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희망, 자부심 가져야 건강한 노년

25. 일하며 사는 것이 장수의 요인

얼마 전에 노인요양병원을 다녀왔다.
친구의 장모님이 그곳에 입원을 하셨는데 상황이 좀 안 좋아 혹시나 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을 해왔다. 각 침대마다 어르신들(주로 할머니들)이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이스터섬의 모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복도에서 걸으며 운동을 하는 분들은 그래도 얼굴에 생기가 있는 편인데도 사람들이 그리운지 가족들이나 낯선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말을 걸고 참견을 하며 부러워 한다.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 그냥 저렇게 세상인연이 끝나기만 기다리는구나’ 하고 생각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예전에 비구니 스님들과 할머니들만 계시는 양로원에 인연이 되어서 다닌 적이 있는데 당시에 비구니 스님이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아 직접 챙기실 때와 스님이 열반하고 나서 복지법인으로 되면서 사회복지사가 챙기기 시작한 뒤로의 모습의 변화가 너무 차이가 나서 노후생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 사단법인 때는 할머니들이 참으로 건강하고 사망률이 낮아서 다들 “여기는 스님의 법력으로 저승사자가 길을 잃어서 죽을 사람들이 안 죽고 산다.”고 공공연히 이야기 할 정도였다. 그렇던 곳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다들 생기를 잃고 병치레만 하면서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차이가 있나를 살펴보게 되었다.

과거에는 할머니들이 다들 일이 있었다. 당시에 그 양로원은 정부보조금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들을 찾아서 나름대로의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분들도 자기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다. 식사는 꼭 걸어서 식당으로 식판을 들고 가서  배식을 받아 자기 자리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이것은 설 수만 있으면 누구도 예외가 없었으며 식당에 가기 위해서 움직임이 곤란하신 분은 미리부터 출발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예를 들어 고추를 말리는 것을 보면 체력이 되시는 분들은 지붕에 올라가서 직접 고추를 널고 걷고 하였지만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은 근처에 앉아서 고추를 일일이 닦곤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태양초는 여간 맛이 있지 않았다. 맛이 있다고 했더니 할머니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그럼 일일이 다 닦아서 말린건데 이건 아무데서나 못 먹어봐요…”하면서 뿌듯해하시는 얼굴들이 생각난다.

또 하나는 항상 다툼이 있었다.
다들 서로 간에 여기는 대가 센 사람들만 모였다고 하면서 항상 돌아가면서 으르렁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 경우에 조정을 어떻게 하나 했더니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관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에는 힘들어서 겨우 걸으시던 할머니가 화가 났을 때는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옆에서 소곤거리는 말이 “아프다는 건 다 거짓말이여…”
이렇던 모습들이 복지재단으로 바뀌고 사회복지에 조예가 깊으신 비구 스님이 맡고 부터는 일도 시키지 않고 환자들을 분류하여 식사를 가져다 주는 등 할머니들을 편하게 보살피기 시작하고부터는 점차 환자들이 늘고 무기력한 분위기로 바뀌더니 불과 3년도 안되어서 거의 모든 할머니들이 중환자실로 올라가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70대 노인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 것 중에 실험조건이 숲속의 외딴집에서 보름인가를 합숙을 하는데 식사준비나 세탁이나 청소를 직접해야 하며 신문을 20년 전의 것을 봐야 하며 대화를 20년 전 소재로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실험이 이루어졌는데 실험이 끝난 뒤에 보니 노인들의 생리상태가 거의가 다 20년 전으로 돌아가서 건강해졌더라는 실험이 있었다.

처음에는 걷기도 힘들어하고 혈당, 혈압 등이 높아서 고통을 받고 무릎이나 손가락 등에 관절염 등이 있던 모든 분들의 병리검사 수치가 모두 20년 전의 상태인 건강한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과거의 건강했던 생활을 흉내 내기만 해도 자연치유력이 상당히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인체의 기능에는 자연치유력이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깨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근에 의사들을 중심으로 항생제나 스테로이드 등 화학적으로 만든 약을 독으로 규정하고 그런 약들을 쓰지 않고 치료를 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그 의사들의 대다수가 현대의 음식을 문제로 삼아서 현미 등의 자연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환경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여 자연치유력을 얻는 방법을 주로 쓰고 있다.

최근의 먹거리가 하도 엉망이라 상당히 좋은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것이 위에서 나타난 대로 멘탈의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는 자신감 내지는 자부심 다시 말하자면 살아가는 의미로 생각된다.

김동인의 단편인 <무지개>에서 소년이  “아! 저 무지개는 잡을 수가 없구나…” 하면서 포기하는 순간 어느덧 늙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공감이 된다.
예비군 훈련 때 들은 이야기인데 하사관들이 군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는 3년 내에 사망률이 상당히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인들이 희망과 일과 자신감을 잃지만 않는다면 요즘 나도는 9988234 즉 99세까지 88하게 살고 2~3일 앓다가 죽는 행복은 영 꿈만은 아닐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노인들을 감싸고 돌기만 하는 복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 노인들을 보호한답시고 뒤로 물러 앉게 하는 순간 노인들의 건강도 같이 물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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