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문 제 630호(2014년 11월 20일자) 번안시조

25. 與錦峯伯夜금 -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

향수는 밤이 되면 더한다. 깊은 회한도 마찬가지이겠거니 이를 달래는 방법은 지인을 만나 정담을 나눈다거나 녹차 한 잔에 정을 실어낸 사람도 많다. 개울물 졸졸졸 소리 내는 냇가에 앉아서 마시는 곡차 한 잔은 그 시름이나마 다 달랠 수 있었으리라. 향수를 달래는 마음은 수도승이나 범인들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수도에 정진하면서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그저 등이라도 칠 양으로 서로 반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지인 금봉선사를 만나 달 밝은 밤에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냐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與錦峯伯夜금(여금봉백야금)

詩酒相逢天一方 蕭蕭夜色思何長
시주상봉천일방 소소야색사하장

黃花明月若無夢 古寺荒秋亦故鄕
황화명월약무몽 고사황추역고향

시와 술 서로 만나 생각이 무궁한데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꿈 없었다네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리.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와 술 서로 만나 즐기나 천리 타향인데
쓸쓸한 이 한밤 생각 아니 무궁하겠네.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꿈 없었으니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리.

위 시제는 ‘금봉선사 백야와 같이 읊다’로 번역된다. 친한 도반선사를 만나 곡주 한 잔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시를 짓고 잔술을 돌려가면서 읊었던 시가 진취적인 생각이 되고, 수도정진에 대한 덕담이 되며, 반야시상 대승불교의 한 축을 논의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에서는 그런 언급이 조금도 없다. 시인은 비유법의 달인임을 확인하는 것처럼 이 시에서도 그런 시적 흐름을 목도할 수 있다.
시인은 도반 금봉선사와 시를 교환하고 술을 마시면서 잠시의 외로움을 잊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와 술 서로 만나 오늘을 즐기고 보니 천리 타향인데도 타향 같지 않고 쓸쓸한 이 한밤에 정겨운 생각 아니 무궁하겠는가 라는 시상으로 출발한다. 정감이란 이 시간과 동료와 만나는 이 시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간곡한 염원을 담았다.
화자는 담담한 시적인 표정은 조금도 변함없이 자연을 감상하며 마신 이 술잔이 가장 흐뭇했다는 정감을 시상 얼개에 빚어놓았다. 오늘밤같은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이런 꿈 없었다 하더라도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 라는 반어적인 표현에서 묘미를 본다. 시와 술로 감상적 마음을 채우는 마음 담아 정감 넘치는 가을을 생각한다는 시상에 공감하게 된다.

26. 次映湖和尙香積韻 - 조화인 줄 모르고 그림이라 착각했구먼

수도에 정진하는 스님들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그 연수가 선후배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속세에서 따지는 나이를 거론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범인들은 짐짓 나이 정도에 따라 선후배를 가름한다. 스승이나 선배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정신적인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다. 시인보다 9년이나 연상인 영호화상으로 불리는 스님을 많이 존경하고 학문과 사상에 큰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호화상이 보내온 향적봉 운을 차운하면서 조화인 줄 모르고 그림이라고 착각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次映湖和尙香積韻(차영호화상향적운)

蔓木森凉孤月明 碧雲層雪夜生溟
만목삼량고월명 벽운층설야생명

十萬珠玉收不得 不知是鬼是丹靑
십만주옥수부득 부지시귀시단청

썰렁한 숲 밝은 달빛 완연한 바다인데
십만 그루 나무 숲 그 구슬 하도 고와
조화(造花)로 착각했구먼, 그림인 줄 모르고.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숲은 썰렁하고 밝은 달빛은 외로운데
구름과 눈이 밝게 비추니 완연한 바다로구나.
십만 그루나 되는 구슬이 하도 고와서
조화인 줄도 모르고 그림으로 착각했구먼.
위 시제는 ‘영호화상 향적봉 운에 차운하여 읊다’로 번역된다.
석전영호(石顚映湖 1870~1948)선사는 한국불교 교단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분이다. 구한말 격동기와 일제 식민지 시대 속에서 민족 지도자이고 불교의 선구자였다. 이러한 영호화상의 시에 붙이거나 영호화상과 같이 다른 스님을 만나고 오는 길에 쓴 시는 전하지만, 영호화상의 원운 시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향적봉은 설천봉과 함께 덕유산이 명산이다. 이 지역을 아고산대 생태계라고 하는데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으며 맑은 날이 적단다. 숲은 썰렁한데 밝은 달은 외롭고, 구름과 눈이 비추니 향로봉에 비춘 조화들이 완연하게 바다와 같다는 시상을 일으켰다.
화자는 향로봉을 꾸며놓은 십만 그루나 되는 그 구슬이 하도 고와서, 조화인 줄 모르고 그림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고 시상과 연계된다. 영호화상이 시인에게 보내준 시에 대한 화답 시(詩)도 전한다.
‘次映湖和尙(영호 화상의 시에 부쳐)’이란 시제에서,

詩酒人多病(시와 술 일삼으며 병이 많은 이 몸)
文章客亦老(문장을 벗하여서 선사도 또한 늙으셨구려)
風雲來書字(눈바람 치는 날에 보내주신 편지 받으니)
兩情亂不少(가슴에 뭉클 맺히는 이 정을 어떻게)

라고 했으니 극진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27. 贈映湖和尙述未嘗見 - 창 밖의 가을시름으로 세월만 아득해라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한다거나 시간을 내서 극진히 찾아뵙는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편지를 써서 안부를 여쭌다. 사람들이 세상사는 이치와 인간관계를 하면서 사는 이치는 늘 그랬다. 영호스님이 시인이 수도하는 사찰을 찾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만해스님이 출타중이라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미처 달래지 못하여 차마 가눌 길이 없었던지 창밖에는 아직도 가을 시름으로 세월만 가득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映湖和尙述未嘗見(증영호화상술미상견)

玉女彈琴楊柳屋 鳳凰起舞下神仙
옥녀탄금양유옥 봉황기무하신선

竹外短壇人不見 隔窓秋思杳如年
죽외단단인부견 격창추사묘여년

버드나무집 고운님 거문고 타는 소리
봉황은 춤을 추고 신선이 내려오네.
창밖엔 가을 시름으로 세월만 가득해라.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버드나무집 고운님의 거문고 타는 소리에
봉황은 춤을 추고 신선이 내려오네.
대밭 건너 담 안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데
창밖엔 가을 시름으로 세월만 아득해라.

위 시제는 ‘영호화상을 만나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말함’으로 번역된다.
영호화상과의 끈끈한 인연이 많았던가 보다. 인연이라기보다는 뭇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선사이었기에 시인 역시 존경의 깊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인은 선사를 만나 뵈었더라면 추사의 아름다운 정경을 자상하게 말하려고 했겠지만 결코 그렇지 못한 마음을 시적 상상력으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은 문학적인 표현을 넘어서서 화가의 상상력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움을 한 폭의 화선지에 그려냈다. 버드나무집 아가씨가 섬섬옥수로 거문고 타는 소리에 하늘을 솟구치던 봉황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가 싶더니만 신선(神仙)이 은근하게 취해서 내려온다는 상상을 했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화가가 아닌 시인이었기에 이만한 상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리라.
화자의 넉살은 이제 후정(後情)의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밭 저 건너 담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데, 창밖에 펼쳐지는 가을 시름만으론 무수한 세월이 아득했다는 시상의 밑그림이다. 선경(先景)의 정(情)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후구의 정(情)은 어느 구절도 손에 잡혀지지 않는 명구라 해야 할 것 같다.

28.過九曲嶺- 뒤틀린 내 마음의 길이에는 미치지 못하리

마음이 언짢거나 뒤틀린 일이 있으면 혼자서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있다. 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거나 헛발질을 하면서 이른바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지인을 만나 긴 회포를 풀거나 마음에 스치는 교훈적인 말씀 한마디에 큰 위안을 삼는다.
이런 뒤틀린 마음을 풀기 위해 어디엔가 무작정 걷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시인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마음에 뒤틀린 바를 풀기 위해 지리산 구곡령 고개를 넘으면서 뒤틀린 내 마음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過九曲嶺(과구곡령)

過盡臘雪千里客 智異山裡진春陽
과진랍설천리객 지리산리진춘양

去天無尺九曲路 轉回不及我心長
거천무척구곡로 전회불급아심장

천리 밖 손객 하나 섣달 눈 보내고서
하늘을 닿을 듯한 굽이굽이 구곡령 길
아직도 뒤틀린 내 마음엔 미치지 못했으리.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리 밖 손객이 섣달 눈을 다 보내고서
지리산 깊은 골짝 봄볕에 길을 걸었네.
하늘에 닿을 듯한 굽이굽이 구곡령 길엔
뒤틀린 내 마음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리.

위 시제는 ‘구곡령을 지나며’로 번역된다. 구곡령은 가야산에도 있고, 황해북도 평상군에도 있으며, 지리산 자락에도 있는 고개의 이름이다. 아홉 개의 굽은 고개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고개가 많다는 뜻이겠다.
시인은 한 많은 이 고개를 넘어 수도를 위한 도행의 길을 걸었던 모양이다. 때로는 험하고 때로는 가파른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 도달한 곳은 어느 사찰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구곡령을 넘었던 시기는 모진 추위가 지나고 골짜기에 눈이 녹으면서 봄볕이 어린양을 부리는 시기였음을 알게 한다. 천리 밖에 내렸던 섣달 눈을 훨훨 날려 다 보내고 나서, 오랫동안 마음으로 다짐했던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봄볕이 비치는 길을 걸었다는 시상이다. 수도는 한 곳에서만 머무를 수 없는 것이 고승의 불문율(不文律)이 아니었나 싶다.
화자는 아마 어떤 뒤틀린 심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뭘까?’ 라는 의문이 든다. 내 조국 내 강토를 목청 높여 외쳤던 선사였기에 조국 잃은 설움이 치미는 그런 심사였음으로 짐작된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고 험한 구곡령 길일지라도 ‘뒤틀린 내 마음의 길이엔 못 미치리’라는 심회를 담아냈다. 화자의 심사를 누가 어떻게 어루만져드렸나에 대한 강한 의문은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긴다.

장 희 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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