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추운 날씨라 오래간만에 롱 패딩 점퍼를 옷장에서 꺼낸다. 러닝셔츠와 5부 반바지도 잘 가려줄 것이다. 지갑을 챙기고, 슬리퍼를 신을지 고민하다 밑창이 살짝 떨어져 나간 스니커즈에 겨우 발을 욱여넣는다. 동네 병원에 갈 참이다. 걷기에는 먼 거리지만, 의사가 걷는 것을 추천해서 오늘은 걷기로 한다. 병원은 익숙한 간판을 달고 있다. 녹색등이 들어오길 기다릴 때마다 눈에 띄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병원에 갈 거라 상상해본 일은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누구든 도무지 설명 안 되는 경험 한 가지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로 그렇게 되는, 달아나려 발버둥 쳐도 소용없는 그런 경험 말이다. 내가 뒷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를 따른 건 내가 일반 사람과는 다른 얼간이라서, 이십 대의 어린 나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뿌리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 애당초부터 나를 겨냥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따금 절묘한 삶의 올가미에 걸려 방황하곤 한다. 나의 사람들에게서, 가치관을 통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비운을 맞이한다. 그것은 실로 운명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카페에서 그의 얼굴을 대했을 때 이미 걸려들었던 것 같다.

나는 녹슨 문고리를 돌려 현관문을 연다. 하늘이 제법 우중충하다.

식판을 들고 내 쪽으로 걸어오는 예인이 보였다. 학생식당 한구석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모처럼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그녀는 동아리방에 잠깐 볼일이 있다고 나보러 먼저 먹고 있으라고 한 것이었다.

법복 차림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반야심경을 외운답시고 작은 책자를 끼고 다니며 구시렁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학과 아이들은 그 모습에 도통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그들이 그녀에게 예인과 비구니의 합성어인 ‘예구니’라는 별명을 하사한 것은 덤이었다. 그녀는 학과의 유일한 불교 동아리 회원이었다.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정작 엄마는 꽤 규모가 큰 교회의 담임 목사라고 했다. 들은 바로는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이 잦은 듯 보였다.
“선배. 퍽퍽 먹어 좀.”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거리는 내게 그녀가 꾸짖었다.
모처럼 같이하는 식사였지만, 실없는 한마디를 던져놓더니 정작 자신은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뭐 보는데. 슬쩍 물어봤을 때,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다음 수업이 교양 한문인데, 사자성어 과제를 못했다고 했다. 그 표정이 귀여우면서도 다소 우스웠다.
“교양은 대충 해도 돼.”
“선배가 책임질래? 다음 학기도 못 다니게 생겼는데.”
내 말에 예인이 신경질적인 억양으로 대응했다. 그녀가 어려운 상황인 걸 알았지만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왜 화는 내고 난리야”라고 중얼댔다.

한동안 예인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집안 사정으로 한 학기를 휴학했다. 나도 만날 여유가 없었다. 사적으로 누굴 만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일터로 나가야 했다. 다행히 지저분해 보이는 옷차림과 땀내도 존중해주는 그녀였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학과에서 몇 되지 않는 친분의 관계 중 한 명에 속했다. 우리 사이에는 선후배 관계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둘 중 누구도 그 뭔가를 애써 열어보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녀와는 벚꽃이 지고 늦봄의 생기가 달아오를 즈음, 전공과목을 통해 알게 됐다. 조원들끼리 서로의 고민을 듣고 대안을 마련해 주는 식의 독특한 토론 수업이었다. 한 사람은 상담사의 편에서, 한 사람은 내담자의 편에서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였다.

당시 예인은 새내기여서 쑥스러운 마음이었는지 말이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그녀는 내 몇 마디에 울음을 터트렸다. 아마도 헤어스타일에 대해 뭐라고 빈정댔던 것 같다. 내 딴에는 친해지려고 던진 농담이었을 뿐이었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인 게 화근이었다. 예인은 펑펑 울면서 자리를 뜨려 했지만, 담당 여강사가 두 의견을 듣고 중재적인 말을 잘 구사한 덕분에 오해가 풀려 친해지게 된 것이었다. 그 뒤로 예인은 나를 꽤 편안한 선배로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는 별 대책도 없이 들어주는 식의 관계가 이어졌으니까.

휴학하기 전부터 예인은 성적에 민감했다. 집안의 경제권을 쥔 엄마가 등록금 지원에 제약을 걸어서였다. 그녀는 매번 엄마와 언성을 높이며 통화했지만,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듯했다. 보통 크리스천은 주일예배를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인은 휴학 기간에도 학교에 찾아올 만큼 동아리 활동에 열정적이었는 데다가 일요일에는 오전부터 청년회 법문을 들으러 절에 갔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리가 만무했다.

한번 그녀를 따라 강남의 어느 대형 사찰에 간 적이 있었다. 학교 인근 주점에서 종강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과 대표의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나를 끌고 절로 향했다. 이 녀석. 내가 가장 만만한 건가.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뜬 마음이었던 것 같다. 청년 법회가 열리는 대웅전에 도착했을 땐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일어선 채로 뜻 모를 염불을 외는 건 고역이었다. 중간중간에 원망에 찬 눈초리를 몇 번 보냈지만,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죽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법문 내용은 나름 흥미로웠다.

예인은 제멋대로 카페종업원에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는 법회는 어땠냐고 물었다. 그날은 유독 진지해져서 묻지도 않은 얘기를 떠들어대더니 아빠가 생전에 스님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핸드폰 케이스 안에 넣어 둔 아빠의 바랜 증명사진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사진 속 깎은 머리를 쏙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별말 없이 밥을 몇 숟가락 뜨던 사이에 전화벨이 울렸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만 좀 해. 알아서 갈 거라고!” 예인은 소리를 지르고 냅다 전화를 끊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짧은 통화를 마친 뒤 엄마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녀는 먼저 일어서겠다는 말을 남기곤 뛰듯 학생식당을 걸어나갔다. 요번엔 사태가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식판에 담긴 음식물을 보니 국만 몇 숟갈 뜨다 만 것 같았다.

그녀가 두고 간 식판까지 정리한 뒤에 흡연 부스로 향했다. 예인이 걱정스러웠다. 괜찮을까. 종교란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한단 말이야.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며 중얼거렸다. 무신론자로서 종교에 기대는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신심이란 죄와 통증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신을 통해 위안과 더불어 횡재를 얻으려는 욕심 아닐까. 그렇게 보면 인간의 본성이 묻은 간사한 심보일 뿐이었다.

엉덩이에서 문득 진동이 느껴졌다. 제길. 욕이 나왔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려다 그만 놓쳐버린 것이었다. 식판 정리할 때 하필 뒷주머니에 쑤셔 넣은 게 잘못이었다. 액정 가운데 여러 갈래로 금이 갔다. 핸드폰 액정을 바지에 서너 번 문지르고 도착한 문자들을 확인했다. 십 여분 전에 온 문자가 눈에 띄었다.
―인성 씨, 저 고종우 상담사입니다. 시간 되면 전화 괜찮을까요.
정 교수가 건넨 명함의 그 사람이었다. 벌써 반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먼저 걸면 될 텐데. 나름 매너를 지킨 걸까. 이모저모로 생각하던 중에 주차장 건너편 보행로에서 정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곁에는 좀 전에 짜증을 부리던 예인이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예인에게 뭘 설명하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반년간 그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작년 면담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가 직접 나를 교수실로 불러들인 날이었다.

초겨울이었다. 사회복지학개론 수업이 끝나고 몇 학생들이 강의실을 벗어날 무렵이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학과 교수였지만 지도 교수도 아닌 그가 나를 따로 불러낼 만한 일이 무엇일까 싶었다. 교수실은 무척 추웠다. 희미한 향내가 났다. 기묘한 분위기에 긴장감은 더해갔다. 그는 고개를 바짝 들어 거기 앉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정 교수는 추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히터를 켜 내 쪽을 향하게 했다. 그러나 으슬으슬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교수실 책장에는 수천 권의 책이 조잡하지만 나름 일정한 형식을 갖춰 배열돼있었다. 『차크라의 기적』이라거나 『깨달음의 연금술』,『티벳 사자의 서』와 같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각종 종교와 인도철학에 대한 서적이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커피 좋아하나. 그는 묵묵히 서류를 정리하다가 한 마디를 내놓았다. 다 좋죠. 곧 나는 대답했다.
“자네, 성적이 어떤가.”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털어 넣으며 그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가 띵했다. 더구나 눈을 치켜뜬 모습은 사나웠다. 대학생이 굳이 성적에 대한 훈계를 들어야 하나. 공부 좀 하라고, 취업하기 어렵다고 야단치려는 걸까. 실망감이 엄습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가 허허 웃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자신도 대학 시절엔 공부를 안 했다고 했다. 그때는 노는 것도 공부라면서. 그는 곧이어 말했다.
“그런데 너, 노는 공부는 좀 하고 있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제야 정 교수가 왜 날 불렀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정곡을 찌르는 묘한 말투에 정신이 얼떨떨했다.

대학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긴 법정 공방 끝에 다행히 이래저래 사태가 진정되어 회생 가능성을 보였고 아버지는 좁은 사무실을 빌려 일을 재기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도 공장을 전전하던 터라 집밥만 축낼 수야 없는 일이어서 나는 그동안 모아둔 쌈짓돈으로 달동네에 반지하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번번이 벽에 곰팡이가 슬고 하수구에서나 날 법한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방에서 산다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이젠 혼자 힘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학업과 병행하며 등록금을 마련했다. 때론 일급이 높은 막일도 가리진 않았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새벽부터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사무소 직원들은 어린놈이 패기가 넘친다는 농담을 가끔 던졌지만 그럴 때마다 멍하니 쓴웃음을 지어 보여야 했다. 과중한 노동을 일삼으니 몸에도 무리가 왔다. 요통과 어깨통을 달고 지냈다.

일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잦았고, 수업 시간에도 늘 졸곤 했다. 동기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멀어지는 건 한순간이었지만 관계의 회복은 아득하기만 했다. 꾀죄죄한 차림새와 혼미한 정신으로 캠퍼스를 돌아다닌 탓일까. 정 교수의 눈에 띈 모양이었다. 그가 그토록 내게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는 블랙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내 앞에 올려놓더니 “뜨거워”라고 말하곤 소파에 앉았다. 그때 무릎에 놓인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만 종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그걸 계속 만지작거렸다. 손목에는 샛노란 광채가 나는 단주를 끼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가 수업 시간에 종교적인 견해를 내비친 적이 있었는지 생각했지만 가물가물했다.

잠시 바닥을 응시하던 그는 말했다. 우리 과 선생들뿐만 아니라 선후배, 동기들 모두 네 편이니까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고. 그의 말은 느렸지만, 힘이 있었다. 종종 던지는 삶에 대한 인상적인 말들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의지하고 싶은 어른이었다. 중간중간에 헛기침으로 말을 잠깐씩 쉬어가는 모습이 퍽 진중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가 우울증에라도 걸렸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정 교수는 명함 하나를 던지듯 건넸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무뚝뚝함이 배어 있었다. 뭔가 거북했지만, 배려심 같은 것이 묘하게 뒤섞인 모습이었다. 명함에는 핸드폰 번호와 이름 석 자, 그리고 미술 심리상담사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다.
“유능한 상담사야. 미리 말해뒀으니 꼭 전화해라.”
정 교수는 곧 수업이 있다면서 일어섰다. 나올 때는 히터를 끄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명함은 구김살이 잡힌 모양새로 너절너절했다. 대단한 일이라도 있어서 부른 줄 알았더니만 콧방귀가 나왔다. 고종우. 명함에 박힌 이름 석 자를 나직이 여러 번 발음해 봤다. 정 교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관장 직위를 겸했는데 그쪽 직원인가 싶었다. 왠지 호기심이 일기도 해서 한 번쯤은 연락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분주한 일상에 여유도 없었고 때마침 정 교수가 대학과 협약을 맺은 사회복지단체의 주선으로 장기 출장을 떠난 터였다. 자연스레 그 날의 면담은 잊혔다. 나는 또 비슷비슷한 일상을 이어갔고, 그동안 홀로 사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반년이 지나서야 종우에게 문자가 온 것이었다.

나는 정 교수와 예인의 모습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는 달리 통화는 금방 끝났다. 그의 일방적인 물음에 네, 라고 몇 번 대답한 게 통화 내용의 전부였다. 그는 내일 신촌에 있는 D 카페에서 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의아스러운 기분이 일었다. 나는 담뱃불을 짓밟고 곧장 학교를 벗어났다.

허름한 카페였다. 삐걱대는 나무판자로 된 바닥은 음침했고, 남루한 창호지가 붙은 격자창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레드 계열의 서양식 커튼이 걸려 있었다. 주문할 겸 직원에게 물으니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 인테리어 같다고 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띠는 그도 잘 모르는 듯했다. 한옥도 아니고, 군부 정권 시절의 교실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 속에서 알 수 없는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 약속보다 일찍 카페에 당도한 터라 나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한 라떼가 나왔을 즈음에 누군가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살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종우였다. 입구에서부터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는 다른 동행자와 함께였다.

삭발한 머리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이는 쉰 언저리인 듯했다. 민머리가 왠지 억지스러워 보였다. 그는 모 교육방송에 나오던 뚝딱이 아빠의 안경과 흡사한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기괴한 안경은 이상하리만치 그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안경테를 기점으로 아랫부분만 쳐다보려 애썼다. 빛나는 민머리가 부드러운 인상을 뭉개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였다. 옆 동행자는 내 또래처럼 보였는데, 스포츠머리에 둥그런 얼굴과 아래로 찢어진 눈매가 특징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종우를 가리키더니 장난기 넘치는 말투로 “이 분은 위대한 셀프컨트롤 프로그램의 개발자이십니다”라고 외쳤다. 종우가 스포츠머리의 입을 틀어막더니 말했다.
“하하. 어쨌건 반가워요. 관장님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역시 내 추측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디저트를 사겠다면서 스포츠머리에게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하도록 시켰다. 나는 종우에게 나를 어떻게 알아봤냐고 물었다.
“예전에 인성 씨 번호를 미리 받아놨었죠. 메신저에 뜨던데요.”
그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실실거리며 대답했다. 전화번호 연동 시스템을 통해 메신저 프로필에 올린 내 사진을 본 모양이었다. 쑥스러운 마음을 물리치려는 의도였는지 우리는 먼저 날씨나 연예인 가십거리에 대해 노닥대다가 그가 내 학교생활에 대해 운을 떼면서부터 진중한 대화를 했다. 대화가 무르익자 나는 부모님에게도 미처 하지 못한 얘기까지 떠들어댔다.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기특하시다. 외아들이라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을 텐데. 정신력 끝내주네요.”
막일도 가리지 않는다는 말에 그가 호응했다. 그는 단점도 장점으로 여길 줄 알았다. 내가 말을 잘 이어가지 못해도 금방 이해하고 공감했다. 시뻘건 뿔테안경과 빛나는 머리는 좀체 적응이 안 됐지만, 왠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했다. 나는 존댓말이 민망하다고, 말을 놓으시라고 했다. 그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인성 씨, 예인이 알지? 그 친구 내 강의 들은 지 꽤 됐거든.”
“그 예쁘장한 친구.” 스포츠머리였다. 내가 종우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줄곧 고개를 파묻고 게임만 하던 그는 처음으로 말을 거들었다.
“예, 제 후뱁니다.”
나는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종우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자신에 대한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단지 스포츠머리에게 ‘셀프컨트롤 프로그램의 개발자’라는 의문의 소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제야 왜 보자고 한 건지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에게 물었다.
“무슨 강의를 하시는 거예요?”
“행복에 대한? 뭐, 그런 거야.” 종우는 뜸을 들이다 모호한 말로 답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뭔가 흐지부지했다. 반가운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유에프오를 타고 온 퍼런 머리통의 외계인에게 취조를 받고는 풀려난 기분이랄까. 언짢은 감정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허탈감에 그쳤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는 극심한 열병처럼 번졌다. 무슨 까닭인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은 무더웠다. 커튼을 걷고, 냉동실의 얼음 트레이를 꺼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냉수에도 몸의 열은 순순히 식지 않았다. 예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이나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곧바로 종우에게 강의를 듣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답장이 왔다. 수요일 6시에 신촌 아트레온 7층의 스터디센터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데스크에 서 있는 남자 직원이 이름을 묻더니 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직원이 똑똑 노크를 했고, 안에서 종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예인이었다. 예인은 눈을 감은 채로 책상 바닥에 곧게 누워 있었다. 정말이지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종우는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손짓으로 그를 내보냈다.
“좀 늦었네. 아무튼 잘 왔어.” 종우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초행길이라 길을 헤맨 탓에 십여 분쯤 늦었다. 사과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눈웃음을 띠었고, 민머리에 해괴한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카페에서와는 달리 그 모습이 섬뜩했다. 스포츠머리는 화이트보드 옆쪽에 놓인 검은 스툴에 앉아 있었다. 한쪽 팔을 탁자에 올려 턱을 괴고 있었지만 분명 졸고 있었다. 코를 약간 고는 것 같았다.

다시 누워 있는 예인을 봤다. 편안해 보였다. 조금 안심이 됐다. 뒤편에도 책상에 눕거나 의자에 앉은 채 눈을 감은 서너 사람이 있었다. 한 여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것 같았다. 종우는 이내 속삭이듯 말했다.
“좀 당황스럽지? 괜찮아. 다들 자신이 디자인한 무의식 세계에 심취해 있는 거야. 누구는 그것에 감명받아서 미소 짓고, 누구는 펑펑 울기도 하지.”
그는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했다. 상담사로서 상담 치료에 한계를 느끼고 좌절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템플스테이에 다녀온 뒤론 명상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특효제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한동안 수련원에서 명상을 익혔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셀프컨트롤 프로그램 역시 명상의 일환이라고 했다.
“한국 선불교는 화두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텅 빈 본질의 경지를 지향하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단지 그 원리를 일상에서 활용하는 거야.”
그는 절반만 이해가 가는 얘기를 떠들어댔다. 때론 장 마르탱 샤르코의 최면술을 예로 들거나, 나가르주나(龍樹)의 중론을 언급하기도 하면서 정신개벽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가끔 예인을 흘긋거렸다. 예인은 미동도 없이 같은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과한 손짓을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고도의 집중에 이르면 우리는 무의식의 활동을 인지하게 되지. 하지만 무의식은 대체로 부정적인 기억으로 차 있기 마련이야. 부정을 쓸어 내고 긍정을 확보해야 해.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야.”
그는 막대기로 작은 종을 쳤다. 신비로운 울림이 온몸을 감싸 안는 듯했다. 그는 숫자를 거꾸로 세었다. 몸에 점점 힘이 빠졌다. 여러 형상이 스쳤다. 잃어버린 추억과 옛친구들이 떠올랐다. 오늘 지하철에서 본 눈빛들, 정체불명의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주체할 수 없는 생각들이 마구 회오리쳤다. 그는 종을 몇 번 더 치더니 잡념을 따르지 말고 종소리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감이 넘친다, 나의 눈빛은 총명하다, 나는 두려울 게 없다, 군중들이 나를 우러러본다, 그는 말한다. 얼마 후 그는 내게 상상의 주도권을 돌린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포마드로 머리를 올려 정돈한 내가 단상에 오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큼직한 목소리로 청중을 휘어잡는다. 곧 연설장이 떠나갈 듯 커다란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나는 빛 속에 잠기고, 따뜻한 온도에 온몸을 내맡긴다. 모든 게 광명 그 자체다.

한참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차원을 서성이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종소리에 눈을 떴다. 몽롱한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나 다시 눈이 감기진 않았다.
“다들 고생 많았고, 다음 주에 또 봅시다.”
종우는 손뼉을 치면서 그렇게 말하더니 중요한 일정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스포츠머리는 여전히 졸린 듯한 몰골로 종우의 가방을 챙겨 그를 뒤따라 갔다. 정신이 얼떨떨했다. 마른세수를 하고 핸드폰에 비친 얼굴을 봤다. 그 순간 뭔가가 퍼뜩 머릿속을 스쳤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예인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로비를 지나 복도로 뛰었지만 이미 승강기를 타고 내려간 듯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선배. 무슨 일이야? 연결음이 서너 번 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네 얼굴을 본 것 같아서. 언제부터 안 거야? 나는 곧장 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이 사람 언제부터 알았어? 나는 다시 물었다. 작년 이맘때였나. 나 좀 바빠서 다음에 연락하자.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쌀쌀한 어조였다. 기분이 상했지만 금세 마음을 고쳤다. 아무래도 엄마와의 갈등으로 여전히 마음을 썩이는 듯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종종 눈을 감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눈을 감는 건 다반사였고, 누운 채로 감기도 했다. 아마 학교 축제 기간이었을 것이다. 학과 천막 옆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예인과 도시락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예정된 아이돌 공연을 관람하려고 나는 천막에서 후배들의 뒤치다꺼리를 도우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고, 예인은 법복 차림을 한 채로 축제 일을 도우라는 과 대표의 명령에 시달리다가 뒤늦게 한술 뜨는 중이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유독 그날따라 육류를 먹지 않고 내 쪽에 얹어놓았다.
“배불러 인마. 고기는 왜 또 안 먹는 거야?”
“글쎄, 죄를 짓는 기분이랄까.” 예인은 속삭이듯 말했다. “선배, 그거 알아? 우리가 먹는 돼지를 도축할 때 상당수는 전기기절 방식을 이용하긴 하지만 단번에 기절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거. 반쯤 의식이 남은 돼지가 발버둥질 치는 사이에 도축업자는 방혈을 위해 칼로 돼지의 대동맥을 끊어버린대.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돼지는 큰 고통에 허우적거리게 돼. 보여줄까?” 예인은 느닷없이 도축 과정에 관한 설명을 하더니 내 쪽으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아, 됐어. 누가 예구니 아니랄까봐.”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예인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무안했는지 밥을 먹다 말고 눈을 감고 누웠다. 밥 먹다 바로 누우면 체한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을 때 그녀가 쥔 핸드폰 뒷면에 누군가가 드러났다. 손에 가려 확실하진 않았지만, 분명 까까머리 아빠였다.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새하얀 얼굴을 아무렇게나 훑었다. 갑자기 그 청초한 얼굴과 쥣빛 법복이 가혹할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져서 옅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낯간지러운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냐고 계속 물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끈질긴 물음에 질렸는지 “명상”이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물론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바론 스터디룸에서 경험한 것은 명상과는 달랐다. 스스로 집중에 이르는 방식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허용되고 통제되는 방식이었으니까. 신기했다. 그런데 미술 심리상담사라는 그가 정작 미술, 상담과는 별 연관이 없는 심리 치료법을 개발하고 가르치고 있는 건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상담 치료에 대해 한계를 느낀 사정은 알겠다. 그럼 왜 정 교수는 그가 상담사라고 했을까. 명함에도 그의 직함은 상담사라고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복지계의 저명한 권위자인 정 교수가 제자에게 그를 소개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예인도 정 교수를 통해 종우를 알게 되었으리라. 그녀가 정 교수를 만난 건 종우와 연관된 일 때문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녀의 말대로 작년 이맘때라면 그녀가 동아리에 든 시기와 비슷한 시기였다. 셀프컨트롤이 한국 선불교의 수행법을 빌린 프로그램이라던 종우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정 교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선뜻 전화를 걸기가 어려웠다.

첫 수업 이후로 예인은 같이 듣던 학교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몹시 심상찮아 말할 기회를 엿봤지만, 스터디센터에서도 따로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녀는 앞서 그곳을 벗어나는 데 급급했다. 몇 주 지난 뒤에는 집안 사정이 있으려니 여기곤 신경을 껐다. 제 살길 찾기도 바빴다. 여전히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솔직히 오랜 외면에 자존심이 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매주 열심히 수업을 들은 덕이었을까. 생각보다 나는 금방 프로그램에 적응했다. 강의를 들은 지 두어 달 만에 종우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집중 상태에 들어가고 나오는 데 어려움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종우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의 암시에 의한 것보다는 낮은 차원의 몰입 상태였지만, 엄청난 영적 진화라고 했다.

때론 상상한 것이 실제로 성사되는 체험도 했다. 과한 노동으로 유독 허리 통증이 심한 날에 만원인 지하철에서 우연히 빈 좌석이 생겼고,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식사를 걸러야 할 때 마침 밥을 얻어먹을 약속이 잡히기도 했다. 그는 셀프컨트롤에 능숙해지면 다양한 외부적 현상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작하는 게 가능한 경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면 이루어질 확률이 떨어진다고 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면서 프로그램의 개발자인 자신을 철저히 믿으라고 당부했다. 그때쯤엔 나도 종우에게 많이 기댔던 터라 믿음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나의 변화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수강료를 별로 받는 편도 아니었지만, 내 자취방 근처에서 술자리도 여러 번 마련해 주었다. 어쩐 일인지 마지막 술자리엔 정 교수도 합석했는데, 그가 예인을 데려왔다. 예인은 종우가 따라 주는 술잔을 재차 비워냈다. 나는 그녀에게 의문에 찬 시선을 계속 보냈다. 그러나 내게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그러면” 정 교수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셀컨 후계자는 인성이야?”
“아직 좀 더 지켜봐야지.”
나는 종우의 대답이 실망스러워서 스포츠머리 때문이냐고 그놈은 내가 간단히 이겨버릴 수 있다고 술김에 뻐겼다. 종우는 낄낄 웃으며 내일 당장 후계자 선출을 위한 대결을 펼치자고 맞받아쳤다.

정 교수와 종우는 꽤 각별한 관계 같았다. 둘은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형 동생 하던 사이라고 했다. 종우가 까불대며 사담을 늘어놓으면 정 교수는 종우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기도 했다. 예인은 취기 탓인지 불그스름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며 한참을 실실댔다.

술자리가 마무리될 때쯤에야 나는 예인에게 괜찮냐고 먼저 말을 건넸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가 몸을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예인은“나 말짱해”라면서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미 차가 끊긴 새벽이었다. 정 교수는 예인은 자신이 집까지 데려다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그녀를 부축해서 뒷좌석에 태웠다. 조수석에 앉은 종우가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차가 막 출발했을 때야 비로소 그의 손에 들린 게 그녀의 핸드폰이란 걸 알아챘다. 삭발한 얼굴이 비춰서였다. 나는 떠나는 승용차의 뻘건 후미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종우와 사진 속 아빠가 겹쳐 보였다.

*

마지막 학기를 앞둘 무렵, 종우는 셀프컨트롤 프로그램 심화반을 준비 중이라 했다. 또한, 기존에 강의를 듣던 여섯 명의 수강생 이외에 신입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존 구성원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회의할 시간을 갖자고 했고, 우리는 그날 밤 여덟 시에 따로 모이기로 했다. 나는 매우 이른 시간에 스터디센터를 찾았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였지만, 중차대한 모임이니만큼 일찍 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너무 일렀다.

나는 바깥에서 줄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보내다가 승강기를 이용하는 대신 층계를 밟고 7층까지 느릿느릿 올라갔다. 깨진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겨우 일곱 시 십 분이었다. 데스크는 텅 비어 있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주요 조명등이 꺼져 있어 로비는 약간 어두침침했다. 직원을 찾으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리는 듯했다. 로비가 지나치게 조용해서 전자기기의 잡음이나 층간 소음을 헛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은은한 종소리가 또렷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었다. 금방 센터에서 제일 구석진 룸에 다다랐다.
‘자, 빠져듭니다. 오, 사, 삼……’
분명 그의 목소리였다. 깨진 핸드폰 화면은 일곱 시 십이 분을 나타냈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유리창살에 조심스레 눈동자를 갖다 댔을 때, 숨이 턱 막혀왔다.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가 눈을 내리감고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손이 그녀의 둔부에 가 있었다. 그의 팔이 마구 흔들거렸다. 두 눈을 씻고 다시 그 광경을 직시했다. 어렴풋한 빛 속에서 움직이는 형체들은 마치 꿈결처럼 실재하고 있었다. 그의 몸뚱이가 불가사의한 괴물의 몸부림처럼 구불거리는 듯했다. 구역질이 났다. 울화가 치솟았다. 그의 아래턱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문고리를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화가 금방 그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 보였다. 가냘픈 신음이 들려왔다. 길고양이가 내는 울음소리처럼. 뭔가 애원하는 걸까. 통곡하는 걸까. 깊숙이 숨겨 둔 또 다른 자아의 토로일까. 그녀가 말했다. 아빠는 염불을 잘했다고. 저녁 예불은 꼭 아빠와 같이 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엄마는 아빠가 잘못된 길을 걸어서 그렇게 됐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 건강하셨던 아빠는 심한 경련으로 돌연 쓰러졌어. 엄마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 해가 다 가도록 불전을 향해 매일 천 배를 올리셨어. 불단에 신선한 과일과 떡도 정성껏 올렸지. 하지만 아빠의 병세는 날로 악화될 뿐이었어. 그녀의 격한 신음이 계속됐다.

아빠가 떠난 다음 날, 젊은 엄마는 법당에 있던 불상을 때려 부수고 책장의 수많은 불경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녀는 교회에서 신앙 공부를 시작했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매일 신께 예배하고 회개의 눈물을 떨궜다. 십일조도 두둑이 냈다. 목회자의 길을 택한 그녀는 남편이 남긴 법당을 허물고 교회를 지었다. 그녀는 어린 딸도 자신과 같기를 바랐다.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도록 했고, 매년 교회 수련회도 보냈다.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랐다. 남편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매일 울부짖고 기도했다. 그러나 딸은 오래도록 아빠를 잊지 못했다. 그를 애타게 그리워했다. 그녀 자신보다도 더.

기이하게도 그 이후의 일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뭉개진 듯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건물을 뛰쳐나가 정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걸고, 두 번 걸고, 세 번 걸고 계속 걸었던 것 같다. 나중에 경찰은 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내가 돌연 정 교수를 찾아갔다고 했다. 정 교수를 곧장 찾아갔는지 다음 날에 찾아갔는지, 지하철을 탔는지 택시를 타고 갔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다만, 교수실에서 내게 정신병자라 소리치던 정 교수는 기억한다. 난 그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예인과 종우의 모습도 보였다. 스포츠머리도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 누가 먼저 왔었던 걸까. 그들이 먼저 들어가 있었던 걸까. 내가 먼저 찾아갔던 걸까. 그들의 얼굴이 일제히 나에게로 쏟아졌다. 나를 노려보던 예인의 눈빛이 매서웠다. 그들 중에 누가 뭐라고 호통을 쳤다. 나는 종우를 한 대 쳤고, 종우도 나를 쳤다. 결국 난 바닥에 나동그라졌던 것 같다. 나를 향한 발길질이 어렴풋하다. 그것이 종우의 발이었는지 스포츠머리의 발이었는지 정 교수의 발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외의 기억은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와 떠들썩한 병실의 전등이 전부다.

병원 대합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따라 내 진료 시간이 늦어지는 듯싶다. TV에서는 최근 갑론을박이 한창인 종교정당의 대표 A 씨에 대한 다큐를 방영 중이다. 그의 저택에서 그가 여성 팬들의 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는 장면이 흐르고 있다. 신성한 기운을 불어넣는 치료법이란다. 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의 기운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나는 미친, 하고는 낄낄댄다. 때마침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 곧 진료실 문에 노크하고 들어간다. 고개를 숙인다. 의사도 눈웃음을 쳐 보인다.

오늘은 어땠어요? 그의 물음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괜찮아요. 느꼈던 걸 그대로 말하면 돼요. 그는 부드럽게 말한다. 그의 눈두덩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그의 미소와 멍이 뭔가 부자연스럽다.
“예인이가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꿈을 꿨어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저는 단지……”
“괜찮아요. 인성 씨는 잘못이 없어요.” 의사는 곧장 말한다.
“그런데 왜 다 제 잘못 같은 걸까요.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의사는 한 손으로 볼펜을 돌리며 짧은 한숨을 내쉰다. 날씨가 갰는지 마침 진료실 창문 사이로 쨍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당선소감】

조주헌
조주헌

 

학부 시절부터 소설을 전공했지만 정작 소설에 대해 알기 시작한 건 부끄럽게도 2022년에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지도교수이신 해이수 소설가의 소설창작 수업을 오프라인으로 처음 듣게 된 해이기도 했지요. 정말이지 뼈와 살이 됐습니다. 사실 「셀프컨트롤」은 이 창작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습작품에 대해 교수님은 날카로운 조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칭찬 역시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격려가 없었더라면 「셀프컨트롤」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를 쓰겠다는 저를 만류하고 소설 쓰기를 재차 권한 정현우 시인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우 형의 말은 화살촉처럼 날카롭지만, 유능한 시인답게 대상의 성질을 포착하는 세심함도 겸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입상작이 된 「셀프컨트롤」에 대해 과찬을 아끼지 않은 대학원 동문이자 KBS 라디오작가이신 정경화 선생님, 그리고 번번이 힘이 나는 덕담을 전해 주시는 이선영 선생님께도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이 첫 신춘문예 도전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매번 막연한 상상에 그쳤던 것 같습니다. 습작품을 제출하고 합평하는 게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구체성을 지니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세월이 흘렀네요. 허송세월의 희생자라는 걷잡을 수 없는 억울함이 늘 가슴 한구석에 내재돼 있던 탓이었을까요. 올해의 저는 첫술에 배부르기를 바랐던 욕심쟁이였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기도에도 부처님께서는 화답해 주셨습니다. 소설가로서 새로운 도전에 저는 더 건강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위원분들께서 만들어주신 이 기회를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 1991년 서울 출생
-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 단국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단편소설 심사평】

유성호 문학평론가(왼쪽)와 손홍규 작가.
유성호 문학평론가(왼쪽)와 손홍규 작가.

 

응모작 가운데 마지막으로 논의를 한 작품은 <5센티의 기적>, <라포르>, <셀프컨트롤> 이렇게 세 편이었다. <5센티의 기적>은 경주 남산 열암곡의 마애불을 모티프로 삼아 이야기를 구성한 솜씨가 돋보였다. 유적관리 담당자인 주인공이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마애불을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는데 두 인물이 교감하는 계기가 마애불에 의탁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라포르>는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녀와 비구니가 되어 우연히 만나게 된 사건을 다루는데 피해자였던 비구니가 과거의 분노를 새삼스럽게 되살리며 번뇌하고 가해자인 수녀와 일종의 라포르, 즉 공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해자가 수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감춰져 있으므로 수녀의 이면을 읽어낸 비구니의 시선과 깨달음이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 결말의 공감이 비약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셀프컨트롤>은 명상을 빙자해 상처받은 개인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스라이팅을 은유하는데 젊은 세대를 지배하려는 기성 세대의 조작술이라는 폭넓은 해석은 가능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 듯해 아쉬웠다.

이렇게 세 편의 작품은 저마다 장점이 있듯 단점도 분명하기에 당선작을 선정하는 일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셀프컨트롤>에 담긴 시의성을 비롯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갈무리한 화자의 화법이 지닌 가능성에 마음이 이끌렸다. 당선작으로 내기에는 아쉬운 작품이지만 이 가능성을 격려하고 이후의 활동에 기대를 품고 지켜보자는 데 일치하여 가작으로 선정했다. 응모자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가작으로 선정된 분에게는 격려와 축하를 보낸다. 더불어 이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에서 불교와 관련된 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불교적 세계관이 깊이 스며든 작품들을 많이 만나게 되기를 고대한다.

-유성호, 손홍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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