든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이라 합니까?’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들은 색의 발생과 색의 소멸과 색의 맛들임과 색의 재앙과 색의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그것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아 ‘색은 나다. 색은 나의 것이다’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 색이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이 그것을 따라 움직여 번민과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이 그것을 따라 움직여 번민과 괴로움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마음이 막히거나 돌아보거나 애착하지 않습니다. 수 상 행 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이라 합니다.”

존자 사리불이 이와 같이 법을 설했을 때, 나구라 장자의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때 나구라 장자는 법을 보고[見法], 법을 얻고[得法], 법을 알고[知法], 법에 들어가[入法]  모든 의심을 벗어나서,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바른 법[正法] 안에서 마음에 두려움 없음을 얻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민 뒤에 공경히 합장하고 존자 사리불에게 아뢰었다.

“저는 이미 초월하였고 이미 건넜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를 증명하여 주십시오. 저는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그때 나구라 장자는 존자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해석]

이 경은 ≪잡아함경≫ 권5 제107경 <장자경(長者經)>(T2, p.33a-b)이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는 SN22:1 Nakulapitā-sutta(SN Ⅲ, pp.1-5)이다. 이 경의 핵심내용은 오온(五蘊)에 관한 것이다. 한역 아가마와 니까야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 경은 붓다께서 바지국(婆祇國) 설수바라산(設首婆羅山)의 사슴동산 깊은 숲 속에 머물고 계실 때, ‘나구라(那拘羅)’라는 장자가 붓다께 찾아와 나눈 대화를 근거로 존자 사리불이 보충 설명한 것이다.

바지국(婆祇國)은 박가(Bhagga)를 음사한 것인데, 밧지(Vajji)국이 아니다. 박가는 종족의 이름이면서 나라 이름이다. 이 나라는 꼬삼비(Kosambī)에 예속되어 있었던 듯하다. 박가는 웨살리(Vesāli)와 사왓티(Savatthi)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붓다시대 16대국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설수바라산(設首婆羅山)은 숨수마라기리(Suṃsumāragiri, 악어산)의 음사인데, 박가의 수도였다. 붓다는 이곳 베사깔라와나(Bhesakaḷāvana)에서 여덟 번째 안거를 지냈다고 한다.

나구라(那拘羅)는 ‘나꿀라삐따(Nakulapitā)’를 음사한 것인데, 나꿀라삐따는 나꿀라(Nakula)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의 부인은 나꿀라마따(Nakulamātā)로 불린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의하면, “신뢰할만한 자 가운데 제일은 나꿀라삐따(Nakulapitā) 장자이다.”(AN Ⅰ, p.26, “vissāsakānaṃ yadidaṃ Nakulapitā gahapati.”)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는 박가국의 숨수마라기리에 살았는데, 붓다께서 이곳을 방문하여 베사깔라 숲에 머물고 있을 때, 그는 부인 나꿀라마따와 함께 붓다를 친견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들은 붓다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아들아! 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느냐?”고 말했다. 그들은 과거 오백생동안 보살의 전생 부모였으며, 그보다 많은 생애를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의 주제는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에 대해 설한 것이다. 니까야의 설명을 빌리면, “어떤 것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사리뿟따 존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어리석고 배움이 없는 범부[愚癡無聞凡夫]들은 오온(五蘊)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오온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오온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오온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나는 오온이다. 오온은 나의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나는 오온이다. 오온은 나의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오온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기 때문에 근심․탄식․괴로움․절망이 일어난다. 이것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이다.

반면 “어떤 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사리뿟따 존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多聞聖弟子]들은 오온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오온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오온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오온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오온이다. 오온은 나의 것이다’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처럼 ‘나는 오온이다. 오온은 나의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의 오온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괴로움․절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불변하는 자아가 존재한다는 견해, 즉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에 사로잡혀 있으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이다.’

그러나 유신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유신견은 오온의 각각에 대해 ①오온이 자아라고, ②오온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③오온이 자아 안에 있다고, ④오온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는 20가지 견해를 말한다. 유신견은 예류도(預流道)에 듦으로써 없어진다. 이와 같이 유신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아론자(有我論者)들은 아직 성자의 첫 번째 단계인 예류과에도 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마 성 <팔리문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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