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사 원불 조성불사의 기초불상
조상(造像)의 새로운 방식의 신기원 열기를

작품의 제작 과정에 참여해 전통적인 신앙의례를 체험한다면
신앙심도 고취되고 불교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질 수 있어


충담스님 탄신 100주년 및 열반 15주년을 기리어 호명산 감로사에 원불(願佛)을 조성하여 탑 형식으로 봉안하는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불사에 주목하는 까닭은 원불의 조성을 전문가의 지도 아래 일반 불자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 때문이다.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조상(造像) 방식은 최근 불교계에서 새로운 불교문화 나아가 불교미술의 창조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는 배경에는 불가에서 전승되던 화사(畵師) 또는 금어 등의 전통이 무너지면서 장인정신 또한 맥이 끊어지게 되고 여기에 영리를 도모하는 상업성이 결탁하게 되면서 불교미술은 더욱이나 혼탁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몇몇 집단을 이룬 이들이 크고 작은 불사에 깊게 관여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어 불교미술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이제 불상의 조성도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내야 할 때이다. 이 불사가 원만히 회향되길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고언(苦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불상을 조성할 경우 신앙이란 동기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되고 합리화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불상 조성의 동기와 그 타당성 검토에서부터 봉안 장소의 선정, 그리고 제작과정 등에 이르기까지 여려 면에서 사전에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래상을 비롯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존상(尊像)을 조성하고 예배 공양을 드리는 데는 예로부터 일정한 규범이 있어왔다. 다시 말해 불상은 그 조성에서 봉안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교리와 의례에 의거해서 만들어야만 하지 함부로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 이른바 조상법(彫像法) 또는 의궤가 규정한 바에 따라 일정한 의식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비로소 성물(聖物), 또는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불교 전적(典籍)이나 힌두교의 공교명전(工巧明典) 등에 조상에 관한 규정이나 원칙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재료를 구해 불상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더러움을 피하거나 제거하여 항상 청정함을 유지하여 끝내는 의식을 통해 성화(聖化)하도록 하는 일이다. 따라서 불상 조성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도 역시 계율을 지켜 청정함을 유지하여야 하지만 특히 불사(佛師) 또는 조상가(造像家)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불상은 적절한 비례를 따라 원만한 불신(佛身)을 표현해야 하며 인계(印契) 등의 표현 또한 도상(圖像)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불상의 조성에 사용되는 재료는 새김과 빚음이 가능한 재료는 모두 사용할 수 있으나, 발원자의 바라는 바와 그가 가진 경제력 등에 따라 재료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재료의 존귀보다는 그 재질을 얻는 과정이나 조성과정에서의 부정(不淨)과 오탁(汚濁)을 피하거나 제거하여 청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한 청정함은 물질 자체의 정결함과 더불어 금계(禁戒)를 지키거나 종교적 의식을 통해 성화(聖化)되는 것도 포함된다.

불상은 함부로 만들면 안 된다고 한다. 상호는 원만해야 하고 불신은 신체의 비례를 지녀야 하며 광배와 좌대를 구비해야 하는 등 의궤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위의(威儀)를 갖추어야 한다.
<조상경(造像經)> 중에 ‘대장일람경 조상품 십오칙(大藏一覽經 造像品 十五則)’이란 내용이 있다. 그 가운데 두 번째로 “상이 단엄하지 않으면 응당 죄가 있고 도적이라도 공양만 한다면 허물이 없음(像不端嚴應有罪 盜將供養且無愆)”이란 내용이 있다. 상이 단엄하려면 무엇보다도 신체의 비례가 맞아야 한다. 이 점을 <조상양도경>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세 번째 규칙은 “불상 만드는 장인은 미리 값을 받지 말고 불단에 봉안하여 서로 타인을 위해야 함(匠者不應逆取直 佛檀安可互他爲)”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사에 재가불자들의 참여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재가불자의 구성도 매우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 불자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거나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불사도 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나한상이나 천불(千佛)을 조성하는 경우 몇 가지 기본 틀을 활용하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숙련되거나 또는 전문 인력을 활용하면 보다 조형성을 갖춘 작품의 제작도 가능하다. 더욱이 작품의 이러한 제작 과정에 참여하여 전통적인 신앙의례를 체험한다면 개인의 신앙심도 고취되고 불교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적이 타당하다고 하여 그 일의 진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이나 상식을 벗어난 행위를 방치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나 신앙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그 처음도 그 중간도 그리고 끝맺음도 모두 선(善)하고 정당해야만 한다.
 
이 기 선 (불교조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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