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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문지수 박사의 생생하게 풀어쓰는 금강경】“상이 상 아님을 알면 바로 여래 보리라”
【문지수 박사의 생생하게 풀어쓰는 금강경】“상이 상 아님을 알면 바로 여래 보리라”
  • 문지수
  • 승인 2020.09.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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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래를 알아볼 수 있는 지혜

006 여래를 겉모습으로 보나?(여리실견분 : 如理實見分)

[원문언해]須菩堤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不也이니다. 世尊이시여 不可以 身相으로 得見如來니 何以故오 如來 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일세니이다. 佛告 須菩堤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 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

[직역]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몸의 형상으로써 여래를 알아 볼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써는 여래를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몸의 형상이라고 말씀한 상이 바로 이 몸의 실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온갖 상들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상들이 바로 그 실상이 아닌 줄 알게 되면 바로 여래를 알아보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대화체]

세존 : 수보리! 너는 부처님 모습의 특징[32길상 80종호]만으로 여래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특징만으로는 여래를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한 부처님 모습이란 실상[여래의 청정법신]이 아니라 그때 편의상 말씀하신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존 : 그렇다. 무릇 모든 실상이라고 말하는 형상은 사실은 모두가 물거품처럼 허망한 것일 따름이다. 이와 같이 모습에 머물지 않고 모든 [실상이라고 말하는]형상이 실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여래를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느니라.

청허 김순환 작가의 ‘인중유락’ 작품. 참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는 뜻으로 깨끗한 믿음을 수지하기 위해선 인내의 고통이 따르지만 이를 이겨내면 결국 깨달음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청허 김순환 작가의 ‘인중유락’ 작품. 참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는 뜻으로 깨끗한 믿음을 수지하기 위해선 인내의 고통이 따르지만 이를 이겨내면 결국 깨달음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다.

 

007 법상에도 걸리지 말아라(정신희유분 : 正信希有分)

[원문언해]須菩堤 白佛言하사되 世尊하. 頗有衆生이 得聞如是言說章句하사옵고 生實信不잇가. 佛告須菩堤하사되 莫作是說하라. 如來 滅後後五百歲에 有 持戒修福者 於此章句에 能生信心하야 以此爲實하리니 當知하라. 是人은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에 而種善根이라. 已於無量千萬佛所에 種諸善根하야 聞是章句하면 乃至 一念이라도 生淨信者니라. 須菩堤야 如來 悉知悉見하나니 是諸衆生이 無復我相 人相衆生相壽者相하며 無法相하며 亦無非法相 이니라.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若心取相하면 卽爲著我人衆生壽者니라. 何以故오 若取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며 若取非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니라. 是故로 不應取法이며 不應取非法이니 以是義故로 如來 常說하대 汝等比丘 知我說法을 如筏喩者라하노니 法尙應捨어든 何況非法이야따녀. 須菩堤야 如來 悉知悉見하나니 是諸衆生이 得如是無量福德니라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며 無法相하며 亦無非法相 이니라.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若心取相하면 卽爲著我人衆生壽者니라. 何以故오 若取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며 何以故오 若取非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니라. 是故로 不應取法이며 不應取非法이니 以是義故로 如來 常說하대 汝等比丘 知我說法을 如筏喩者라하노니 法尙應捨어든 何況非法이야따녀.

[직역] 수보리가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 진실이란 믿음을 내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그런 말을 말라.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 오백년(後五百年) 뒤에라도 계(戒)를 지키고 복(福)을 닦는 이는 이 말씀에 믿음을 내고 이를 진실이라 여기리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넷·다섯 부처님께만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부처님께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는 잠깐 동안이라도 한 생각에 깨끗한 믿음을 내는 데 이르게 되리라.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니, 이 중생들은 이렇게 보살이 될 수 있는 한량없는 복덕을 받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중생들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더는 없으며 법상(法相)도 없고 비법상(非法相)도 없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중생들이 만일 마음이 상을 취하면 이는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니라. 만일 법상을 취하더라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되나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일 비법상을 취하더라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법상에도 걸리지 말아야 하고 비법상에도 걸리지 말아야 하나니 이런 가르침인 까닭에 여래가 항상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 같이 여기라’ 하였나니, 법상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상은 어떻겠는가!

[대화문]

수보리 :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라도 정말 이러한 가르침만을 듣고서 순수한 믿음을 낼 수 있습니까?

세존 : 수보리야, 그런 말은 하지도 마라. 여래가 돌아가신 후 오백년이 지나더라도 계율을 지키며 선정을 통해 지혜 복덕을 닦는 중생이라면 이 금강경 말씀 몇 구절만 듣고서도 이를 참다운 진리로 믿을 것이다. 이런 중생은 한 두 부처님 아니라 이미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부처님께 온갖 선한 인연의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린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금강경 말씀을 잠시 듣게 되더라도, 한 생각[一念]에 의심없이 바로 청정한 믿음을 낼 것이다. [수보리가 이해가 안 되어 멈칫하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갸우뚱거리자 세존이 다시 말하신다] 수보리야, 여래는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고, 보이지 않는 것이 없이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중생이 보살이 될 수 있는 한량없는 복덕을 받게 될 것을 다 보고 아느니 믿어라. 왜냐하면 이 중생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더 이상 없으며 나아가 법이라는 상도 없고 법이 아니라는 상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중생이 만일 마음에 상이 있어 걸렸다면 바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나타나 청정한 믿음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법이 있다는 상이나 이와 정반대지만 똑같이 법이 아니라는 상에 걸렸다면 이 둘 다 똑같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걸려 집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법이 있다는 상에도, 법이 아니라는 상에도 걸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니라. 이는 여래께서 늘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 같이 여기라”라고 한 가르침과도 같다. [여래께서 공을 터득하기 위해서 가르친 중도 설법에서 ‘흐르는 물을 따라 가며 양단의 기슭에 닿지 않고 깨달음의 바다로 걸림 없이 내려가는 뗏목의 사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법이 있다는 데 머물러 생기는 상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도 아닌 곳에 머물러서 생기는 상은 더 말해서 뭐하겠느냐!

이번 호부터는 현대문 대신에 대화문을 넣어 봤다. 상세하게 푸는 현대문은 중간중간 긴 해설로 인해, 만연체가 되어 읽어 내려가기가 힘든 부분이 생겨서 그렇다. 월운 큰스님의 초창기 번역과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의 표준번역을 참조하여 만든 직역과 현대역의 관계가 구마라집의 원문언해와 위 직역과의 관계를 넘지 못하는 측면도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존 즉 석가모니부처님과 수보리장자의 대화체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재현해 봤다.

번역이라는 것이 원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여시아문이라. 이와 같이 들었을 뿐인데 이게 들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또 다르면 이야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뭐가 원본일까? 성서에도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고 한다. 히브리어로 된 것도 있고. 그런데 『금강경』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무엇일까? 그 번역은 제대로 되어 있을까? 원본성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원본의 진실성은 또 어떻게 담보해야 할까?

결국 모든 것은 인연에 따르고 『금강경』의 불법을 만난 수승한 인연에 감사하면 될 따름이다. 위에 나오는 “여래가 돌아가신 후 오백년이 지나더라도 계율을 지키며 선정을 통해 지혜 복덕을 닦는 중생이라면 이 금강경 말씀 몇 구절만 듣고서도 이를 참다운 진리로 믿을 것이다."라는 말을 뒤집어보면 될 듯하다. 지금의 가르침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낼 수 있다면, 이미 수승한 불연이 있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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