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중생은 상의상부함으로써 존재하는 연기적 관계
우리 모두는 불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일체중생은 평등하고 존귀합니다. 이는 곧 중생이 부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 뿌리이며 한 몸, 한마음의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천지중생이 나와 한 몸 한 생명이라고 했으니 바로 그 정신을 실상대로 알고, 그 정신에 따라 중생들과 고락(苦樂)을 함께하는 실천이 바로 동사섭(同事攝)이요 동체대비행(同體大悲行)입니다

호정(豪靖)스님은 1990년 용운스님을 은사로 출가. 덕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보성스님에게 입실건당하여 ‘법철(法澈)’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경남교구종무원 사회국장·포교부위원장·총무국장, 지방종회의원, 종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마산 세심사 주지로 경남교구종무원 행정부원장과 창원교도소 교화법사, 마산 중부경찰서 경승실장, 창원불교연합회 감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동문회 상임고문 등을 맡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져 여기저기 뒹구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토록 푸르고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찬바람이 불자 시들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이 무상(無常)의 법문을 설(說)하고 있는데 우리는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의 진리입니다. 일체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름다운 법계 본연의 모습이에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天地與我同根(천지여아동근)이요
萬物與我一體(만물여아일체) 라.
               
(하늘과 땅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모든 존재는 나와 더불어 하나이다)
<화엄경>에서는 대자연이 부처님의 몸이요 전법교화의 무대라고 했으며, 천지중생이 나와 한 몸 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정신을 실상대로 알고, 그 정신에 따라 중생들과 고락(苦樂)을 함께하는 실천이 바로 동사섭(同事攝)이요, 동체대비행(同體大悲行)입니다.
그러므로 동체대비와 동사섭의 보살행은 모든 불자들이 늘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할 우리 모두의 큰 화두이지요.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죽이고 멸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생성된 후 최초로 습생의 녹화식물이 태양의 빛을 이용하여 광합성으로 식물을 만들고 동물을 생성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고 그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도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을 낳아준 은혜를 망각하고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은 물론 공기와 토양마저 무차별 수탈과 학대로 오염시키고 있어요. 이러한 일이 계속된다면 자연 속에서 공생하는 모든 사물이 파멸될 것이고 결국은 인간마저도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병들지 않은 곳이 없어요.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중심의 사고와 이기주의에 길들여져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생각하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을 죽이고 자연이 다시 인간을 죽이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분별력이 얼마나 잘못돼 있으며 모든 존재들이 절대적인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울창한 열대우림에 벌목 허가를 승인해 주었어요. 벌목공장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게 되어 지역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게 됐고 벌목된 나무는 수출용으로 외화도 벌어들이고 건축자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지요. 이로 인해 자연림은 모두 벌목되고 황폐화된 자연림에는 대신 속성으로 자라는 뉴질랜드산 나무를 심었어요. 그러자 이 속성 나무들의 엄청난 흡습력에 의해 지하수가 고갈되고 주민들은 먹을 물조차 없어지고 그 나무 밑에는 잡초조차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야생 조류와 동물들은 물론 벌레들이 모두 사라져 생태계가 급속도로 파괴되어 갔어요. 주민들은 농사도 지을 수 없어 벌목공장에서 계속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이들 주민들은 벌목공장의 연기와 공해로 호흡기질환, 눈병, 피부병으로 육신이 병들고 가난도 면할 수가 없었지요.

열대우림은 비록 인도네시아에 있지만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열대우림의 파괴는 지구와 인간을 함께 죽게 만드는 것임을 몰랐던 것이지요.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알아야 한다는 극명한 사례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면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길가에 자라는 풀들이 내뿜는 공기(산소)로 사람들이 살고, 사람들이 내뿜는 공기(이산화탄소)로 식물들이 먹고 산다는 사실과 그리고 인간의 몸은 죽어서 식물의 영양소가 되고 식물은 인간에게 식량을 되돌려 주는 것이 자연에서는 공생관계요,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의 일부입니다.

우리 절은 법당과 요사채를 제외한 400여 평의 부지에 화단과 조그만 채소밭 외에는 잔디와 야생초 그리고 그 속을 비집고 살아가는 잡초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 온지 22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제초제나 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한 적이 없고, 풀은 손으로 직접 뽑아요. 절 주변에는 사방이 논이나 농장,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삼일이 멀다하고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살포하는 것을 봅니다. 그곳에 살던 동물, 식물, 곤충 들이 쫓겨서 우리 절 마당으로 피신해 모여들어요. 이곳이 그들에게는 극락이요, 보금자리가 된 것이지요.

이곳에서 직접 확인된 것만 종류별로 보면 메뚜기, 여치, 귀뚜라미, 달팽이, 두더지, 두꺼비, 개구리, 뱀, 도마뱀, 지렁이 등이 공존하며 참새, 비둘기, 족제비, 들고양이들이 먹이감을 찾아 들락거립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이 그저 조용하기만 하지요.

몇 년 전 무더운 여름날 지장재일 법회를 마치고 신도들이 돌아가는 시간에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 나가보니 신도들이 화단 쪽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구렁이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어요. 나는 구렁이에게 조용히 말했지요.“네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뱀의 몸을 받고 태어났으면 조용히 숨어서 살 것이지 왜 대낮에 밖에 나와 여러 사람을 놀래키느냐”면서 “절에 살아 염불을 많이 들을 테니 다음 생에는 꼭 사람 몸 받아 태어나라”했더니 마치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스르르 돌 사이로 사라졌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어요.

지난봄에는 시장에서 고추 모종 50포기, 가지 모종 10포기를 사다 텃밭에 심었어요. 비료나 농약은 뿌리지 않았는데도 엄지손가락 2개를 합친 것만큼 큰 고추가 주렁주렁 고추대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 열렸어요. 이렇게 채소가 잘되는 이유는 이곳에 지렁이가 살기  때문입니다. 지렁이 크기가 볼펜 굵기로 길이가 10~30cm가 되는 것도 있어요. 한 연구가에 따르면 지렁이는 보통 활동반경이 1m에서 최대 5m까지 땅을 헤집고 다닌다고 하며 지렁이가 다닌 길은 수분과 산소가 머물러 토양생물들의 길이 되고 식물뿌리가 쉽게 뻗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해요. 우리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온갖 것을 먹고 그 배설물이 분변토가 되어 식물이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흙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자성(自性)이 있고,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복합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개체의 생명을 영위할 수는 없으며 지속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에서만이 생명이 유지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며 그들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 특징 중에는 그들이 가진 신진대사인데, 신진대사란 생명체의 성장이나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를 외부에서 섭취하여 생명활동의 과정에서 생긴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천지의 큰 덕은 만물을 낳아 기르는 생명력이고 여래의 큰 도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는 자비심이라 하시고 사람과 축생이 비록 모습은 다를지라도 심성은 한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천상이나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에서 사는 중생일지라도 이들 모두는 똑같은 하나의 귀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지요. 인간과 축생은 물론 미물들까지 생명을 가진 모두는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전생에 지은 죄를 사하고 업장이 모두 소멸되면 다시 천상에 갈 수도 있고 다시 인간세계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일체중생은 평등하고 존귀합니다. 이는 곧 중생이 부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 뿌리이며 한 몸, 한마음의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일체 중생은 서로 의지하고 상부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연기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모든 진리는 항상 현실 가운데서 실현돼야 합니다.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이치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쁘고 조급한 세상 속에서 바쁨에 내몰려 이리 저리 쫓기지만 말고, 잠시 짬을 내 텅 빈 맑고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우리 사람들은 자연과 진정으로 만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기심이나 이용가치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만나고자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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