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문 제 623호(2014년 6월 5일자) 시론

▲ 제주대 중문학과 안재철 교수

가슴이 답답하다. 온 나라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때문에 넋을 잃고 있다. 슬픔과 분노에 빠져있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퇴선명령만 내렸더라면, 아니,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방송하지 않았더라면 400여 승객이 모두 하선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기다리라고 해놓고 자기들만 허겁지겁 탈출한 비겁한 사람들. 인간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었다는 말인가?
어차피 버려야할 배인데, 무엇을 감추려고 어린 생명들을 함께 수장시켜버렸다는 말인가? 정말 폐선 직전의 배를 침몰시켜 보험금이라도 챙기고자 했다는 말인가? 제 놈들만 살아남는 것이 그들이 믿는 구원이라는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는 무엇인가? 마치 장물을 껴안고 무죄를 주장하는 것과 같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도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니, 어떠한 패악(悖惡)을 저질러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자유인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뛰어들어 아이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했거늘, 책임이고 뭐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저 하나 살겠다고 허겁지겁 빠져나오는 저들을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불행한 이웃을 보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거늘, 오직 돈 벌이를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구원파라는 이유로 저런 자를 선장이나 기관장으로 임명하여 또 다른 돈벌이를 하다가, 수없이 많은 어린 생명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고도, 신도들의 비호를 받으며 버티면서 종교탄압이라고 말하는 저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어찌하란 말인가?
구조한답시고 출동하여 우왕좌왕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사람들과, 겉으로는 부랴부랴 달려와 지휘를 한다지만 처음부터 아는 것이 없으니 눈만 껌벅거리는 사람들은 또 무엇인가? 왜 그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그 자리에 있었는가? 도둑은 도둑끼리 친구하여 주인의 것을 훔친다. 이 도둑은 돈을 훔치고 저 도둑은 명예와 자리를 훔치더니 급기야는 국민의 생명까지 그들의 돈이나 지위와 바꾼 꼴이 되어버렸다.
“예가 아니거든 보지 말며, 예가 아니거든 듣지 말고,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거든 행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했거늘, 하루 밤을 지내고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사고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집단무의식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보다.
욕하면서 배운다더니,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 모두가 서로서로 부정한 방법으로 부(富)를 취하고 높은 자리에 못 올라 안달이 난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와 탐욕이 엉킨 비루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세월호’ 사건이다. 거울에 먼지가 끼면 사물이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듯이, 마음은 원래 깨끗하지만 추잡한 사건들로 더럽혀져,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다투어 부정한 짓을 하고도 잘못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구가 태양을 돌아 365일이 흘러서, 우리가 정한 1년 뒤의 같은 날이 되는 것이지, 시간이 365일을 지나 한 번씩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흐르고 흘러, 어쩌면 이 우주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가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시간은 지나간 것이라고 하지만, 말을 하면, 그 소리는 1초 후에 340m 떨어진 거리에 가 있고, 2초 후에는 640m 떨어진 거리에 가 있듯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시간은 멀리멀리 가 있을 뿐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몸으로 짓는 행위(身業)도, 입으로 짓는 말(口業)도, 머리로 짓는 생각(意業)도 모두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과거의 모든 업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우주를 떠다니고 있어서, 눈으로는 볼 수 없을지라도, 언제나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니면 역사에 기록돼 있다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반복되어 또 다시 언젠가 나타날 수 있다면, 이미 있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정의롭고 즐거운 것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잠시 호들갑을 떨고 분개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냄비근성을 가지고는 또 다시 이런 참사가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대처 및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밝혀져야 하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나만 좋으면 된다, 나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는 생각으로 방관하면 다음에는 내 차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그렇기에 저들 무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았으면 됐다’는 생각으로, 중생의 원(願)에 응(應)하여 이 땅에 나투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우리는 부처님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지만,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불법(佛法)을 알게 되었으니, 내가 나 아닌 것을 가르쳐 모두가 탐 진 치 삼독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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