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贈別- 국화꽃 피면 다시 만날 기약 잊지 말게나

외롭고 차디 찬 옥중을 찾아 면회했던 사람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가 옥중에 있는 사람과 친분관계가 두텁거나 그렇지 않는 사람을 망라하여 찾은 영상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옥중에 있는 시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 만나기 어려웠는데 옥중의 이별 또한 기이하구나라고 하면서 옥중에서 만난 인연이 기이한 한 인연으로 여기는 모습을 본다. 시인은 같은 하늘 아래서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옥중에서 하는 이별 또한 기이하기도 하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別(증별)

天下逢未易 獄中別亦奇
천하봉미이 옥중별역기
舊盟猶未冷 莫負黃花期
구맹유미냉 막부황화기

만나기 어려운데 옥중 이별 기이하네
아직도 옛 맹세는 식지 않고 있으니
국화꽃 피어오르면 만날 약속 잊지 말게.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같은 하늘 아래서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옥중에서 하는 이별 또한 기이하기도 하구나.
옛 맹세는 아직도 식지 않고 있건만
국화꽃 피어오르면 다시 만날 기약 잊지 말게나.

위 시제는 ‘이별하면서 주었던 시’로 번역된다. 각박한 도시 생활은 한 지붕 밑에 살아도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하물며 한 하늘 아래에서 삶에 대해서랴. 시인은 옥중에 있었다. 면회 온 친지를 만나면서 읊었던 한 수였음을 알 수 있다. 청산리에서 만주벌판에서 그리고 상해 등지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었겠다. 자기보다는 동지들의 안녕을 생각하면 더했을 것이다.
시인은 감시하는 일인들의 눈초리를 따돌리고 은밀한 이야기를 나눈 후의 헤어지기 섭섭한 마음을 담았다. 감옥에 면회 온 친지는 독립전선에 있기에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 만나기 어려운데, 옥중 신세인 이 순간 또 다시 이별하는 것 또한 대단히 기이한 일이었음으로 시상을 일으켰다. 어쩌면 국가 잃은 설음 속에 숙명과도 같은 이별 앞에 필수적인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마음을 다스려 헤어지는 동료를 향해 쓰디쓴 한 마디를 던지게 된다. ‘(지난 날 우리 굳게 언약했던) 옛 맹세 아직도 식지 않았으니 / 국화 피면 다시 만날 기약 잊지 말게나’ 하는 한 마디를 피를 쏟는 마음으로 던지고 만다. 가을에 출소하여 다시 우리 독립을 논의하자는 내포적인 뜻을 담았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6. 秋懷-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어라

민족적 큰 스승을 만난다. 말로 하는 조국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인 조국이다. 조국을 잃었을 때 학문적, 종교적, 문학적이 아니라 몸으로 승화했던 시인이다. 그가 애타게 부르짖은 임은 바로 조국이자 부처였다. 자유시 ‘임의 침묵’ 에서나 정형시 ‘추회(秋懷)’ 등에서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민족 시인이자 언론인이며 스님이었다고 추앙하며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시인은 이겼다는 기별은 아직도 오지 않았건만, 벌레만이 울어대고 또 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어라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懷(추회)

十年報國劒全空 只許一身在獄中
십년보국검전공 지허일신재옥중
捷使不來虫語急 數莖白髮又秋風
첩사불래충어급 수경백발우추풍

보국하다 빈 칼집 옥중 신세 지겨운데
이겼다는 기별 없고 풀벌레만 우는구나
또 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백발신세 늘어가고.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십년 세월 보국하다 칼집은 완전히 비고
한 몸 다만 옥중에 있음이 허용 되었네.
이겼다는 기별 아직도 오지 않았건만 벌레는 울어대고
또 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어라.

위 시제는 ‘어느 가을날의 심회’로 번역된다. 만해스님의 대표작 ‘임의 침묵’은 이별을 통해 만남을 이루는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원리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세속적 사랑의 종교적 승화에 대한 이념적 동경을 노래했다. 이별이란 소멸의 변증법 설정은 존재의 무화적(無化的) 충격을 통해 재생과 생성을 이룩하려는 ‘무의 통과과정’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원리를 지니게 되어, 자율적인 소멸은 자율적인 생성으로 회귀하게 된다는 이별의 변증법적 원리가 내포된다고 그의 시문에서 강조한다. 그래서 십년을 보국하다 칼집은 완전히 텅텅 비어 있다고 하면서 한 몸 다만 옥중에 있는 것으로 허용 되었다고 했다. 국가를 위해 노력했지만 남는 건 옥중 신세뿐이었다는 시상이다.
이와 같은 바탕 위에 철학적 사상을 담고 있기에 가을의 감회를 담는 시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옥중의 다른 서회다. 나라에서나 독립군이 이겼다는 기별은 아직 오지 않았건만 그래도 여전히 벌레는 울어대고, 억세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만 가득하다는 시심을 담아냈다.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친 큰 스승의 가르침 앞에 그저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다른 옥중시에서도 보인 것처럼 모진 추위에서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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