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규 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한국에서 염불을 제일 잘 하는 종단이 태고종인가? 과거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최근에 와서는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조계종에서 불교의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그 역량을 키워오기 때문이다. ‘영산재’를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 받은 것은 비록 태고종 소속 승려이지만, 정작 일상의례를 정비한 점에서는 교단적으로는 조계종이 태고종을 앞서가고 있다.

또 조계종에서는 종립 ‘어산학교’를 세워, 종단 차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염불원 설치법’이 실행되어 이곳에서 안차비와 바깥차비를 배워가면서 해제와 결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조계종에서는 포교원 산하에 ‘의례위원회’를 두어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와 발표를 계속해가고 있다.

지난 과거 시절에는 태고종이 염불을 잘했을지 모르지만, 미래에도 그러리라고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필자는 지금의 집행부가 의례 부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인 성과물을 배출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보아야 점들이 있다.

첫째 신도용 통일법요집이 나와야 한다. 둘째는 승려용 전문법요집이 나와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신도용 법어집에 한정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각 말사들이 태고종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면서도, 현장에서 사용되는 법요집은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게다가 부분적으로나마 한글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곳도 있어서 천차만별이다. 하나의 종단에서 이렇게까지 다양한 법요집이 사용될 필요가 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통일된 법요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 종도임을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은 신도들의 입장에서, 또는 신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들이 일상적인 신행생활에 사용할 수 있고 또 필요한 것부터 정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초하루나 보름 법회에 동참하여 함께 불공을 드릴 경우에 실행되는 ‘불공의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죽은자를 위한 추선공양의식인 ‘관음시식’, 그리고 산자들을 위한 ‘신중불공’ 정도는 우선적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종단의 종지를 드러내는 예불의식을 덧붙여서 말이다.

이런 일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총무원 산하에 의례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실무위원을 위촉하고, 일정을 조정하며, 예산을 세우고, 편집기획을 세우고, 보급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총무원의 시안이 마련되면, 종회의 의결을 거쳐 종정 또는 총무원장의 이름으로 전국에 공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의 지방 종무원과 밀접한 교류를 해야 할 것이다. 각 지방마다 사용되는 법요 의례가 약간씩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법요집 편찬의 역사를 돌아보면 무수한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또 다시 그런 착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저마다의 개성과 입장만을 강조하다 보면, 통일된 법요집의 정착은 요원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만들어지는 법요집은 그 시행에 있어서 강제력을 띠어야 한다.

반면에 강제성을 띠는 만큼 잘 만들어야 한다. 모든 종도들이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종헌과 종법에 의해서 시행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고종의 종지와 종풍이 무엇인가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

태고종의 소의경전 중에는 조계종에는 없는 <화엄경>이 들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을 의식하고 있는 종도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화엄경>의 주불은 법신 비로자나불이다. 그렇다면 예경이나 각종 불전 의식에서 주불에 대한 예절이 제일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전통적인 의례들은 모두 그랬다. 그럼에도 조계종에는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소위 칠정례를 새로 만들어 석가모니불께 먼저 예경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쪽 사람들의 소관이니, 그쪽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태고종에서 조계종의 예불을 따라서 한다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향수해례’를 했다. 법·보·화 삼신불께 차례로 예경을 올려왔다. 태고종 절에서도 초창기에는 ‘향수해례’를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조계종을 따라서 ‘칠정례’를 한다. 옛날의 운곡도 버리고 조계종식을 따라가고 있다. 어쩌면 조계종식이라기 보다는 불교방송식이다. 좋은 것이어서, 또 잘 된 것이어서 따라하면 그야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잘못된 것이고 게다가 전통에도 위배되는 것을, 그저 대형 종단이 한다고 따라 한다면 종단으로서의 체통은 말이 아니다.

작은 지면에서 이런 사례들을 일일이 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설하고, 태고종다운 법요집이 나와야 한다. 그것도 신도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직업적인 ‘꾼’들이 하는 그런 염불 말고, 그것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신도들의 일상 신행생활과 밀접한 의례를 먼저 정비해서 종단적으로 통일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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