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융합은 어떻게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나④

경운 화상이 직접 소장하고 있었던 문헌으로 의미 규명하자면
조선불교 내실 다져 일제강점기 엄혹한 환경 타개하려는 목적

책의 앞 표지를 넘기면 표지 안쪽 책이 묶이는 부분의 여백에 정갈한 필체로 적어둔 몇 글자가 눈에 뛴다 “朝鮮昌德宮殿下丙寅陰三月十四日上午六時十分昇遐”, 1926년 음력 3월 4일 오전 6시 10분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그다음 장에도 마찬가지로 한 귀퉁이 여백에 같은 필체로 몇 글자가 적혀 있었다. “尙宮鄭雲性佛名法界行戊辰十月二十二日入滅”, 상궁 정운성은 불명이 법계행인데 무진년 10월 22일에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이다. 순종 황제가 승하한 해가 1926년이니, 1928년 무진년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 두 줄의 내용을 기록한 사람 역시 필체 분석 등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경운화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운은 왜 불경 한 구석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승하한 날을 적어두었을까? 그가 필사하여 현재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는 『금자법화경』 한 질도 1880년 민비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출가 사문인 경운과 대한제국의 황실은 어떤 관계였을까. 또 상궁 정운성이라는 인물은 누구이며,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경운은 상궁이 세상 떠난 날까지 기록해 두었을까? 상궁은 경운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선암사와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황실과 경운화상 사이에 발 노릇을 한 게 바로 정상궁이 아니었을까 짐작하지만, 더 이상 추적할만한 근거자료는 확인할 수 없다.

이어서 『사문일과』의 앞부분에 편집된 문헌은 『지장보살본원경』이다. 형태는 목판본을 인쇄한 것이고, 서문이 있는 첫 장에 ‘金擎雲印’이라고 새겨진 인장과 요산호수(樂山好水)라는 글자를 새긴 좀 더 작은 인장이 함께 찍혀있다. 그리고 판심에는 ‘地’라고만 새겨져있다. 본문은 상(5~29쪽), 중(1~26쪽), 하(1~21쪽) 셋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전체가 70여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의 끝에는 조선 왕실 가족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발문 및 시주질과 함께 마지막에 “嘉慶 2년(1797. 정조 21) 경상도 함양 벽송암에서 간판(刊板)하여 안의현 영각사(安義縣 靈覺寺)에 이진(移鎭)한다”는 내용의 기문이 보인다.

조선말에 3권 1책 형태의 『지장보살본원경』이 많이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문일과』의 앞부분에 편집된 목판본 『지장보살본원경』의 또 다른 인쇄본이 다른 곳에서도 여럿 보이는데, 서울대학교 규장각(一簑古294.33-B872j)과 성암고서박물관자료실(성암3-440), 그리고 범어사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 동일한 판본을 인쇄한 문헌이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에도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고서 경매시장에도 유통된 사례도 보인다. 이렇게 3권 1책 형태의 『지장보살본원경』은 조선말기에 경남 일대에 널리 유통되어 있었고, 이것이 『사문일과』의 앞부분에 편집된 것으로 확인된다.

『지장보살본원경』에 이어 『사문일과』에 편집된 두번째 문헌은 『화엄경보현행원품』이다. 앞의 『지장보살본원경』이 목판본인데 비해서 이 문헌은 필사본이다. 이 문서의 첫 페이지에 “(미지수수인소사(未知誰數人所寫)” 즉 필사자를 알 수 없다고 적혀있다. 판심에는 ‘(행원)行願’ 두 글자가 적혀 있으며, 전체 23장 분량(1~23쪽)이다. 이 문서의 끝에 “擎雲懸吐 甲子二月十七日”이라는 사기가 있다. 누군가 필사한 『화엄경보현행원품』에 1924년에 경운이 현토하여 『사문일과』 문헌에 편집해 넣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석문) 上佐元奇拜謹讚書 以如幻身 現如幻世界 說如幻法 度如幻衆生 辛巳四月二十七日 涅槃(번역) 상좌 원기는 절 올리고 삼가 글을 짖고 글씨를 씀. 허깨비 같은 몸으로 허깨비 같은 세상에 출현하시어 허깨비 같은 가르침을 설하시어 허깨비 같은 중생들을 제도하셨네. 신사년 4월 27일 열반하셨다. 번역=신규탁 연세대 교수
(석문) 上佐元奇拜謹讚書 以如幻身 現如幻世界 說如幻法 度如幻衆生 辛巳四月二十七日 涅槃(번역) 상좌 원기는 절 올리고 삼가 글을 짖고 글씨를 씀. 허깨비 같은 몸으로 허깨비 같은 세상에 출현하시어 허깨비 같은 가르침을 설하시어 허깨비 같은 중생들을 제도하셨네. 신사년 4월 27일 열반하셨다. 번역=신규탁 연세대 교수

 

『화엄경보현행원품』 다음에 두 장의 특이한 문서가 삽입 편집되어 있다. 한 장은 「경운원기복위(擎雲元奇伏爲)」라고 제목을 적고 경허화상의 선대 법맥에 해당되는 스승 4인의 영가와 속가의 부모 형제 4인의 영가를 한 장의 옛날 양면괘지 종이에 적은 것이다. 이 문서의 작성 시기와 용도 등은 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운필을 살펴볼 때 경운화상이 직접 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 다른 한 장은 마치 그림엽서 같은 문건인데, 이 문서는 종이의 재질이나 형태로 봤을 때 앞의 「경운원기복위」 문건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어떤 용도인지 분명치 않다. 책 크기의 종이에 그림엽서 같기도 하고, 습작 같기도 하고, 산수화 같기도 한 풍경 한 폭이 실려 있었다. 풍경은 외진 산골 깊은 곳에 비스듬히 반쯤 쓰러진 낡은 비석을 보여주고 있다. 그 풍경을 멀찍이 뒤로 두고 게송이라고 해도 좋겠고, 축원이라고 해도 좋고, 시라고 해도 좋을 칠언절구 형식의 글이 화제(畵題)처럼 적혀 있는데, 전체적인 구도와 글귀가 매우 아름답다.

관세음보살 큰 성인께 우러러 축원하오니 (仰祝觀音大聖人)
죽어 육도의 나루터 건너지 않고 (臨終不涉六塗津)
극락의 연꽃 속에 왕생하여 (往生極樂蓮花裏)
영원히 아미타부처님 나라 백성 되게 하소서 (永作彌陀國土民)
경운원기가 엎드려 올립니다 (擎雲元奇拜上).

시 속에서 화엄교학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은 이 쪽 편에 있고, 정토의 상징인 아미타부처는 저 쪽 편에 있다. 그 사이에 살아 있는 중생이 감당해야 하는 생사대사의 절박함이 가로놓여있다. 이 생사대사의 절박함이 선이 딛고 있는 지점이다.

『사문일과』에 세 번째로 합철되어 있는 것은 「안락와사문일과경게」라는 제목의 문서이다. 『사문일과』라는 전체 책 제목에 부합하는 문건이 바로 이 세 번째에 합철되어 있는 문서이다. 이것과 같은 제목의 문헌이 서울대학교 규장각(古1730-70)과 국립중앙도서관 그리고 아단문고에서도 확인되는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문헌을 보면 표제가 『정토과경(淨土課經)』으로 되어 있고 간기에 “雍正八年庚戌(1730) 四月全羅順天桐裡山大興寺重刊”이라고 되어 있으며, 『사문일과』에 합철된 것과 동일한 판본이다.

「안락와사문일과경게」는 목판본을 인쇄한 것인데 판심 서명에 ‘일과경(日課經)’과 ‘과송경(課誦經)’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두 개의 판본을 합친 것이거나 아니면 상당한 시차를 두고 판각되었거나 다른 곳에서 판각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구성을 자세히 나눠보면, 「보현보살찬불게송」이 20장이고(1~20쪽), 그 다음에 15장 정도 페이지의 결락이 있고, 「불설아미타경」이 15장 이어진다(35~50쪽). 그리고 「찬관음문」이 8장(51~57쪽)에 걸쳐 새겨져 있다.

이어서 『사문일과』의 맨 마지막에는 「구간화엄행원품지장장수삼경후발(俱刊華嚴行願品地藏長壽三經後跋)」이라는 제목의 발문이 실려 있다. 발문을 쓴 때는 ‘옹정경술(雍正庚戌, 1730년) 4월’로 되어 있으며, 작성자는 상월 새봉(霜月璽封, 1687~1767)으로 되어 있다. 이 서지사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단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사문일과』는 1730년 상월화상이 「화엄경보현행원품」과 「지장보살본원경」 그리고 「안락와사문일과경게」 등 3가지 문헌이 합철된 형태인데, 이러한 융합적 전통이 선암사를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해당 문헌은 그 가운데 경운화상이 직접 소장하고 있었던 문헌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문일과』는 선과 화엄 그리고 정토의 융합을 모색했던 조선 불교사상의 흐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는 문헌이다. 조선후기 불교는 선, 교학, 정토 염불을 어떻게든 한꺼번에 담아내려고 했다. 그 셋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통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셋을 묶어내야 하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참선 수행과 교학과 정토는 다르지 않아 삼문직지(三門直指)였을 것인데, 그 이치가 한 폭의 시로 오롯하다.

-동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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