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는 사람의 의식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동화될 때 완전한 평온이 있는 것이지요. 인간의 고(苦)는 무아를 모르는 무지 때문임을 알았지요

혜경(惠耕)스님은 193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56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대승사에서 출가했다. 대경스님에게 구족계를, 야옹스님에게 건당해 ‘회옹(晦翁)’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주 화담정사 조실과 서귀포 지역 불자들의 모임인 ‘흰 연꽃들의 모임’ 회주를 맡고 있다. 스님은 <법화경 이야기> <법화삼부경> <우리말 법화경> <법화경 총설> <법구경 입문><승만경 강설> <관무량수경> 등 다수의 경전을 번역하고 해설서를 펴냈다. 무려 10년에 걸쳐<법화삼부경 강설(전10권)>의 집필을 마치고 현재 출판 준비중이다.
 
부처님의 전기에는, 부처님이 생류(生類)의 비참(悲慘)을 체험한 일화가 이야기 되어있고, 그것이 출가에 대한 동기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어릴 때 어느 날 나무아래에 앉아 농사짓는 것을 관찰했는데, 농부는 땀투성이가 되어 일하고, 소는 매를 맞으면서 쟁기를 끌고 있었고, 땅에서 파헤쳐진 벌레는 새에게 먹히고, 새는 또 맹금(猛禽)에게 먹히는 것을 목격했어요. 그것을 보고 부처님은 이 세계가 온통 고(苦)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았지요.

부처님은 또 어느 때, 유람을 위해 동쪽 문으로 나섰습니다. 거리에서 주름이 쭈글쭈글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을 만났고 ‘늙음’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수심에 잠겨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남쪽 문으로부터 나와서 병자(病者)를 만나고, 서쪽 문에서부터 나와서는 사람이 죽어 싣고 가는 운구행렬을 만났습니다. 부처님은 병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북문에서 나왔을 때,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문을 보고 ‘이 길이야말로 내 길이다’ 하고 출가를 결심했지요. 부왕은 싯달타의 이러한 결심을 눈치채고 더 화려한 궁전을 지어주고 아름다운 시녀들을 보내주었는데 어느 날 밤 침대 주위에서 잠들어 있는 시녀들을 보았습니다.

코를 골고 침을 흘리며 아무렇게나 자고 있는 그들은 좀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지요. 이러한 일화는 고(苦)와 부정(不淨)에 대한 의문과 혐오가 부처님을 무아(無我)의 발견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된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부처님은 출가하고나서 정신의 근저(根底)에서 희구하는 고(苦)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가하에서 스승으로 삼을만한 수행자를 찾습니다. 최고의 스승을 찾아서 가르침을 청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명성이 높았던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두 사람을 차례로 찾아가지요. 알라라깔라마로부터는 ‘소유(所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명상을, 웃다까 라마뿟따로부터는 ‘생각하는 것도 없고 생각지 않는 것도 없다’라는 명상을 가르침 받고, 아주 짧은 사이에 그 경지에 도달하고 말지요.

수많은 제자들이 쉽게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를 아주 간단하게 체득한 부처님에게 놀란 그들은 남아서 제자의 양성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자기가 원하는 경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떠납니다. 당시 최고라고 존경받았던 명상의 스승들이 가르치는 궁극의 경지는 어느 것이나 부처님이 구하는 불사의 경지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가 마음의 근저에서 계속 구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영광 있는 왕의 자리나 명예, 온갖 소유물이나 부속물, 또 사고나 상념마저도 버리게 하고, 한층 자신의 심층 밑바닥에 둥지를 트는 자아의식마저도 멸해 버리게 하는 정도의 것이었어요. 그것은 그를 고행(苦行)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고행의 원어 ‘타파스(Tapas)’는 열(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고행을 행하게 되면 신체 속에 열이 축적돼 그 열의 힘에 의해 신통력이나 초능력이 얻어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숲에 가서 최고의 깨달음, 원만한 평안을 얻기 위한 고행을 합니다. 나중에 부처님께서 “어떠한 사람이라도 내가 행한 것 같은 극렬한 고행을 한 사람은 없다” 라고 회상하고 있을 정도의 굉장한 고행이었습니다. 정신을 통일하고 극한에 이르기까지 호흡을 제어하고, 또 먹는 것을 제어하는(혹은 끊는) 고행은 고행 가운데서도 가장 극심한 것이었지요. 먹는 것도 극도로 제한해, 배를 만지면 손바닥에 등골이 잡히고, 등골을 만지면 배가 잡힌다고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한 상태로 되었습니다.

간신히 숨만 유지하고 있는 위기에 빠져들어서 주위 사람들이 “고따마는 죽었는가” 하고 우려할 정도였지요. 극도의 고행을 하면서 부처님은 신체적인 고통이 가져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고통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굶주림과 목마름, 피로로 인하여 마음의 침착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평안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고행은 평안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고, 깨달음의 지혜, 해탈로 향해 가는 길이 거기에는 없다 라고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6년간 계속한 고행을 그만두고, 마을에서 탁발하며 통상적인 음식물을 취하게끔 되었습니다.그만 두었다고 해도 6년간의 고행과 명상 수행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지요. 경험은 모두 개체의 형성에 통괄되어, 보다 고차원적인 자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님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철저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지 않으면 누가 스님들을 성자(聖者)라 여겨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그 후의 부처님의 통찰과 행위에서도 이때의 경험은 커다란 양식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밟아 온 길에는 헛된 것은 없는 법입니다.부처님은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가 올린 우유죽을 먹고 기력을 되찾아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요. 깊은 골짜기에 있는 나무의 봉오리가 조용히 꽃을 피우는 것처럼 자연히 그의 속에 깨달음이 찾아들었지요. 꽃봉오리가, 긴장도 괴로움도 없이 자연스럽게 꽃으로 되는 것처럼, 의식은 시공을 초월해서 우주 전체로 펼쳐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열렸습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지식에 의해서 쌓아올려지고, 조건 붙여져 온 온갖 의식이 소멸되고 떠나갑니다. 세계는 언제든지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눈앞에 전 존재를 열어서 확실히 알도록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 사람의 의식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동화될 때, 그곳에는 완전한 평온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의 고(苦)는 무아를 모르는 무지 때문인 것을 알았고 모든 것은 연기(緣起)되었기 때문에 무아(無我)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아(自我)의 문제가 부처님의 커다란 관심사였던 것은 틀림없어요. 자기를 찾아 구해서 가는 막다른 곳은 어디일까요? ‘무아’입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다, 나에게는 재산이 있다 라고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태운다. 자기에게 자기마저도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아이들이 있겠는가. 어찌하여 재산이 있겠는가.” <법구경>. “어떠한 물질도 자기 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법구경>. “자아에 집착하는 견해를 버리고, 목가라자여 세계를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고 보아라. 그렇게 하면 그대는 죽음을 초월한다.” <숫타니파타>. 산발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무아 사상은 이러한 말 속에 굳게 배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무아, 즉 실체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취한 방법은 인간을 구성요소로 분석하고 그러한 요소의 어느 것에도 인간 혹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항상 불변한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교시하는 것이었어요. 그 때문에 교리에 ‘오온(五蘊)’이 있습니다.오온이란 인간을 구성하는 5가지의 요소 즉, 색(육체), 수(감각), 상(상념), 행(의욕), 식(판단)입니다. 오온 가운데 네가지가 정신적 요소인 것은 불교가 인간의 정신면에 특히 관심을 가졌던 증거입니다.(수, 상, 행의 3가지를 비 육체·비 정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또 6근(六根)의 교리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감각기관으로 분석하여 어느 기관에도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교시합니다. 6근이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를 말합니다.

처음의 5근에 의해서 감각작용이, 뒤의 1근에 의해서 사고작용이 행해져요. 몸(身)은 피부를 의미해요.어느 세상, 어느 세계에서도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月)을 가리킬 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꼭 있어요. 부처님이 무아(無我)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오온(五蘊)의 교리를 설했을 때, 제자 가운데에는 무아를 보지 않고, 오온에 관심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의 길이나 굵기를 논하는 것과 똑같은 것처럼, 색(色)이나 수(受)의 본질을 논하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손가락을 본 것입니다.  지난해 4월, 1주일동안 미얀마 양곤에서 제일 큰 쉐다곤 파고다 주지이신 자그라비원타 스님의 초청으로 제자 혜화스님과 함께 미얀마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200명의 아이들을 국가 보조도 없이 자비로 먹이고 재우고 교육시킨다고 했습니다. 바간의 부파야, 쉐지곤, 구바욱지, 아난다 사원 등을 참배하고 만다레이로 이동하려고 바간 공항에 도착했는데 안내원이 스님은 줄을 서지 말고 미얀마 스님들과 함께 들어가면 된다고 하여 비행기 표만 들고 들어갔는데, 여권이나 비행기 표를 보자고도 않고 그대로 통과시켰습니다. 내 자리 양 옆에 미얀마 스님들이 자리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자 여승무원이 기내식을 가져 왔습니다. 양장차림인데도 바닥에 털썩 꿇어앉아 음식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미얀마 스님에게 바쳤습니다. 다음은 내 차례였는데 일어서서 일반여객과 똑같이 주고 나서 내 옆자리의 미얀마 스님에게도 전과 같이 공손하게 드렸습니다.

그때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우리 한국의 스님들도 이처럼 국민들에게 진정에서 우러나온 존경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한국에서의 스님들의 위상에 대해 생각하니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우리네 불교신자들은 스님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과연 존경하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일까요? 깨닫기만 한다면 어떠한 파계 행위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일부 스님들의 막무가내 행동과‘대승이기 때문에…’라는 사고방식으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교계(敎誡)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함이 스님들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요?서로 (닭벼슬만도 못한)자리를 차지하려고 폭력이 난무하고, 도박과 술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파계행위를 백일하에 노출시켰으니 부처님제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스님들 스스로가 각성하고 철저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지 않으면 누가 스님들을 성자(聖者)라 여겨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전하는 우리네 스님들이 과연 중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중들을 현실적인 고(苦)로부터, 소외와 아픔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일을 앞장서 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