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인류가 기르는 식용작물의 75%는 외부의 힘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옮겨줘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과·딸기·호박·오이 등 인간이 먹는 작물 대부분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또 가루받이 방식으로 자란 풀과 곡물을 소·돼지·닭 등 가축이 먹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순차적으로 가축들도 사라지고 인류는 치명적인 식량난에 처하게 된다.

파브르는 모든 개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진화의 정점이라고 했으며, 「다윈」이 진화론의 전개 과정에서 ‘포악한 종’이 궁극적으로 멸망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정설로 알려져 있다. (최근 낙동강 유역에 퍼진 외래 ‘뉴트리아’가 천적이 없이 과잉 번식하며 생태계를 파괴하자, 주민들이 그들을 포획해 살육처리 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인간이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를 진화된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다. 약자와 비적자만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존환경을 폭압적인 욕심으로 교란하는 종도 결국 멸종되며, 더불어 사는 존재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우리는 같은 사례를 수없이 목격한다. 억지로 막고 있는 강물의 둑은 언젠가 무너지는 것이다. 막힌 구조가 뚫어지지 않는다면, 자연이 아프고 사회가 병들어 전체가 같이 멸망하고 만다. 부분이 아프면 전체가 아프고, 전체가 아프면 부분도 아프다. 세상이 바뀌면 내가 바뀌고,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기도 한다. 내 몸이 아픈 것과 팔·다리가 아픈 것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전체, 전체 속에 하나가 있으니)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이다)이다. 중생이 아프면 곧 내가 아픈 것이다. 상호의존성은 필연적으로 개방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인류가 IT 기술에 열광하는 것은 IT가 개방성을 모토로 효율적인 정보 소통 네트워크를 펼쳐냈을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두려워하는 우리의 내적 본성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폐쇄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생존에 위협을 느꼈을 때 떠오르는 신호다. 우리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본성은 상호 의존적인 개방과 포용, 소통이지 폐쇄와 독존, 무관심이 아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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