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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2020)년 12월 02일 수요일
【담마 스님의 위빳사나 강의】일부러 의도를 보려고 해서는 안 돼
【담마 스님의 위빳사나 강의】일부러 의도를 보려고 해서는 안 돼
  • 담마 스님
  • 승인 2020.11.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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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균형의 중요성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한 소나 스님은 공동묘지 근처의 수행처인 ‘차가운 숲〔寒林〕’ 시따와나(sitavana)에서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남보다 엄격하게 그리고 열심히 수행과 정진을 했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나 스님은 오랜 수행에도 불구하고 취착을 없애지 못하고, 번뇌로부터 해탈하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세속으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보시 공덕이나 닦아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붓다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아시고 소나 스님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 거문고의 활줄 소리에 능숙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문고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한데도, 그대의 거문고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문고의 활줄이 지나치게 느슨한데도, 그대의 거문고는 그때 선율이 이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그러나 그대의 거문고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고 적당한 음계(音階)에 맞추어졌을 때 그대의 거문고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된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그와 같이 지나치게 열심인 정진은 들뜸으로 인도하고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은 나태함으로 인도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대는 정진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다섯 가지 기능들의 균등함을 꿰뚫어야 하고, 거기서 표상을 취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Sona-sutta-A6:55)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소나 스님은 다섯 가지 기능들의 균등함 즉, 믿음과 지혜의 균형, 사마띠와 정진의 균형을 이루고, 사띠 즉, 알아차림을 강하게 하여 오래지 않아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나 스님의 사례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 왜 중요한지 교훈을 줍니다. 동시에 아난존자의 사례도 그러합니다. 아난존자께서 행선을 오래 하다가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생각하시고 눕는 과정에서 아라한의 경지를 성취하셨습니다. 수행에 있어서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균형 있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퇴보하는 마음이 멈추고, 균형 있게 발전을 함으로써, 오히려 신속히 위빳사나의 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집중수행을 할 경우 많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집중수행이란 하루 종일 알아차림을 하는 것으로서, 보통 석 달 정도 수행을 합니다. 집중수행은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불을 지피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옛날에는 나무끼리 비벼서 불을 피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불을 피울 때, 불을 피우는 사람은 불이 붙을 때까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비벼대야 합니다. 나무가 뜨거워질수록 더욱 더 힘을 주어서 비벼야 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비벼대다가 아주 뜨거운 것보다도 더 뜨거워지게 될 때에, 비로소 불이 붙게 됩니다. 그 때에야 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앞의 알아차림과 뒤의 알아차림, 앞의 ‘순간삼매’와 뒤의 ‘순간 삼매’가 끊이지 않고 연결되도록, 알아차림이 하나로 쭉 이어지도록 끊임없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집중수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의도가 보입니다. 행선의 경우, 발을 들기 전에 들려는 의도가 있음이 보입니다. 밈과 내림에서도 그 의도가 저절로 보입니다. 그 의도는 촘촘히 일어남을 알게 됩니다. 드는 순간 ‘듦듦듦듦듦듦’이라는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림 할 때, 듦이라는 의도가 촘촘히 일어남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에 적합

한 듦이라는 동작이 촘촘히 일어남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매 순간, 의도에 적합한 동작이 일어나면서, 발바닥을 떼는 한 동작에, 매우 많은 듦이라는 의도와 동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에, 행위가 단독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행위의 이면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러 의도를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저절로 보여야 합니다.

-마하시 전승 위빳사나 ‘담마명상원’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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