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도
힘을 잃지 말고
‘(삶의) 기쁨에 모험을 걸자.’
‘자신을 열고’
자신을 위한 애가를 부르자.
大醫王 부처님께서도
그걸 바라고 계실 것이다.”

 

올 노벨 문학상은 미국 여류시인 루이즈 글릭(7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8일(현지시각) 루이즈 글릭을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그 이유로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실존을 보편적으로 나타냈다”고 밝혔다.

19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글릭의 시는 ‘명징함’과 함께 “고통스러운 가족관계를 잔인할 정도로 정면으로 다뤄, 시적인 장식이 없이 솔직하고 비타협적인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시 속에서 자신의 꿈과 환상에 스스로 귀를 기울이면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환상과 정면으로 대응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고교 시절, 극단적인 선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기억 때문에 그랬을까. 그녀의 시 가운데서도 나에게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시는 「애도(哀悼)」였다.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모인 가수들이 예행연습을 하듯/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박자나 화음은 맞지 않지만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줄지어 나가기 시작하면,/ 왜냐하면 그런 날에는/ 전통 의식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9월의 늦은 오후인데도/ 햇빛이 놀랍도록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그때/ 당신은 갑자기/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질투를 느낄 것이다.// 살아 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옹하며/ 길에 서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루이스 글릭의 「애도」전문(류시화 옮김)

이 시를 처음 대하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실제로 글릭은 50대 초반,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고 나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이 시 가운데서도 나의 가슴을 더욱 촉촉이 적신 시구는 “박자나 화음은 맞지 않지만…/ (……) /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줄지어 나가기 시작하면,/ (……) / 당신은 갑자기/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질투를 느낄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이것이/ ‘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라는 대목이었다.

이 시구는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죽음에의 묵중한 기억을 갖고 있는 나에게 깊은 애도(哀悼)로 다가왔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죽음은 오히려 삶의 가장 마지막 남은 축제가 아닌가. 그 축제도 없이 코로나19로 속절없이 죽어가는 인류의 떼 주검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기 때문이다. 인류의 오판과 오류가 ‘지옥의 묵시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올 노벨문학상이 글릭에게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루이스 글릭의 「눈풀꽃」전문(류시화 옮김)

삶은 모험이다. 코로나19라는 한겨울의 시대, 우리 모두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도 힘을 잃지 말고 ‘(삶의) 기쁨에 모험을 걸자.’ 그리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열고’, 자신을 위한 애가를 부르자. ‘눈풀꽃’이 되자. 대의왕(大醫王) 부처님께서도 그것을 바라고 계실 것이다.

-주필 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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