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난득’ 이라, 사람 몸 받기가 그렇게 어려운데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 하고 함부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업에 끄달려 살지 말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다보면 운명이 바뀝니다.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위해 베풀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불교에는 ‘4난득(四難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몸 받기 어렵고), 둘째, 장부난득(丈夫難得, 장부 되기 어렵고), 셋째, 불법난봉(佛法難逢,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려우며), 넷째, 위승난행(爲僧難行, 스님 되기 어렵다)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렵다는 사람 몸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잡아함경>에서는 부처님께서 ‘맹구우목(盲龜遇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을 가르치십니다.

‘맹구우목’이란 ‘눈먼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난다’란 뜻인데,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의 몸을 받을 확률은, 온 땅덩이가 바다로 변했을 때 수명이 무량겁인 눈먼 거북이가 바다 밑을 헤엄치다가 숨을 쉬기 위해 100년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오는데 우연히 그곳을 떠다니던 나무판자에 뚫린 구멍에 목이 낄 확률보다 더 작다’고 하셨습니다. 눈 뜬 거북이라도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 판자구멍에 목을 들이밀어 물 위로 올라올 확률은 극히 작을 것인데, 하물며 눈먼 거북이가 태평양 같은 바다에서 여기저기 떠다니는 한 장의 나무판자를 만나서 그 구멍에 목을 넣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은 그보다 더 작다고 합니다.

‘조갑상토’란 ‘손톱 위의 흙’ 이란 뜻입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손톱 위에 흙을 퍼 올려놓고서 이 흙과 대지의 흙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많은지 비구들에게 물으셨어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스님들은 대지의 흙이 훨씬 많다고 답했지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사람으로 살다가 인간계나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자는 손톱 위의 흙과 같이 적고 아귀나 축생, 지옥 등 인간계 아래에 태어나는 자는 대지의 흙과 같이 많다고 가르치셨지요.

그리고 부처님께서도 얻기 어렵다고 강조한 인간의 몸을 갖춘 나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부모님이 낳아주셨어요. 그럼 부모님은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부모님 마음대로 만드셨을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못 갖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생겼고 부모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나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각각 또 그 부모로부터 나왔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헤아리기도 힘든 엄청난 사람들이 지금의 '나'의 탄생에 얽혀있는 셈이지요. 인연줄을 따라 즉, 나의 수많은 조상들을 통해 나의 부모를 선택해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나의 몸에는 이미 아버지의 뼈와 어머니의 살, 조상님들의 넋과 함께 부처님의 ‘씨’가 존재해 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뜻을 이루려고 그렇게 얻기 어려운 사람 몸을 주셨는데 어찌 이 몸의 소중함과 이 소중한 몸을 갖게 해 주신 부모님과 부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을까요? 사람 몸 받기가 그렇게 어려운데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 하고 함부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부처님법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데 우리는 다행히 불교에 귀의해 부처님법을 만나 그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갖가지 삿된 법이 창궐하는 말법시대에 정법(正法)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한 인연 아니고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난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불법을 공부하고 익혀 정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도 얻기 어려운 ‘나’의 몸을 주신 부모님과 조상님, 그리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하셨을 때 동서 남 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다시 그 중앙에 서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 받고 있으니 온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내가 마땅히 편하게 하리라)”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고 설명을 하신 것이고, ‘해탈열반의 삶을 이루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가 살고 싶고 실현하고 싶은 삶을 이루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로 표현을 한 것이지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돌듯이 우주는 북극성(우주의 중심)을 종심으로 모든 별들이 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별은 북두칠성입니다. 그 북두칠성이 동 서 남 북으로,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면서 일을 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도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북극성이 위치한 중심에 서서 탄생게를 외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든 것이 아무리 넓고 커도 중심이 있어야 질서가 잡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집니다. 가끔 태풍이 일어나는데 태풍도 중심이 없으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멸되고 말아요. 이와 같이 중심은 주변의 모든 것을 살리는 근원이 됩니다. 국가도 사회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사회에서도 지도자가 중심을 잘 잡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혼란과 분열이 없고 잘 굴러갈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에게는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의 일곱 가지 감정이 있습니다. 이 칠정(七情)을, 이미 내 몸에 가지고 온 불성을 중심으로 잘 운용시킬 때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일체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부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 씨를 싹틔우고 잘 길러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지요. 씨만 갖고 있다고 부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철저한 수행이 이루어질 때 불성이 꽃을 피웁니다.

부지런히 정진해 불성을 활짝 꽃 피우세요. 부처가 되고자 원력을 세우고 그 중심자리를 찾아 모든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도록 부단히 정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에 많은 죄업을 지었더라도 이를 진실로 참회하면 부처님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중생의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중생고에서 못 벗어나지만 이제 부처님의 마음으로 살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여러 고정관념, 감정 등 번뇌가 들어있는데 이는 본마음이 아니고 무명의 마음입니다. 무명을 깨우쳐 본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의지해서 부처님 씨를 싹 틔우고 잘 길러서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부처님 되기’에 힘써야 하겠지요.

<화엄경>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지요. 곧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컬어요. ‘일체유심조’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것이 신라 고승 원효스님 이야기입니다. 원효스님은 661년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唐項城:南陽)에 이르러 밤이 돼 묵을 곳을 찾아 어두운 움막을 찾아 들어가 잠을 잤어요.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날이 새어서 깨어 보니 머문 곳이 움막이 아니라 오래된 무덤이었으며,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모두 토해버렸습니다. 모르고 마셨을 때는 감로수와 같이 달더니 알고 나자 더럽다는 생각이 올라오자 크게 깨닫게 되지요.

사물 자체에는 깨끗함이나 더러움이 없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아 대오(大悟)해 더 이상 유학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신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생각 일체 여의고 마신 물은 나의 몸에서 시원하고 편안함을 가져왔는데, 눈으로 보고 더럽다는 분별심을 일으키니 나의 몸은 금방 거부감을 일으키면서 괴로움이 오고 토악질이 나는 것을 보고는 ‘일체유심조’를 파악해 버린 것이지요.

불자들은 부처님마음을 깨달아 부처님 마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부처님 마음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때 모든 것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니 '물아일체유심조'입니다. 쓸데없는 번뇌를 다 떨쳐버리고 본성 즉 부처님마음을 찾아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얼굴에는 자비의 미소를 가득 띄우고 자애로운 말씨로 남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하고 이웃의 아픔을 나누는 것이 불자의 진정한 자세입니다. 업에 끄달려 살지 말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다보면 운명이 바뀝니다.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위해 베풀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지금, 자기가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청정한 마음으로 살다보면 누구나 원하는 ‘날마다 행복한 날’이 될 것입니다.   

佛在心中坐
莫向身外求
迷時三界有
悟後十方空


내 마음 중심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니
내 몸 밖을 향해서 찾거나 구하지 말라.
깨닫기 전에는 삼계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깨달은 후에는 시방이 텅 비어서 일체가 공적하구나.


일각(日覺)스님은
금강산 건봉사로 출가해 1967년 동성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72년 보살계를 수지했다. 전(前) 태고총림 선암사 조실 지암스님에게 입실건당했으며, 용화사에서 법홍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금강산 유점사 권수근 화상에게 재공의식을 사사받았으며 중앙승가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전국에 달마도 1만점을 무상 보시했으며 현재도 달마도를 보시하고 있다. 현재 경남 남부교구종무원 부원장, 제 13대 중앙종회의원, 의령 성불사ㆍ 서울 팔봉사 회주와 부산광역시불교승가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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