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설 운 (중앙종회 의장)

▲ 중앙종회 의장 설운스님.

계(戒)란 무엇인가

계(戒)는 어려운 말이 아니다. 행위(업)를 뜻한다. 우주가 생성된 이래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가 서로 어울려 생명체가 생겨났다. 하등 생명체에서 고등 생물까지 생성유지 진화 발전해 왔다고 보고 있다. 현 시점의 최고 보루의 생명체는 바로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중심이 되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이 세상을 지배하다시피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 살아가고 있는 자체가 업(業)이요 계(戒)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업에는 착한 행위의 업이 있고 악한 행위의 업이 있다. 착한 행위의 업을 계라고 하겠다.

 계를 제정하신 뜻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니르바나 즉 열반을 얻으시어 최고의 행복과 평화를 누리신 성자이셨다. 부처님 명호만 들어도 삼계 고(苦)가 없어지고, 그 얼굴만 뵙더라도 해탈을 얻을 수 있는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이시다.

제자가 되고 싶어 찾아온 비구에게는, “그래,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면 바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그만큼 인성이 순수한 시기였기 때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행 정진하시기를 20여년 동안, 1250여명의 제자와 더불어 생활해 가는 중 부처님의 수제자이면서 성격이 쾌활했던 한 비구가 보기에도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 연유를 물은즉 모든 자초지종은 빼고 부처님 몰래 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첫번째로 ‘남녀간에 정조를 지켜라’ 고 1계를 제정하셨다.

초기에는 계의 제정이 ‘수범수제(隨犯隨制 : 범함에 따라 계를 제정한다는 뜻)’였다. 거기서부터 차차 늘어나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등 흔히 말하는 구족계를 제정하셨는데 이 계야말로 근본정계(根本正戒: 가장 근본적인 바른 계)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근본정계를 말씀하신 근본목적은 첫째는 수행자의 마음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고, 둘째, 바른 정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이며, 셋째,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오래 오래 유지되게 하기 위함이다.

 소승계와 대승계

언필칭 북방계는 대승계요, 남방계는 소승계라 한다. 누구나 대승계를 수지하면 보살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고 장차 부처님의 지위까지 오를 수 있는 계이기에 대승계라고 한다. 소승계는 자기의 수행에 만족하고 스스로 오로지 계만을 지키기 때문에 소승계라 하며 많이 올라가야 소승사과(小乘四果)인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지위가 최고이다. 거기에 만족을 하는 수행 단계이기에 소승계라 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소승법보다 대승법과 대승계를 수지 독송하라 한 것이다.

 법맥과 율맥의 전승

법맥이란 부처님의 근본 깨달은 법을 계승해 내려오는 것을 말하고, 율맥이란 부처님의 율행을 계승해서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법맥은 부처님의 수제자 인도불교 초조(初祖) 마하가섭 제 2대 아난존자 제 3대 상라화수 제 4대 우바국다… 제 28대 보리달마(중국선종 초조)… 제 33대 대감혜능(육조대사), 제 34대 남악회양… 제 38대 임제의현… 제 55대 급암종신, 제 56세 석옥청공, 제 57세 태고보우(한국 임제선풍)… 제 62대 부용영관, 제 63대 청허휴정•부휴선수(쌍벽을 이룸), 제 64세 편양언기… 제 69대 연담유일 등 현금까지 전국 사찰에서는 역대 선 조사님의 법맥을 각 문중의 자긍심인 중흥조로 각각 숭앙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인도, 중국 우리나라, 특히 조선 500년의 억불숭유 질곡을 지나오면서도 법맥은 단절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율맥은 부처님의 ‘지계제일(持戒第一)’제자 우바리존자로부터 시작한다. 초대 우바리존자, 제 2대 우바국다존자, 우바국다존자의 많은 제자 중 특출 난 다섯 제자가 있었으니 담무덕존자 미사색존자 살바다존자 마하승지존자 가섭유부존자 인데 각각 부처님께서 설하신 율을 아주 근사치로 송출(당시에는 결집이라는 것이 문자가 있어 기록한 것이 아니고 외워서 전해졌는데 이것을 결집이라 함)했던 것이다.

부처님의 열반 직전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부처님이 계실 적에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열반하시면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오리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계율로 스승을 삼으라”고 유훈하셨다. 제자들은 부처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어 율(律)을 계승하는데 혼신을 다 바쳤다.

역사의 흐름은 거스릴 수 없어 인도는 불교가 힌두교로 바뀌고 불교는 남방과 북방으로 전파됨에 따라 문자로 격식을 갖추어 갔고 북방으로 전해진 율법은 ‘사분율’‘오분율’‘십송율’‘대승율’‘음광율’5부율로 발전했다. 그중에서 특히 담무덕존자가 결집한 사분율이 많은 율 수행자의 연구 해석과 주석이 다른 나머지 4부율보다 월등이 많아 ‘사분율’이 더욱 해석 발전하게 되었다. 티베트는 ‘서장율’, 남방불교는 남방율장 ‘빠리율’로 발전하였다.

 

▲ 지난 3월 4일 열린 제 14차 구족계 수계산림. 해동율맥 제 11대 율사 수진스님이 전계대화상을 맡았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중국율맥과 해동율맥의 재흥

세계역사를 돌아보면 이웃나라가 발전하면 같이 옆의 나라도 발전하고 이웃나라가 시들면 같이 옆 나라도 기우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의 말씀인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쓰러지면 저쪽도 무너지는’ 연기(緣起)의 법칙인 양 백제가 서해바다를 중심으로 호남일대와 경기도, 중국의 산동반도, 월남의 흑치까지 세력을 확장할 때 고구려는 만주벌판을 호령하였다.

이런 불교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당, 송,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율맥도 찬란하게 발전하였고 역사와 함께 부침을 하면서 불교의 흥망도 역사의 운명과 같이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원나라를 지나 명나라 말기가 되자 당시 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계율을 숭상하는 이는 드물었다.

이에 여형고심 율사는 “불법이 세상에 널리 유포되려면 계율에 힘써야 하니, 율학을 전공하여 부처님 은혜를 갚으리라.”탄식하고 남방에서 오대산 문수보살 도량까지 2000여리를 삼보일배로 3년만에 당도했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마정수기를 받아 오편칠취(五篇七聚)와 대 소승율을 돈오(頓悟)하고 율교를 중흥하여 청대에까지 율맥을 전승시켰다.

우리나라 불교역사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시대까지의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증명해 주듯이 세계미술사적으로 독창적이고도 빼어난 고려불화만 보더라도 고려불교의 발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가 무너지고 숭유억불 정책을 내세운 조선은 개국하자마자 10년이 안 되어 조선 제3 대 태종때에는 오교구산(신라 및 고려 전기의 불교종파로서 5개의 교종과 9개의 선종)을 병합하고 사원을 철폐, 승려를 환속시키고 사찰토지를 국유화했다. 도첩제를 강화하고 왕사 국사 제도를 폐지했으며 도성 70리 밖 사찰 토지는 국유화하거나 조세를 부과했다.

세종 문종 성종 대에도 억불로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걸었고, 연산군은 선교 양종의 본찰을 폐사시켰으며 비구니 사찰을 헐고 비구니스님들을 관방의 노비로 삼았고 승려들을 환속시켜 처를 얻게 하거나 관가의 노비로 삼는 세계불교 역사상 가장 큰 법난(法難) 500년을 겪었으니 이런 역사적 법난이 또 있을까 싶다.

조선조 동안의 역사 중 임진왜란 정유재란 사색당쟁을 비판하고 직언하는 유생들은 은둔하거나 귀양살이를 갔다. 그 후 일제시대 동학혁명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면에서 이런 내리막의 역사퇴보는 없었을 정도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이것은 아니다’라는 새로운 사상의 움직임과 불교의 정서가 서민 저변에서 움이 트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동학사상’이다.

그런 기반 아래 지금부터 약 200여 년 전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 스님의 손상좌 대은상인이 동국 계맥이 거의 단절됨을 깊이 탄식하고 은사 금담장로와 함께 하동 칠불선원에서 해동율맥 대중흥의 원력을 품고 부처님 전에 향을 꼽아놓고 7일 7야를 식음을 전폐하고 감응이 있기를 걸계(乞戒, 계 주시기를 빔)하였던 바 7일 7야 회향 새벽녘에 일도상광(一道祥光, 한줄기의 찬란한 광명)이 대은스님의 정상(이마 위)에 내림과 동시에 주먹만큼 한줌의 차디찬 향 기둥이 저절로 불이 붙어 타 내려왔다 한다.

스승인 금담장로는 이런 서상(瑞祥, 상서로운 기운)을 친히 보게 되자 부처님의 감응이 영험함에 크게 감복하여 이에 대계(대승보살계 최상승무생계)와 구족계(비구• 비구니•식차마나니 계)를 상좌인 대은낭오 율사에게 오체투지 절을 올리고 그 즉하에서 계를 받았으니 해동율맥 제 2대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제자인 대은낭오 율사가 해동율맥 초대(初代)가 되고 스승인 금담보명 율사가 제 2대가 된 셈이다. 이렇게 해 중국 율맥과 해동 율맥의 재흥(再興, 쇠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이 시작된 것이다.

 정통 해동율맥의 전승

중국불교가 다시 재흥의 조짐을 보이면서 공산화 초기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비약적 발전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우리 한국불교의 해동율맥도 활발하게 발전하여 현재 한국불교는 거의 해동율맥을 근본으로 계율을 전파하고 있다

해동율맥의 전승을 보면 초대 대은낭오 율사, 제 2대 금담보명 율사, 제 3대 해남 대흥사 초의의순 율사, 제 4대 남해 용문사 범해각안 율사, 제 5대 김천 직지사 제산정원 율사, 제 6대 구례 화엄사 호은문성 율사, 제 7대 장성 백양사 금해관영 율사, 제 8대 장성 백양사 만암종헌 율사, 제 9대 담양 용화사 묵담성우 율사, 제 10대 부산 금수사 혜은법홍 율사, 그리고 제 11대가 담양 용화사 도월수진 율사 이다.

중국율맥도 아니고 태국율맥도 아닌 순수하게 한국스님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사생결단으로 율맥을 중흥시키고자 한반도 최초의 불교 전래지, 김수로왕의 10명의 왕자 중 일곱명의 왕자가 성불했다는 하동 칠불암에서 기도를 성취하여 부처님께 받은 해동율맥은 세계 불교사에 길이 자랑할 만 하고 한국불교 1700년 역사의 자랑이며 긍지이다.

한국불교 조계종 당시에 묵담 대종사께서 5세 • 6세 • 7세 종정을 역임하셨고 박대륜스님이 총무원장을 맡아 종단을 이끄셨다. 한국불교 태고종이 창종되자 초대 종정에 대륜스님이 추대되셨다. 대륜스님이 종정을 3년 하시다가 묵담스님을 다시 태고종 종정으로 모셔야 한다며 적극 추천하시어 한국불교 태고종 제 2세와 제 3세 종정에 묵담스님이 추대되셨다. 이렇기에 한국불교 태고종은 정통 적자 종단임에 확신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문화면에서도 우리 태고종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 보유자 구해스님 △지금은 열반에 드셨지만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48호 단청장이셨던 만봉스님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 아랫녘수륙재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 23호 광주 영산재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담양 용화사 주지 도월수진 스님이 불복장(佛腹藏)의식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3년 전에 신청해 놓았다. 수진스님은 우리나라 전통 불복장의식의 최고 권위자로서, 문화재청에서는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에 들어간 상태이다.

수진스님은 정통 해동율맥 제 11대 율사로서 한국불교 태고종의 구족계 수계법회 시 전계대화상을 맡고 있다. 전계대화상은 계법을 전하는 종단 최고의 계사로 계단(戒壇)의 설치와 운영, 수계식 등을 관장한다.
우리 태고종은 자랑하려면 한이 없는 많은 인프라를 소유하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한국불교를 전승, 유지해 오고 있는 종단인 만큼 종도들은 큰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종단의 수계식 또한 정통 해동율맥을 전승하여 종단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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