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주선(住禪, 멈춰서서 하는 명상)③

 

처음 위빳사나를 하는 경우 주선에 있어서, ‘섬’이라는 동작에 대한 강한 의도와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마음현상을 알아차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숙련된 수행자는 서는 의도와 동작이 일치하고, 주시하는 대상과 주시하는 마음이 일치하여 다른 마음이 틈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마음현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보자의 경우 대부분 다양한 마음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림 하자마자 마음은 현재의 관찰대상인 섬이라는 발바닥에 돌아오게 됩니다.

“섬섬섬섬섬섬” 하면서 발바닥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다른 강한 현상(어깨의 강한 긴장, 호흡의 불편함 등)이 일어나면 그 강한 현상을 주시합니다. 만약 강한 집중으로 인해서 호흡의 불편함이 일어난다면 그 호흡을 주시하며 알아차림해야 합니다. 또 처음 위빳사나를 하는 경우 어깨나 배 등에서 강한 긴장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의 힘이 약하기에 초창기에는 의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긴장이 있습니다. 특히 빨리빨리 문화가 있고, 세계적으로도 화병이라는 특이한 병이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깨의 긴장을 유념하여 의도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강한 긴장이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첫째 다른 곳에 집중이 잘되지 않습니다. 둘째 긴장이 지속되면 마비나 통증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방치하면 병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므로 긴장을 잘 알아차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긴장은 지속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는 병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되거나, 병으로 발전하던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긴장을 주시할 때에, 긴장을 싫어하는 진, 긴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탐심이 없이 단지 알아차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긴장이라는 개별적 특성에 대해서, ‘위빳사나의 중요한 자세’를 유지하여 주시함으로써, 일어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보편적 특성을 알아차림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스스로의 특성이 그러하기에 단지 그것을 수용할 뿐입니다. 그럼으로 긴장이나 스트레스는 스스로 성품에 의해서 변화하고 사라진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도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의도가 개입된다면 그 의도에 의해서 새로운 긴장이 발생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바라는 탐심이나 거부감인 진심 없이 단지 알아차림 할 뿐입니다. 우리가 알아차림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긴장이나 스트레스는 계속 지속됨으로써 병으로 발전하거나 주변으로 발산되어 분노가 전염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 하여 주시함으로써 우리는 긴장이나 스트레스라는 개별적 특성을 알게 되었고, 일어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모양과 특성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긴장이나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없어져야 하거나 지속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무각성의 상태, 즉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가 나쁜 것입니다. 알아차림이 있다면 우리는 어디서나 배울 수 있습니다.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개별적 특성과 보편적 특성을 주시하고 알아차림하며 스스로의 지혜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발전하면 ‘삐띠’ 체험 즉 기쁨 체험과 위빳사나 지혜의 체험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이든 알아차림해야 합니다. 정신과 물질 그 어떤 것도 무각성의 상태 즉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도 좋은 것은 없습니

다. 그러한 것은 매우 해롭습니다. 정신과 물질 그 어떤 것도 좋은 알아차림의 대상입니다. 기쁨 체험이나 지혜의 체험만이 좋은 대상이 아닙니다. 모두가 좋은 대상입니다. 그리고 특정한 때만이 좋은 때가 아닙니다. 언제나 알아차림 하기에 적합한 때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위빳사나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며, 여러분에게 많은 유익함을 안겨줄 것입니다.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도록 지혜로운 말씀을 전하신 앙굿따라 니까야(Sona-sutta-A6:55)의 내용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소나(Sona)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마하시 전승 위빳사나 ‘담마명상원’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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