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환 기(동명대 불교문화학과 겸임교수)
얼마전에 지인이 갑자기 전화해서 “요새 불교계가 왜 그래?”라고 물었다. 내용은 불교계의 지도자급 스님들의 추문에 관한 것이다.

속세의 사람들이 했으면 사회법의 처벌을 받을 만한 사안들이다. 즉 어떤 스님의 ‘자수서’가 밝힌 불교계 ‘큰스님’들의 도박사건이다.

작년 초파일 전에도 부끄러운 도박사건이 터져 불교계를 아수라장으로 몰아넣더니 올해도 도박사건이 발표되어 불자들과 일반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뿐이랴 요즘 불교 내부에서는 오래 묵은 일들이 줄줄이 폭로되면서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고 있다. 사건의 진실이야 수사결과로 들어나겠지만 일반사람들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시각을 불식시키는 데는 오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 재가신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승단을 대표하는 스님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몇 해 전에 모 언론사에서 행한 직업별 신뢰도조사에서 스님들의 신뢰도는 카톨릭 신부에 한참 뒤떨어지고, 개신교 목사보다 나은 신뢰도를 하루 아침에 까먹는 그야말로 역행(逆行)보살의 길을 간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스님들이 누구인가? 바로 부처님의 정법을 수행, 실천하고 중생들에게 정법을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스님들이 세인의 지탄을 받을 행동을 했다고 폭로와 ‘자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고개를 들기 힘든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한국불교 1,700여년의 역사에서 다시 없는 위기가 도래한 것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위기는 기회다’고 말한다. 위기를 잘 수습하면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사태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우리들에게 있다고 본다. 부처님 당시에도 승단은 이런 저런 사건들이 발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율이 제정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 마을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면서 세상 사람들의 지탄받는 사람을 보고 불음주계를 제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계율의 제정은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잘못을 범하였을 때마다 재발을 막기 위하여 계율을 제정하여 공동체의 규율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승단은 자체의 정화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처님이라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사태도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풀어가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계율을 제정했던 정신처럼 죄과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상처를 도려내서 건강한 새살이 돋게 만들어야 한다. 그 새 살은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르침에서 찾아야 그 정당성과 당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고 했다. 일어서기 위해서는 진정어린 참회를 바탕으로 한 초심으로 돌아가서 청정한 삶을 회복하는 일이 우리에게 던져진 지상과제이다.

부처님의 열 가지 다른 이름 가운데는 천인사(天人師)가 있다. 이 말은 천상의 신들과 사람들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스승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고, 모범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속세의 욕망에 찌든 삶이 아닌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욕망의 튀틀린 현상에서 괴로워 하는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인 출가와 재가를 떠나 ‘불자(佛子)’들은 천인사의 길을 가기 위한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자경문>을 지은 야운스님은 “농사짓는 사람들은 오히려 먹지 못하여 배고픈 고통이 있고, 베를 짜는 여자도 몸을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승려로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춥고 배고픔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출가한 스님들이 가장 기초로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에서 이미 배고프고 가난한 중생들의 상황을 걱정하고 그 어려움에 동참하면서 중생들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철저하게 참회하고 반성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대사회적인 복지사업에 참여하여 중생들의 아픔에 치유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내밀어야 한다. 현대에는 물질의 충족은 이루었지만 정신의 빈곤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고통을 치유하는 일에 불교가 나서야 한다. 불교의 근본정신은 탐진치의 삼독(三毒)을 치유하는데 있다. 세상의 수많은 사건사고는 모두 삼독을 다스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여 사회와 세계에 살아가는 중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삼독의 치유를 통한 건강한 사회의 회복은 모든 불자들이 나서야 할 일이다.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쾌락에만 빠져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면 불교는 한국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의 한국불교의 위기는 뼈를 깎는 아픔의 환골탈태를 통해 다시 태어나야 모두의 신뢰를 얻는 종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시대적 사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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