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금속 공예기술의 정수” 평가

▲ 금동제 금강저
▲ 금동제 금강저 세부모습
▲ 금동제 금강령
▲ 금동제 금강령 세부 모습
▲ 청(금)동 제기 일괄 (보존처리 후)
▲ 청동 뚜껑합(유개합)
▲ 청동 삼족형향로
▲ 청동 수각향로
▲ 청동향완
고려시대 화려했던 금속 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금동제 금강저(金剛杵), 금강령(金剛鈴), 현향로(懸香爐), 대부완(臺附埦, 굽 달린 사발) 등 불교용구 77점이 서울 도봉서원터에서 쏟아졌다. 금강저는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불구(佛具)로, 마음의 번뇌를 깨트리는 보리심(菩提心)을 상징하고 있다. 금강령은 금강저의 한쪽 끝에 달린 방울로 금강저와 함께 불구로 사용된다.

(재)서울문화유산연구원(원장 김일규)은 도봉구청이 수립한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2012년 5월부터 9월 초까지 도봉서원터를 발굴 ·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도봉구 지역에서 불교가 매우 번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화려하고 뛰어났던 고려 시대 금속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물은 8월 21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공개됐다.

불교용구는 도봉서원터의 중심에 해당하는 5호 건물지 기단에서 출토되었다. 문화재청은 ‘건물지 기단을 파서 묻은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도봉서원 건축 이전 영국사 건물이 조성될 당시에 불교용구를 기단부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도봉서원터에서 출토된 금강령이 정교하고 뛰어난 수작이라고 평가하며, 오대명왕상과 사천왕상이 함께 배치되어 있는 문양은 국내에 처음 확인된다고 밝혔다. 물고기형 탁설(鐸舌,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안에 매다는 것)의 경우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 매우 독특한데 그 예가 몹시 드물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향로와 뚜껑합(유개합) 등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교용구가 나온 도봉서원은 1573년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를 추존하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 터에 창건되었다. 도봉서원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되었다. 1903년에는 지방 유림이 제단을 복원하고, 1970년에 사우(祠宇)를 복원해 오늘에 이르렀다. 사우는 선조(先祖) 또는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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