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 때였던가
소설(小雪) 무렵이었던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DMZ
낮은 포복으로 밤새 수색을 하는데
별처럼 먼 곳에서
비봉폭포 어는 소리가 수직으로 들렸다
아침에 철수할 때 보니
비로봉이 하얬다
밤새 눈 내린 내 마음도 하얬다
30년이 지나서도
비로봉은 여전히 하얗다
사시사철 여전히,
하얀 눈만 내리고 있다

하얀 저 산,
하얀 저 금강,
언제 단풍 들까
하얀 내 마음,
유점사 탱화처럼
언제 붉어질까

-엊그제 소설(小雪)이 지났다. 기다리던 (첫)눈은 오지 않고, 코로나19만 눈보라보다 더 무섭게 왔다. 날마다 불어나는 그 ‘스노우볼(Snowball)’ 때문에 명치끝이 아리다. 연민이라 해도 좋다. 감정의 사치(奢侈)라 해도 좋다. 날마다 무섭게 불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는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우울 위로 더 무거운 우울이 내려 쌓이게 한다.

일병 때였다. 내 나이 스물 하고도 다섯 살 때, 나는 ‘땅개(육군)’가 되었다. 물론 최전방(DMZ)까지 가 수색부대에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해 그때 그 봄날, 나는 한 비행장 육군방공포대(지금은 공군으로 바뀌었음)에서 겨울보다 더 차갑고 서러운 일등병 시절을 보냈다. 하필이면 그해 그때 그 봄날에 그일(광주 5·18 민주항쟁)이 터져 나는 입대 1년이 넘도록 (광주·전남 병력이라는 이유로) 휴가조차 나오지 못하고 살벌한 군 생활을 했다. 밤새 보초를 서고, 다음날 아침에 비행장을 보니 눈이 하얗게 왔다. 5월에 눈이라니? 그것은 다음 아닌 광주(군)비행장에 상주해있던 (당시) 공군 주력 전투기였던 F-5E와 KF-5E가 (속칭) ‘폭도’들을 피해 내가 복무하던 비행장으로 피난 온 것이었다. 격납고 곳곳마다 눈이 내린 듯 착륙해 있는 그 전투기들을 보며 나는 마치 폭설을 맞은 것 같았다.

그 불길함은 입대 13개월 만에 가까스로 나온 첫 휴가 때 생생히 맛보았다. 내 고교 시절(청춘 시절) 더벅머리로 누비고 다녔던 금남로는 더 이상 내 청춘의 길거리가 아니었다. 군복을 입고 금남로와 충장로를 걷는 동안 나는 수상한 눈빛들과 이상한 얼굴들을 만나면서 나는 정말로 수상하고 이상한 인간이 돼버린 것이다. 보름 동안의 첫 휴가는 그렇게 끝났다. 겨울보다 더 혹독하고 매서운 봄 휴가였다. 그런 추억을 거쳐 나의 대학생활은 10년 만에 겨우 끝났다. 그 10년의 우울과 반항과 방황과 알코올과 슬픔과 상처의 날들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 황량한 황무지로 남아 있다. 우울의 폭설과 대설로 뒤덮인 찬 들판으로 남아 있다. 그때 만난 것이 불교였다. 그 해인(海人)의 광명과 자비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는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며 내가 나에게서 온 시를 순전히 상상으로 받아 적은 작품이다. 그 하얀 산, 그 금강의 산에 있는 유점사(楡岾寺)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가, 이 낡고 헐고 질긴 ‘가죽부대’나마 유점사 탱화로 헌공(獻供)하고 싶다. 축제처럼.

-이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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