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의 산거시

산거시라고 해서 모두 ‘깨침’을 바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의 시성(詩聖)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백(李白 706∼762)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이백은 두보와 함께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불렸다. 두보가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정제된 시를 내놓는 데 비해 이백은 천재적 재능으로 몇 줄 내려 쓰면 그것이 두보에 필적하는 명시였다고 한다. 이 시는 그가 산속에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이다.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 그 말에
대답대신 웃는 심정, 이리도 넉넉하네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
인간세상 아니어라 별유천지네.

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沓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왜 산에 사느냐 하면 웃지요’라는 명언을 탄생시킨 이백의 산거시다. 이백은 동시대 왕유가 신회와 보적 선사 등 기라성 같은 대선사들과 교제하면서 선의 체험을 그대로 시화(詩化)했듯 그도 처음엔 선에서 출발했다. 1, 2구는 그의 선적 경지가 시어로 절묘하게 표현된 부분이다. 산에 사는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웃음 하나로 대답을 대신 하지만 넉넉한 심정과 여유가 물씬 풍겨진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백의 선적 관조가 여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백은 문학적 재질은 타고 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선승들과 같은 구도행을 깊이 체험하지 못한 속세의 천재 시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선지를 살리지 못하는 행태로 이어진다. 깊이 있는 오의의 세계가 그의 시에선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무릉도원의 신비경을 읊고 있는 제3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는 ‘깨침의 문’ 대신 도가의 신비적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삶도 그랬다. 그는 후대로 갈수록 도가에 몸과 마음을 기울게 된다. 탁월한 시상과 구성은 그의 자랑이었지만 선자들의 산거시에 비해 정신적 궁핍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바로 선지의 전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상과 시어만큼은 대문장가답게 절묘하며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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