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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道斷時論】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가?”
【道斷時論】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가?”
  • 재홍 스님
  • 승인 2020.09.08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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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떻게 수행하나를 묻는 이들이 있다. 그때마다 스스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나?”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라 답한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나?” 스스로에게 물으면 확연히 그렇다고 답하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도 모르게 욕심과 집착이 생겼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무언가 가진 것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스스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확연한 답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원인을 잘 살펴 그것을 버리게 된다.

코로나19가 두려운 것은 죽고 살고를 떠나 당분간 세상과 단절 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격리되어 있는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자유롭게 출입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초기증상도 없이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이 악화되어 음압병동에 입원했다 세상을 달리하는 일도 많았다. 보건소 진료 받고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 엉겁결에 병원으로 가게 되고, 가족과 면회도 안 되고 그러다 악화되면 영영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것이 곧 영영 이별이 되고 만 것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에 의해 분리되고 버려지게 된다. 애지중지하던 모든 것,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니다. 부도 명예도 이제는 나와 무관한 것이 된다.

죽음은 세상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한다. 빈손으로 왔다 수의 한 벌은 입고 간다 하지만 실상은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만이 죽음과 직면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어떤 형식으로 죽음이 올지 모른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항상 같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을 망각하고 산다. 100년 살기도 어려운데 마치 영원을 살 것 같이 산다.

사형제도가 없어져가는 나라 중 한 곳이 우리나라다. 생명존중의 이념도 있지만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판단할 수 없고 오직 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종교의 논리가 받아들여진 부분이 더 강하다. 그리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사형수의 순수성을 들어 사형제가 필요 없음을 주장하였다. 사형제 폐지가 잘못 됐다거나 잘 됐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같은 죄를 짓고 사형을 언도받느냐 아니면 무기형을 언도 받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사형을 언도 받은 사람은 순수해지지만 무기형을 언도 받은 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죽음을 직면해 보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부처님 법이 대가섭존자에게 전해지는데 대가섭존자의 대표성을 두타제일이라 하고, 두타는 통칭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두타를 실천해 나가는 두타행을 세분하면 12두타가 되는데 그중 총간주(塚間住)는 무덤 곁에 머물며 무상관(無常觀)을 수행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인도의 장례문화로 봤을 때 무덤 곁이 아닌 화장터를 말하는 것이리라. 우연히 네팔 여행을 하다 장작더미 위에 올려 화장되는 세 구의 시신을 본 적이 있다. 거의 다 타가는 모습, 중간 정도, 이제 막 화장하려는, 그중 중간 정도는 큰 낫 같은 것으로 반을 접는데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참혹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대상이 아닌 자신이 되어 수행하는 것이 총간주다. 수행자라는 종교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종교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다. 그런데 이들을 상대로 사기치고 협박하는 사람들이 많다. 속된말로 승려 생활하다 퇴속하여 살게 되면 10년 피똥 싼다고 한다. 신도들에게 공경 받고 살아온 그 과보가 그렇게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기치고 겁박한 업보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스스로 항상 뒤돌아보고 물어 본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가?”

-성주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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