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승잔법 제7~9조
헛된 말로 수행자의 본분 놓쳐선 안 돼

올해 장마가 한창인 어느 날, 내 법호가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일공 스님으로 나를 부르는 한 도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쓴 글을 잘 보고 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빨리어도 조금씩 삽입을 해서 글을 쓰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솔직히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6년 동안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를 배웠고 수석과 차석을 놓치지 않으며 제법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을 했다. 스리랑카로 유학 가서도 빨리어 수업을 들었지만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도 외국어이기 때문에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영어보다도 더 빨리 잊어버리게 된다. 요즘 들어 가끔 우리말도 잊어버리는데….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굳이 빨리어를 쓸려면 쓸 수는 있지만, 학부 때 산스끄리뜨어 단어 하나를 해석하고 빨리어 한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 이 책 저 책 뒤져가며 밤샘을 했던 날이 여러 번 있어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요즘은 좋은 번역서들이 많아서 굳이 원서를 보지 않아도 되고, 만약 직역을 해야 할 경우나 꼭 필요한 때가 되면 억지로라도 원서를 볼 수 있으니 그 정도면 된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빨리어 율장의 비구계 전체 조문(227계)을 본 연재에서 전부 다루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 같아 일부 조문은 아주 간단히 조문의 요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승잔법의 제 7조는 비구가 방사를 지을 때 시주자가 있는 경우 방사의 크기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방사라고는 하지만 집 혹은 정사(精舍)가 알맞은 개념이며 정사라고 하더라도 많은 비구들이 머물 수 있는 승가의 정사는 아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승잔법 제 8조는 무근방계(無根謗戒)이다. 한자 뜻 그대로 근거가 없이 청정한 비구를 비방하고 헐뜯는 죄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승가에는 소임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비구들에게 방을 배정하는 소임도 있었다. 방 배정 방법은 오늘날 한국 승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법랍 순서대로 좋은 방을 우선 배정하였다.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죽림원에 머무실 때 ‘답보 말라뿟따’라는 비구가 아라한과를 증득한 후 승가에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방 배정 소임을 자청하였다. 어느 날 자지(慈地)비구와 육군(六群)비구가 방사를 요청하였으나 법랍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방사를 배정받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재가자들이 승가의 방사에 머무는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법랍이 높고 수행이 깊은 비구에게 공양 올리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 같다. 비구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방사를 배정받는 것이 결국 좋은 음식을 공양받는 것으로 연결이 되니 누구나 좋은 방사를 원했을 것이지만 방 배정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자신들의 방 배정에 불만을 품은 자지비구와 육군비구는 답보 말라뿟따를 승가에서 쫓아내기 위해 그가 바라이죄를 범했다고 비방했다. 이 사실이 부처님께 알려지자 부처님께서는 무근방계를 제정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 구절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구절이 있다. 형상이나 소리로 여래를 구하는 이는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으로 끝끝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설령 눈앞에 여래가 현현하고 여래의 음성이 들려도 이것이 망상인 줄 알고 집착을 버려야 하거늘 전혀 근거 없는 헛된 말에 마음이 끌려 수행자의 본분을 놓쳐 버리는 일이 간간이 있다. 자신에게 부딪치는 경계가 산란할수록 수행자는 사물과 현상을 올바로 볼 수 있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이 꼭 필요할 것이다.

승잔법 제 9조는 가근방계(仮根謗戒)로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가령 암양과 숫양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암양의 이름을 모 비구니, 숫양의 이름을 모 비구라고 하여 그 비구와 비구니가 음행을 저질렀다고 소문을 내는 것이다. 이 조문을 보면 어린 시절 강아지에게 친구의 이름을 붙여서 놀려 주며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지 깔깔거리고 웃었던 철없던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ㆍ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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