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지식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원하든 아니든 실시간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데이터가 정보 홍수를 넘어 가히 광활하다. 키워드 하나에 관련 자료가 작게는 수십에서 많이는 수만 건을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지구 반대편의 일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고 인류의 생활도 변했다. 하물며 종교라고 해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종교인들의 방송 출연이 잦아지고 지상파와 개인방송을 통해 그 일상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요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97.5만 팔로우를 보유한 트위터리안 혜민 스님에 관한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가 논란이다.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논란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것인가에 주목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한두 해에 걸쳐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저서를 통해 꾸준히 쌓여진 무소유에 대한 올바른 수행자의 이미지가 그 힘의 원천이다. 반대로 한순간에 유소유, 풀(Full)소유 등으로 대중들의 시선이 냉소적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논란에 대한 명확한 해명도 없이 활동중단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과연 최선일까?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알려진 윤리학자 마이클 샌델은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자신의 능력 때문인가?”라고 묻고 있다. 다시 말해 능력주의가 과도해지면서 도덕적 판단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 서열화와 보상의 차등화는 ‘성적기반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사회의 양극화는 한층 심화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논란은 그동안 대중들의 믿음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푸른 눈의 수행자로 유명한 현각 스님의 저격은 하루 만에 “나의 영원한 도반(道伴)이며 그의 순수한 마음을 매우 존경한다”며 본인의 말을 번복하는 모순을 보였다. 이러한 경솔함이 오히려 갖은 비난 여론에 편승하여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정한 도반은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있지도 않고 원색적인 비난만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따끔한 충고를 할 도반의 자격이 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먼저 해보아야 할 것이다.

올 11월 혜민 스님은 <중앙일보> [마음산책]에 ‘왜 인간은 자기 모순적일까?’라는 제목으로 “자기모순을 합리화하는 배경에는 ‘내 경우는 좀 예외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인 듯하다.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자세한 맥락을 나 스스로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이처럼 명확치 않거나 행동에 확신이 없을 경우에 스승과 도반을 찾아 조언을 구하면 올바른 길을 가는지 확인하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된다.

한편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지혜의 심리학』을 통해 ‘메타인지(meta認知)’를 말한다. 직역하면 자신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식과 조절을 의미한다. 즉 무언가를 배우거나 실행할 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밀린다 팡하(彌蘭陀王問經)』에 나오는 것처럼 알면서 짓는 죄는 참회를 통한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해와 진실규명에 대한 노력으로 반성과 잘못을 참회하기 전에 먼저 인정하는 교훈을 준다.

지식정보화는 빅 데이터 시대의 필수요건으로 데이터를 읽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가 절대적이다. 매 순간 수많은 검증을 요하는 정보와 비정보가 공존하기에 목적에 맞게 정확히 취합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적당한 데이터 단식(data斷食)을 통해 정보의 홍수에서 스스로 지켜내는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을 하여야 한다. 때로는 과감히 일정 기간 동안 모든 정보를 멀리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찾는 진정한 의미의 ‘안거(安居)’가 될 것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 석박사 통합과정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