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한국불교의 조사 遺憾
차차석  동방대 교수

필자는 지난겨울 방학 기간에 세 번에 걸쳐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종교들의 현황을 조사하러 다녔다. 놀라운 것은 한국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는 일본계 군소종단이 대략 18개 종파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전체 종교 인구는 250만명 정도이다. 이 중에서 불교계열은 13개 종파에 신도수는 대략 20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한국 창가학회는 단일교단으로 신도수가 150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지방 곳곳의 거점 도시에 거대한 문화공간을 지어 지부로 활용하고 있었다. 일본계 불교도 불교니까 하는 자위를 해 보았지만 뭔지 모를 씁쓸함이 여운을 남겼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불교의 대부분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범법화계 종단이었다. 이들은 일본 전통의 의식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계에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자자를 시행하고 있었다. 법회가 끝나면 신도들이 그룹별로 모여 앉아 자신의 신행생활과 그 안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고백하고 다른 신도들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특히 보름을 기해 특정인을 신도들 앞에 내세워 놓고, 그의 신행고백을 듣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가 유별나게 관심을 기울인 것은 한국 창가학회였는데 이 집단은 매우 폐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다른 법화계 종단의 의식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우리처럼 등신불을 법당에 모시지 않고, 대신 나무묘법연화경이라 쓴 편액을 신단에 모시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나무묘법연화경이라 쓴 글씨 옆에 일본의 국가신인 천조대신을 함께 써서 안치한다는 점이다. 신도관리는 철저하고, 교단의 상위 간부가 될 수록 <법화경>과 일반 불교상식 내지 사회, 종교에 대한 학습을 철저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한국불교가 불교라는 이름의 허상에 빠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현실적이고 체계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계 종단들이 왜색불교로 매도하며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한국불교계의 시국관에 문제점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가져 보았다.
1월 말에서 2월초에 걸쳐 대략 1주일간 광주지역을 조사했다. 이 지역은 일본계 불교들이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련정종을 비롯해 천리교 등 일본계 종파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며 시대조류에 부응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특히 필자가 놀란 것은 한국창가학회 광주지부를 방문했을 때였다. 동국대학교 본관만한 현대식 4층 건물이 필자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 신도는 대략 1만5천명을 헤아린다고 지부장이 소개했다. 외부의 지원 없이 그들의 성금만으로 광주지역 회관을 만들었다는 설명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천만을 헤아리는 한국불교계에 변변한 회관이 하나 없는데 이들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한국불교신도들은 <법화경>을 몰라서 그렇다면 할말이 없을 것이지만 교학이라면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안다는 사실은 누구 보다 필자가 더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들은 1960년대 한국에 상륙했을 당시 왜색불교로 핍박받은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한국 정부의 지독한 감시와 멸시를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저들은 꺾이지 않고 더욱 싱싱하게 뿌리를 내리며, 토착 한국불교계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한국불교계의 대형종단들이 끊임없는 내분과 갈등으로 내부적인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나마 불교신도들의 누수를 막아주었다고 한다면 얼빠진 종자라 비판할 것인가?
일천만 불교도를 자랑하는 한국불교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니 각 종단의 지도자들은 자기 종단의 신도수가 몇 명인지는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도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 불교신도들의 노령화에 대응할 대처 방안은 마련했는지, 승려들은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 등 돌이켜 보아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지금 한국불교계의 종단 현주소는 어디쯤이라 말할 수 있는가?
다른 종단은 차치하고 조계종과 한국불교계를 양분했던 태고종의 현재 위상은 어디에 있다고 말해야 하나. 과연 과거의 전통과 역사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21세기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신도 양성에 노력하고 있는가? 개방화된 사회, 세계가 하나의 촌락처럼 정보를 교환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승려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 보다 태고종에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국외자이기 때문에 태고종의 속내를 잘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승려 양성, 신도교육이 자리 잡는다면 한국불교, 나아가 세계불교가 중흥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안타까움 반, 노파심 반이 결합하여 과분한 쓴 소리도 감추려 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종단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신도를 체계적으로 교육시키지 않고, 승려들의 안목을 열어주지 못하는 형해화된 승려교육도 역시 종단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계 불교종단을 조사하면서 오히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계 모종단의 어느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불교계의 지도자들은 신도들을 우민화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불교계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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