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흩어진 자료 정리... 화엄교학 계보 있어 관련 연구 활성화 계기 

현대의 스님들도 높은 지성과 글쓰기 해야 불교가 빛난다는 교훈 얻어

▲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남단 조계산 품속에 큰 절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송광사이고 하나는 선암사이다.

송광사에서는 예부터 16국사가 출현하여 선풍을 드날렸고, 선암사에서는 유수한 강백이 나오다가 구한말에 ‘침명 - 함명 - 경붕 - 경운’ 대강백이 연이어졌다.

선암의 전통이 약해지고 끊어지면서 해방 후의 화엄교학의 전통은 희미해져가고 있다. 다행히도 경운의 문하에서 많은 강사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 금봉, 석전, 진응 등이 세상에 알려졌으나, 석전만이 후사를 이어 나중에 운허를 배출했고, 나머지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조선후기 - 대한제국  -일제시기, 이 때의 화엄교학의 풍모를 알기 위해서는 경운원기의 교학사상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흩어진 자료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게다가 원 자료를 그대로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정서하고,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이 학술적 가치가 크다.

정서나 번역은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사진 자료를 옮겨 놓았기 때문에 뒷날 후학들이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책에는 경운 선사가 당시 문인들과 교류했던 내용이 생생하게 옮겨졌다. 경운 선사의 ‘출가 60주년을 기념하는 수연첩’은 실로 당대 최고의 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글 좀 하는 사람치고’ 이 수연첩에 올라가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소위 종교 지식이 당시의 문인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알 수 있다. 시 문학을 비롯하여, 그림, 평론, 서간문 등 참으로 다양한 장르에 통달한 지성인임을 알 수 있다. 콧대 높은 당시의 양반들도 감히 경운 선사를 ‘중’이라고 폄하하지 못했다.

▲ 선암사 부도전에 모셔진 선암사 역대 선사들의 사리탑과 비. 왼쪽에서부터 화산스님 사리탑, 침명스님 비, 상월스님 비, 벽파스님 비(뒤쪽), 함명스님 비, 경붕스님 비, 경운스님 비, 금봉스님 비, 운악스님 비, 용곡스님 비.
현대의 스님들도 높은 지성과 글쓰기를 해야 불교가 빛난다는 교훈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출가와 재가가 교류를 하더라도 소위, ‘以文會友’하는 즉 ‘文’을 매개로 서로가 벗을 삼는, 격조 있는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손자 상좌 철운 조종현 스님에게 보낸 서간문이 많이 소개되었다. 절절하고 간절한 소원이 편지 속에 담겨 있다. 철운은 금봉의 제자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경운의 전강을 받은 금봉이 일찍 죽게 된다. 철운에게 거는 할아버지 경운스님의 기대는 이 책에 실린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옛 스님들이 제자 기르는 마음과 자세가 절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당시 개운사강원에는 석전 박한영 장로께서 학인들을 제접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당시 강원의 모습들이 부분 부분 드러나 있다. 당시 규봉종밀의 <원각경약소초>, 청량의 <화엄경수소연의초>등이 강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제자인 석전이나 진응을 대하는 스승의 겸손함과 격려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또한 백용성 선사의 <원각경> 저술에 대한 격조있는 평가는 ‘인물이 인물을 알아보는’ 교류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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