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순천 금전산 금둔사에 계시는 지허 큰스님과 잘 달인 작설차 한잔이 생각난다. 스님의 법담(法談)을 들으며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눈을 덮고 얼굴만 살짝 내민 홍매화가 은은한 향을 내뿜고 있다. 그럴 때마다 소소한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곤 했다.

입춘과 경칩이 지나니 매서웠던 겨울도 가고 어느새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이 되니 자연은 어느 곳을 보아도 ‘자기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기는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이가 이정표로 따를 것이니라.

서산스님의 유명한 말씀이다.
우리 수행자는 다 아는 바이나 앞에 가는 ‘저 스님’이 함부로 걸어간 바람에 뒤에 가는 중은 너무 힘이 든다. 하지만 필자가 원고를 쓰는 도중에 접한 ‘김연아 연애’ 뉴스를 접하니 기운이 난다. 연애한다는 이야기가 기운을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겨여왕 김연아는 자기가 할 본분을 최대로 다 했다는 것을 아니까 그냥 봐라만 봐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본분을 다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다가오고 감동을 준다.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그늘진 곳에 웃음과 행복을 주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들 수행자의 본분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본분을 다하지 못한 종단을 운영하신 이전의 몇 분의 선배스님들이다. 지금이라도 당당하게 앞에 나와 후배들이 풀지 못하는 매듭을 좀 풀어주셨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 뒤에 오는 후배들이 잘 걸을 수 있도록 발자국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필자가 사는 절의 주지 백우스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 일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씀이다. 우리 종단일 또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남의 종단에서 우리 일을 해결해 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매듭을 매신’ 선배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매듭을 좀 풀어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부탁드린다.
 

새 집행부가 출범한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종도들은 새 집행부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난세에 영웅도 나는 법이라 했으나 영웅은 아니더라도 본분을 다하는 집행부가 되기를 바란다.

종단이 어려울 때 호법원장 운곡 큰스님마저 열반하시니 스님의 높은 법식에 종도들은 많은 것을 의지하고 기대하며 종단의 산적한 일들을 해결해 주시고 가르침을 주셔야 하는데 원적에 드시니 안타깝다. 하지만 슬퍼할 수만은 없다. 그러기에는 종단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총무원장스님의 숙원사업 불사 ‘100만 서명운동’ 성취발원기도를 우리 모두 함께 했으면 한다.
 

한국불교태고종의 저력은 종도들이 힘이다. 우리 종단은 정통이면서 전통 종단이다. 제 2종단이 아니다. 정통과 전통을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의무가 우리 종도들에게는 있다. 속가에 비교하면 종가집이기 때문이다. 종가집 가세가 기울었다고 종가집이 아닌가? 작은집이 돈 벌면 큰집 되고 종가집 되나? 아니다.

태고종이 종가집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부끄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면 결국에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하지만 자리가 좋아 안주하며 즐기면 머지않아 엉덩이에 종기가 나 앉아있기에도 힘이 들게 된다.

‘사홍서원’ 발원하듯 우리 모두 발원을 간절히 했으면 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항상 하는 발원이고 자주 하는 발원이다 보면 실천에는 소홀해 질 수가 있다. 불교는 실천을 중요시 하는 종교이다. 행하지 아니 하면 아무리 좋은 진리라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름지기 두루 알려면 명안종사에 돌아갈 것이요. 닦음에 반드시 원만히 닦으려면 叢林이 도반에 分付할 것이다. 초심자가 복이 박하여 가까이 의지하지 못하고 見解가 偏枯하여 수행이 게으르며 혹은 聖者의 경지라고 미루어 자기의 靈明함을 저버리니 어찌 德相이 神通함을 알겠는가.’

<치문>에 나오는 말이다. 범부는 도를 깨치는 것을 믿지 않지만 우리는 출가사문으로서 확고한 믿음과 신심이 있어야 도를 깨치고 나의 본분을 다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는 혼돈과 무질서한 삶속에 살아가면서 인류의 평화를 외치며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갈등과 분쟁을 일삼는 자가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모든 그릇된 욕망을 버리고 수용과 포용으로 살아 갈 수 있는 행복과 아름다움이 있는 불국토가 되도록 발원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삼라만상이 광명의 빛으로 훤하게 밝아지며 모두의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분쟁과 갈등이 없고,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본분을 다하는 수행자가 되도록 다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지 홍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장흥 청련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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