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스님 열반 70주기 기념 연재

3. 寄學生- 하늘 가득한 내 마음 찌르는 가시들이 있는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질게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가까운 친지가 있으면 더욱 좋다. 친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남은 생도 부탁한다. 사후의 시신처리에 대한 부탁도 서슴없이 한다. 장지는 어느 곳을 선택하여 하라든지 남은 재산은 어떻게 처리하라는 등 이른바 유언이다. 시인은 위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기왓장 같은 내 삶이 이리도 부끄럽기만 한데, 옥같이 부서지는 죽음은 아름답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寄學生(기학생)

瓦全生爲恥 玉碎死亦佳
와전생위치 옥쇄사역가
滿天斬荊棘 長嘯月明多
만천참형극 장소월명다

기왓장 나의 삶이 이리도 부끄러워
옥같이 부서지는 죽음 되레 아름답네
읊어본 마음의 노래 가시 되어 찌른다네.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기왓장 같은 내 삶이 이리도 부끄러운데
옥같이 부서지는 죽음은 아름답구나.
하늘 가득한 마음을 찌르는 가시들이 있는데
소리 내어 읊어보니 달빛만 밝아지는구나.

위 시제는 ‘어느 학생에게 부탁하며’ 로 번역된다. 기상이 충만하고 이상이 높아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젊은 학생이 시인을 찾아왔던 모양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고, 대승불교 사상과 반야사상의 한 획을 그어보려고 하면서 한국불교 개혁과 중흥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한 줌으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임을 자처하면서 쏟아내려는 시심 덩어리를 주머니에 담아내려고 했다.
큰 사상 큰 뜻을 간작했던 시인이었지만 이상으로만 끝나는 자신을 기왓장 같은 인생이라고 비유했다. 그런 삶이 하도 부끄럽다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지나온 세월은 가시밭길이었고, 다가 올 세월은 죽음을 앞에 두고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같이 서서히 부서져 가는 시인의 죽음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화자는 심회는 이제 후정(後情)이라는 한 사발에 가득 담아 부어 보려는 시심을 보인다. 하늘 가득한 마음을 찌르는 가시들의 하소연이 남아있는데, 소리 내어 읊어보니 달빛만이 밝아져 온다고 읊었다. 지나온 세월과 일들을 재조명해 보인다는 뜻을 담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금언과도 같은 말을 생각하게 하는 시심이리니.

4. 砧聲-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 누가 알리오

다듬이 소리에 추운 겨울을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아낙네들이 남편과 집안 식구들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풀 먹인 무명 저고리와 바지를 다듬이 위에 놓고 펴고 마르는 일이 다듬이 소리다. 소리만 듣고도 따뜻한 느낌이 든다. 아낙들이 빨래를 펴는 공정을 잘 알고 있다. 멀리서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차디찬 감옥 속까지 들리는 작업과정은 곁에서 보지 않아도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으리니. 시인은 천자의 옷이 따뜻하다고 말하지는 말게나, 뼛속까지 스며든 이 차가움을 누가 알리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砧聲(침성)

何處砧聲至 滿獄自生寒
하처침성지 만옥자생한
莫道天衣煖 孰如徹骨寒
막도천의난 숙여철골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감옥 속은 차가운데
천자의 옷 따뜻하다 말하지들 말게나
차가움 뼛속까지 스며드니 그 누가 알아주나.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디서 다듬이 소리 이렇게 들려오는지
감옥 속에 가득히 찬 기운을 몰고 오네.
천자의 옷이 따뜻하다고 말하지는 말게나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을 그 누가 알리오.

위 시제는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로 번역된다. 먼 이국땅에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향수를 달랬던 시가 더러 있었고, 타향에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읊었던 시도 가끔 만난다. 그러나 감옥에 있으면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추위를 참지 못해 시를 읊었던 경우는 썩 드물다. 얼마나 옷이 얇고 추웠으면 음식을 먹고 싶은 것 이상으로 다듬이 소리에 취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인은 그 소리가 두터운 옷이 되지못했음을 시에서 절절하게 읊고 있다. 캄캄한 밤에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다듬이 소리 들려온다는 시상에 따라 감옥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차가운 기운을 더욱 몰고 왔다고 했다. 시상에는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선뜻 느낄 수없는 정경이리라.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한 배고픔과도 비교된다
 

화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몸을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옷이고 이불이다. 예쁜 용포(龍袍) 무늬 놓은 옷을 입은 사람을 천자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런 옷이 필요 없고 지금 천자 정도의 옷을 거론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겠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을 누가 알리오’ 라고 결구를 맺고 있다. 심한 추위에 벌벌 떠는 시심을 만나게 된다.
 

   장 희 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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