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규 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역사는 세월의 길이가 긴만큼 우여곡절이 많다. 근 현대사만 해도 그렇다. 일제의 조선 식민지와, 해방 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에 의한 남북의 분단이라는 큰 사건을 비롯하여, 그 사이사이 수많은 곡절이 있었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불교의 역사 또한 우여곡절이 많다. 해방 이후의 가장 큰 우여곡절은 소위 ‘비구-대처’의 분규(태고종에서는 ‘법난(法難)’이라 함)이다. 이로 인해 해방 이후의 한국불교는 소위 종단의 분열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불교에서 하나의 ‘종(宗)’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필수 조건임은 불교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 한국불교는 교상판석의 정비도 허술한 채 무수한 종단으로 분열하여 지금은 100개가 넘는 종단으로 쪼개져 있다. 종지와 종조와 종통 등에 의한 종단의 분화라면 이는 불교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남종선을 표방하는 대한불교조계종과, 진언 밀교 수행을 표방하는 대한불교진각종을 제외하고는 단단한 교상판석이 없는 채로 그저 종단의 명칭만 달리할 뿐이다.

대한불교천태종이 최근 들어 종지와 종풍을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교학적 과제가 많다. 그 한 예로 대각국사 의천스님을 섬기지만, 불교사상사적으로 의천스님은 화엄학승에 분류된다. 대각국사가 고려시대에 천태종을 창립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교학적 내용은 전혀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태종이라면 지관(止觀)수행이 중심인데 한국의 천태종은 그렇지 않고 ‘관세음보살’ 정근 수행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불교태고종이다. 이 종단은 소위 ‘비구-대처’ 분규(법난)의 산물이다. 이 ‘분규’ 과정에서 ‘대처’ 쪽을 주장하던 스님들이 ‘한국불교조계종’으로 등록하고자 했으나 정부가 등록을 받아주지 않아 1970년 할 수 없이 ‘한국불교태고종’으로 당시 문교부에 등록을 마치면서 공식적으로 대두된다. 종조, 종지, 종풍 등에 있어서 대한불교조계종과 별반 다른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종단은 ‘한국불교’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비구와 대처를 모두 인정하는 쪽이 태고종이고, 비구만 인정하는 쪽이 조계종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소위 ‘비구-대처 분규’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때로는 폭력이 개입되고 때로는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이 개입되어, 현재로서는 조계종이 중심 세력으로 위치를 굳건하게 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무수한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이 모든 것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시대로 내려오던 고풍스런 사찰들의 99%가 조계종의 관할 속으로 들어갔다. ‘비구-대처’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구’와 ‘대처’의 공존을 주장하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 소용돌이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점검해 볼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대불교사 역사 편찬은 이미 조계종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비록 태고와 조계 양 종단에서 각각 <태고종사>와 <조계종사>를 편찬하여 발표하기는 했지만, 불교사를 연구하는 불교학계의 연구자들은 거의가 조계종사 쪽으로 기울고 있다. ‘비구-대처 분규’의 실상을 전하는 수많은 재판 기록과 당시의 상황을 보도한 신문기사가 있지만, 태고종 측에서는 이것을 연구하고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난 과거를 연구하여 지금의 현실을 뒤집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고 지난 역사는 역사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현실의 교훈을 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선결 문제는 지난 역사의 사실을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소위 ‘비구-대처’ 분규에서 밀려난 태고종으로서는 당시의 상황을 밝히고 소명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세월이 지났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난 자료들을 공개하여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들을 발굴하고, 더 나아가 ‘분규(법난)’ 당시 주장하던 동일한 종단 내에서 비구와 대처의 공존을 주장하는 논리를 계발하고, 그 정신의 확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일불교유학생교류회’에서는 <조계종사 연구논집>(현해·신규탁·김상영 편, 도서출판 중도, 2013년 12월)을 발간한 적이 있다. 조계종에 관한 연구 논문 약 150여 편 중에서 중요한 논문 17편을 뽑아서 분류하고 소개한 것이다. 필자는 이 작업의 공동편집자로 역할을 했다. 올해부터 2년간, (조계종식으로 표현해서)‘정화불사’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출간하기로 했다. 물론 이 작업에도 필자가 중심인물로 참여하게 된다. 필자는 대학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서생으로 특정 종단을 편들 형편은 아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밝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당시에 ‘비구’와 ‘대처’의 공존을 주장하던 태고종 측의 ‘억울함’이 있다면 그것을 밝힐 것이고, 태고종 측의 부당한 ‘억측’이 있다면 그것을 밝힐 뿐이다. 또 조계종 측의 ‘정당성’이 있다면 그것을 밝힐 것이고, 동시에 그들의 ‘부당성’이 있으면 그것을 밝힐 뿐이다. 물론 그것들을 밝히는 방법은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할 것이다. 필자는 그저 공정하게 교통정리를 할 뿐 개입할 생각은 없다. 이 과정에서 태고종과 조계종 측의 각각의 입장을 옹호하는 연구자와 그 연구 성과도 수용할 것이다.

다만 고민스러운 것은 이미 역사가 조계종 측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태고종 측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표자를 얼마나 찾을 수 있는가 이다. 또 태고종 측에서는 당시의 자료를 꼭꼭 숨기고 있으니, 객관적인 물증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 가이다.

바라는 것은 태고종 측에서도 당시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증언하고 또 그에 상응하는 각종 재판 기록 등을 제시하고 연구하여, ‘비구-대처 분규’(법난)의 역사적 진상이 규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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