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을 청정히 수호하라
김 재 영  동방대 교수

얼마 전 ‘지율스님 단식사건’때 일이다. 경남 양산 천성산의 도롱뇽을 지키기 위한 스님의 단식고행이 백일에 육박하고 육신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국민 전체가 크게 걱정하고 정부가 사회가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스님 고행처를 찾아 줄 잇고 국회에서는 지율스님 살리기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신문, 방송 등 언론도 주요 뉴스로 비중 있게 보도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모든 불자들은 내심 흐뭇하게 느낀 바가 있었을 것이다. ‘불교도 오랜만에 이렇게 대접받는구나…’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린 불교가 사회나 정부로부터 이런 각별한 대접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스님 한 분의 힘이 참으로 놀랍구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메이저 신문의 유명 기자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승려들에 대한 스님이란 호칭이 적절치 않다. 스님이라고 부른다면 신부님, 목사님, 대통령님 하고 다 님자를 붙여야 할 것 아니냐…’대개 이런 내용의 의견이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에도 모 방송사에서 ‘스님’이란 호칭 대신에 ‘승려’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 방송이나 신문에서 ‘스님’, ‘승려’가 오락가락하기도 한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호칭이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 호칭 속에 당사자의 품격이나 사회적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자를 두고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와 ‘교사’라고 부를 때, 그 품격이나 사회적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가? 따라서 불교계는 이 호칭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어떤 대안이나 대답을 제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지적한 한 유명 기자의 논지를 놓고 본다면, 일단 일리 있는 것같이 들리기는 하다. 유독 승려들만 ‘님’자를 붙여서 부를 까닭이 없는 것 같고, 신부나 목사에 견주어보면 불공평한 면이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신부’라고 하면 이미 그 이름 속에 존경의 의미가 들어 있다. ‘신부(神父, god father)’란 요컨대 ‘아버지’란 의미이다. 아버지를 ‘아버님’라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한다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목사(牧師, priest)’란 곧 ‘스승’이다. 스승을 ‘스승님’이라 하지 않고 ‘스승’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존경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승려만 ‘스님’으로 부르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견해는 매우 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관습이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스님’으로 부르면, 그 호칭은 이미 사회적 의미를 인정받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습헌법’이란 용어가 한때 회자된 적이 있지만, ‘스님’이 이미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하나의 객관적 기준으로서 규정력을 지니는 것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시민들이 ‘승려’라 하지 않고 ‘스님’이라고 한다. 이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 시민적 합의가 끝난 것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스님’이 사회적 호칭으로서 확고히 인정된다 하더라도 스님들 자신이 ‘스님’이란 일인칭 용어를 쓰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아무개 스님인데…’이런 말을 많이 듣는데, 이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세상에 자기가 자신을 높여서 부르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왕들도 자신을 낮춰 ‘과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또 우리 선배들은 ‘빈도(貧道)’, ‘산승(山僧)’이니 하고 자신을 낮춰 불러왔다. 이제 스님들 스스로 자신들을 ‘스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경우 없는 짓은 단호히 그만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비구’, ‘비구니’란 용어가 가장 법에 맞는 것이고, ‘사문’이란 용어도 좋은 것이다. ‘나 아무개 비구입니다’, ‘나 아무개 비구니입니다’, ‘나 아무개 사문입니다’-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법다운가.
가장 중요한 것은 ‘스님’이란 호칭이 다시 논란이 되지 않도록 확고하게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수호는 스님들의 청정한 역할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지율스님같이 사회적 정의를 위하여 헌신 봉사하면, ‘스님’이라고 하지 말라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스님’이라 할 것이고, 아무렇게나 고기 먹고 술 마시며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여 다툰다면, 세상 사람들이 먼저 알고 ‘스님’을 버리고 말 것이다. 이제 겨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스님’- 이 좋은 이름을 영원토록 수호하며 지켜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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