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문 제 623호(2014년 6월 5일자) 번안시조

7. 雪夜 - 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뼛속까지 차가운 감옥의 겨울이라고 한다. 그 겨울은 차갑고 어둡기만 했었다는 필설을 토해낸 어느 시인의 글을 희미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지 않을 만큼의 온도만 유지하는 모진 추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거침없이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서 꾸는 꿈을 잿빛이라고 표현했다. 시적인 표현의 진수에 글줄이라도 쓴다는 사람도 은유적 비유법 묘미에 고개를 끄덕이지 아니할 수 없으리.
시인이 ‘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깊은 밤 쇳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 라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雪夜(설야)

四山圍獄雪如海 衾寒如鐵夢如灰
사산위옥설여해 금한여철몽여회

鐵窓猶有鎖不得 夜聞鐵聲何處來
철창유유쇄부득 야문철성하처래

감옥 밖 눈의 바다 무쇠처럼 차가운 밤
철창은 여전히도 잠기어 열리지 않네
깊은 밤 쇳소리만이 어디서 들려오나.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방 산은 감옥을 두르고, 내린 눈은 바다 같은데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서 꾸는 꿈은 잿빛이어라.
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깊은 밤 쇳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

위 시제는 ‘눈 오는 밤인데도’ 이다. 동짓달 기나 긴 밤에 눈이 소복이 내렸던 모양이다. 감옥은 춥고, 인기척도 없어서 스산하기 그지없는 초라한 밤이었다.
잠을 청하려고 해도 잠은 오지 않고 인생의 회한이 스쳤을 것이다. 출옥해도 또 잡혀서 감옥에 들어올지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언가를 더 하리라 했으리. 조국 독립을 위해 무언가는 꼭 더 하리라. 백성들이 읽을 수 있는 읽을거리를 반드시 써내리라는 다짐도 했을 것이다.
사방 산은 감옥 한 바퀴 두르고, 밤새워 내린 눈은 큰 바다를 이루었는데,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서 꾼 꿈은 한갓 한 줌 잿빛처럼 지나가는 한 바탕의 소용돌이였음을 회한하고 있다. 멋진 시상을 일구어 냈다. 감옥의 벽을 사방 산으로, 밤새 내린 눈이 바다를 이루었다고 표현하면서, 찬 이불을 무쇠라고 했고 선잠으로 꾸었던 꿈은 잿빛처럼 스쳐 지났다고 표현했다.
화자는 잠긴 철창에 대해 자물쇠를 풀 기미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잠겨 열리지 않고 있는데 ‘깊은 밤 쇳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 라며 기다리는 심정을 노정했다. 화자는 갖가지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차가운 밤을 지새면서 보내는 가운데 쩌렁쩌렁 울리는 쇳소리 창문이 ‘행여나’를 기대했을 것이니.


8. 獄中吟 - 웅변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 했으니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호소가 들리는 듯하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언변의 진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제 침략시대는 한다 하는 지식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사석에서 시대를 비판하는 말도 그들의 감시망을 막지 못했고, 언론을 통한 필설도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을 전후한 기간에는 더욱 그랬다. 시인이 ‘웅변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고 했으니, 나는 이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다 사버리겠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獄中吟(옥중음)

壟山鸚鵡能言語 愧我不及彼鳥多
농산앵무능언어 괴아불급피조다

雄辯銀兮沈默金 此金買盡自由花
웅변은혜침묵금 차금매진자유화

앵무새 언변 좋고 내 언변 미치지 않네.
웅변은 은이라 하고, 침묵은 금이라 하니
금으로 자유의 꽃을 몽땅 다 사버렸으면.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농산의 앵무새는 언변이 좋기로 유명한데
내 언변 그 새에 미치지 못함이 부끄럽네.
웅변은 은이라지만 침묵은 금이라 했으니
나는 이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다 사버리겠네.

위 시제는 ‘옥중에서 자유를 원하며’ 로 번역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민중의 함성을 듣곤 한다. 그 만큼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는 방만과는 다르다. 내 자유라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자유는 안 된다. 방만한 생활을 해서도 더더욱 안 된다. 민주 시민으로서 나와 네가 공유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입장에서 취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다. 암흑의 일제 강점기에는 인간이 원하는 그런 자유가 없었다.
그래서 시인은 자유를 그리워하며 목말라 했을 것이다. 아니다. 영어(囹圄)의 신세로 감옥에 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언덕과 산에 사는 앵무새는 언변이 좋아 언제나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데, 시인의 언변은 그 새에 미치지 못함을 늘 부끄러워했다는 선경의 심회를 담아냈다. 시인의 언변과 앵무새의 언변을 비유한 착상은 시적인 농도와 분위기를 긴장으로 끌어내는 기법이다.
후정(後情)으로 이어지는 화자의 시상은 멋진 그림 한 폭을 잘 그려놓았다.
‘그러나 웅변은 은이라지만 침묵은 금이라 하니 / 나는 이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다 사버리겠네’라고 했다. 앵무새 같은 멋진 웅변보다는 화자 같은 침묵이 금이라고 하면서, 이제 이 금을 몽땅 팔아 소중한 자유를 사버리겠다는 시상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9. 獄中感懷 - 부처님도 원래는 보통 사람만 생각했으리

불전(佛典)에서는 부처의 존재 범위에 대해 가르친다.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고 했고, 부처는 보통 사람의 가슴에 있다고도 가르친다. 맞는 것 같으면서도 선뜻 고개가 갸우뚱거렸다면 부처의 참뜻을 모른다고도 말한다. 옥중에서도 예불을 드리면서 대자대비의 진실한 가르침은 선자(禪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가슴이 있는 한 가르침을 살핀다. 시인은 근심과 즐거움은 근본이 빈 것(空)이요, 오직 마음만이 있거니, ‘부처님도 원래는 보통 사람만 생각했으리’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獄中感懷(옥중감회)

一念但覺淨無塵 鐵窓明月自生新
일념단각정무진 철창명월자생신

憂樂本空唯心在 釋迦原來尋常人
우락본공유심재 석가원래심상인

한 생각 깨끗하고 달빛만은 곱고 고와
공덕은 우락(憂樂)인데 마음만 가득 하네
원래는 부처님께서도 보통 사람 생각했네.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다만 깨닫기를 한 생각 깨끗하여 티끌도 없었는데
철창으로 새로 돋는 달빛만 고와라
우락(憂樂)은 근본이 공이요, 오직 마음만 있거니
부처님도 원래는 보통 사람만 생각했으리.

위 시제는 ‘옥중 감회는 남다른데’ 로 번역된다. 일제는 대선사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시인의 입이 군중의 심리요, 시인의 글이 민중의 대변이며, 시인이 두드린 목탁 소리가 민족의 함성이었으리. 그래서 철저한 감시 감독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 아니겠는가. 만해스님은 독립선언서 서명 33인 중 한 사람이었고, 그 말미에 공약 3장을 초안한 한 사람이었으니. 이래저래 청일전쟁 즈음에 다시 옥중 신세를 지면서 남다른 감회를 탄원에 가깝게 상상의 나래로 시를 읊었다.
시인은 다만 깨닫기를 ‘한 생각 깨끗하여 티끌도 하나 없었는데, 철창으로 새로 돋는 달빛만이 고와라’ 라고 음영했다. 앞 기구는 깨끗하고 맑은 자신을 일컫고 있지만, 뒤 승구는 그랬음에도 철창을 등에 짊어진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었음을 한탄하는 시상이다. 침략자들의 눈에는 지도자는 외롭지 않아 늘 눈에 가시로 보였음이 분명했으리라.
인간의 근심과 즐거움은 그 근본이 실체가 없는 텅 빈 공(空)의 세계요, 오직 진실한 마음만이 있거니 라고 하면서 ‘부처님도 원래는 보통 사람만 생각했으리’ 라는 상상의 시심을 쏟아내었다. 높은데 있는 대자대비가 아니라 가장 어두운 곳에, 가장 그늘진 곳에 있으셨음을 마음에서 우러나와 쏟아내는 시상의 여운이겠다.

10. 黃梅泉 - 끝나지 않은 황매천의 한, 남기지 마시라

민영환은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황현은 1901년 한일합방의 부당성에 의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장지연은 1905년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의 사설을 실었다.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 여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황성신문 2101호>’라고 했다. 시인이 ‘끝나지 않은 황매천의 한, 남기지 마시라, 큰 위로와 괴로운 충성 사람들은 절로 알리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黃梅泉(황매천)

就義從容永報國 一瞑萬古劫花新
취의종용영보국 일명만고겁화신

莫留不盡泉臺恨 大慰苦忠自有人
막류부진천대한 대위고충자유인

의로운 길 객을 따라 영원히 보국하사
부릅뜬 눈 새 꽃으로 만고에 피어나리
큰 위로 괴로운 충성 사람들은 절로 알리.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의로운 길로 객을 따라 영원히 보국하시니
한번 부릅뜬 눈, 만고에 새 꽃으로 피어나리
끝나지 않은 황매천의 한, 남기지 마시라
큰 위로와 괴로운 충성 사람들 절로 알리.

위 시제는 ‘매천 황현을 기리며’로 번역된다.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한일합방의 소식을 접하고 절명시(絶命詩)를 남기며 분연히 자결한 조선의 선비다. 1905년 51세에 을사늑약의 비통한 현실을 당하자, ‘문변3수(聞變三首)’를 지어 망해가는 나라의 서러움과 울분을 토했고, ‘오애시(五哀詩)’를 지어 매국노를 성토하고 애국지사들을 애도했다. 을사년 10월 변란에 정승 3공(조병세·민영환·홍만식)이 자결함에 분을 삭이지 못하면서 사모의 정을 느껴 두보의 8애시를 모방한 시를 지었다고 했다.
만해스님은 이러한 올곧은 선비 정신을 듣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로운 길로 객을 따라 영원히 보국하시니, 한번 부릅뜬 그 눈 만고에 새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 하며 위로의 정한을 담은 시심이다. 이렇게 보면 매천은 애(愛)보다는 의(義)를 존중했을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화자에게는 끝나지 않은 매천의 호소가 잔잔하게 남아 있음을, 아직도 마르지 않은 먹물의 흔적이 감돌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심을 담아냈다. ‘끝나지 않은 황매천의 한을 남기지 마시라’라는 호소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화자는 매천을 향해 큰 위로와 괴로운 충성은 먼 훗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절로 알게 될 것이라는 너그러운 시심을 담아냈다.

장 희 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