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승잔법 제12~13조
소소계 버려도 좋다 했지만 취사선택 어려워

승잔법 제 12조는 악성거승위간계(惡性拒僧違諫戒)이다. 글자 그대로 의미는 비구가 악한 성품이어서 승가의 충고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 조항은 석가모니께서 출가할 당시 마부였던 찬나비구가 인연담의 주인공이다. 찬나비구는 갖가지 여법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구들의 충고를 받았으나 자신이 세존과 같은 석가족임을 내세워 다른 비구들의 충고를 무시하였다. 승가 내에서는 세존께서 설하신 율에 의하여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법하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난 후 고의로 혹은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쁜 말로써 자만심을 드러내며 승가의 정당한 권유와 충고를 무시하는 비구들이 있다. 이때 세 번의 충고가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승잔죄가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법(如法)’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그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점잖고 의젓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빨리어 율장에는 ‘여법이란, 세존에 의해 설하여진 학처(學處, 비구계 조문)를 여법이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빨리어 율장에 기준하여 이 의미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여법하기 위해서는 비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여법이란 비구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정녕 비구가 되어야만 여법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경험이 있겠지만 필자와 필자의 도반들 또한 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설하신 계율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 사실 이 문제는 상좌부 전통의 불교 국가나 대승불교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뚜렷한 답이 도출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상황은 비단 현재뿐만 아니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후에도 거론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승가가 원한다면 소소계(小小戒)는 버려도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소소계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처 물어보지 못한 까닭에 승가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오고 갔으나 결국 소소계의 정의를 내리지 못했고 가섭존자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율에서 새로운 조문을 추가하거나 빼지 않기로 제안했고 대중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불제불개변(佛制不改變)’이다. 즉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을 개정하거나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2,500년 전 아라한들조차 소소계를 정의하는 것이 어려워 계율의 원형을 지키고자 했는데 지금 우리가 감히….

승잔법의 마지막 13조는 오가빈방위간계(汚家擯謗違諫戒)이다. 이 조문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비구가 재가자의 청정한 믿음을 파괴하는 것과 재가자와 같은 자리에 앉거나 같은 그릇에 음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승잔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승잔법 13조문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승잔법의 1조부터 9조까지는 각 조문을 어겼을 때 바로 승잔법이 적용되어 여섯 번의 밤(六夜) 동안 마나타를 행해야 하며 10조부터 13조까지는 승가가 세 번 충고하였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을 때 승잔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역시 마나타를 행해야 한다. 마나타는 별도로 머물며[別住] 승가에 여법한 참회를 하는 것으로 이 기간 동안 비구는 아무리 법랍이 높아도 청정비구의 제일 끝자리에 앉게 되며 청정비구의 앞을 지나가지 못하는 등 비구의 자격이 일부 제한된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ㆍ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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