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오전 10시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히 제한된 인원만 참석
총무원장 호명 스님 영결사에서 “종단은 지금
과감한 개혁 통해 미래 열어가고 있다”며 가호 발원
수습된 사리 71과 선암사 만세루에 안치
49재 기간 동안 선암사 만세루 분향소 참배 가능

8월31일 오전 10시부터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혜초 대종사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8월30일 오전 10시부터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혜초 대종사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이 영결사를 하고 있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이 영결사를 하고 있다.
원로의장 도광 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원로의장 도광 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중앙종회의장 법담 스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
중앙종회의장 법담 스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

 

호법원장 지현 스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
호법원장 지현 스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원행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대신해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이 조사를 대독하고 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원행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대신해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이 조사를 대독하고 있다.
덕암 화상 문회 회장 혜일 스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
덕암 화상 문회 회장 혜일 스님이 조사를 하고 있다.

 

종도들이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다.
종도들이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다.
상진 스님 집전으로 혜초 대종사의 법구가 강선루에서 다비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상진 스님 집전으로 혜초 대종사의 법구가 강선루에서 다비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혜초 대종사의 법구가 다비장 연화대에 안치되고 있다.
혜초 대종사의 법구가 다비장 연화대에 안치되고 있다.
다비에 앞서 문도들이 불이 붙은 거화봉을 들고 있다.
다비에 앞서 문도들이 불이 붙은 거화봉을 들고 있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외치며 문도들이 연화대에 거화하고 있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외치며 문도들이 연화대에 거화하고 있다.
혜초 대종사의 법구가 안치된 연화대 장작더미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혜초 대종사의 법구가 안치된 연화대 장작더미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다비가 끝난 뒤 문도들이 사리를 수습하고 있다.
다비가 끝난 뒤 문도들이 사리를 수습하고 있다.
수습된 사리.
사리가 담겨 있는 재.
문도 스님들이 무우전에서 사리가 담긴 재에서 사리를 찾아내고 있다.
문도 스님들이 무우전에서 사리가 담긴 재에서 사리를 찾아내고 있다.
수습된 사리 71과.
수습된 사리 71과.

 

한국불교태고종 제17, 18, 19세 종정을 지낸 혜초당(慧草堂) 덕영 대종사(德永 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이 8월 30일 오전 10시부터 태고총림 선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종단장(宗團葬)으로 엄숙히 봉행됐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방역 당국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때문에 극히 제한된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이날 영결식 및 다비식에는 1백여 명의 스님들과 일반 불자 몇 명만 참석한 가운데 엄정하게 엄수됐다.

동방불교대학장 겸 청련사 주지인 상진 스님 집전 및 동방불교대 교학처장 철오 스님 사회로 엄수된 이날 영결식은 명종 5추를 시작으로 개식, 삼귀의례, 반야심경 봉독, 행장소개, 추도묵념, 열반송 봉독, 영결사, 추도사, 조사, 헌화 및 분향, 문도대표 인사, 사홍서원, 발인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추도묵념을 하는 동안 혜초 대종사의 살아생전 육성법문이 경내에 울려 퍼지자 종도 스님들 및 불자들은 혜초 대종사의 살아생전 모습을 회고하며 깊이 추모했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영결사에서 “아무리 왕생정토의 길이 바쁘기로서니 어찌 이리도 황망히 가시옵니까. 아무리 생사가 여일하고 거래(去來)가 따로 없다고는 하지만 스님을 떠나보내는 우리 후학들은 그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라며 “코로나19를 비롯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역경을 겪고 있는 어려운 때에 종단과 이 나라 불교계의 지주이시며 정신적 지도자이신 스님께서 이렇게 훌쩍 열반의 길에 오르시니 실로 망연하고 허탈한 마음 감출 수가 없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또 “돌이켜보면 스님은 자비의 화신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종단이 어려울 때는 근심걱정으로 영일(寧日)이 없으셨고 불교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신명까지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며 “종단은 지금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무고안온(無苦安穩)한 극락정토에 계시더라도 스님의 크신 원력으로 종단이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항상 살펴 주시옵고, 이 나라에 불법이 왕성하도록 가호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라고 발원했다.

원로의장 도광 스님은 추도사에서 “스님께서 오고 가심은 꽃피고 바람 부는 일상사와 다름이 없으련만 대중은 비통한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며 “스님이 주석하심으로 선암사가 위엄이 있었고, 스님이 계심으로서 종조의 종지종풍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지금 선암사 도량엔 종도의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부디 태고의 바람결 따라 어서 돌아오십시오”라고 추도했다.

중앙종회의장 법담 스님은 조사를 통해 “인자하시고 항상 하심하시든 모습으로 반겨주시던 무우전은 주인을 잃어 쓸쓸하고 큰 가르침을 펴시던 법좌는 묵연히 옛 소식을 전하는 듯하니, 모든 종도는 슬픔 더하고 아쉬움은 수미산을 넘었습니다”며 “이제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그러나 오래 그 곳에 계시지는 마시고 다시 오시어 못 다한 서원 이루소서”라고 혜초 대종사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호법원장 지현 스님도 조사를 통해 “조계산은 푸름을 더하건만 무우전에서 포효하시던 혜초 대선사께서 입적하셨다는 갑작스러운 비보는 승가와 재가 불자들을 황망과 비탄의 슬픔으로 젖게 했습니다”며 “일생을 청풍납자로서 수행정진하시며 종단의 수행가풍을 바로세우시고 태고손의 걸음에 선각자로서의 업적은 향수해(香水海)보다 깊을 것입니다. 저희 대중들은 큰스님의 가르침이 높고 분명하니 받들어 모셔 따를 것입니다”라고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원행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관음종 홍파 스님이 대독한 조사에서 “불현 듯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들으매 황망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이는 평소 스님께서 한국불교계에 드리운 공덕이 그만큼 높고 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라며 “참으로 우리 치문(緇門)에 수많은 선지식이 계셨으나 스님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긴 어른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기러기가 창공을 날아갔으되 자취를 남기지 않은 것과 같으니 운수(雲水)의 족적이란 스님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혜초 대종사의 발자취를 회상했다.

덕암 화상 문회를 대표해 조사에 나선 혜일 스님은 “혜초 사형님 당신은 긴 여행을 떠나가셨습니다. 사형님과 만난 지가 어언 50년 반세기가 다 되는 지금 사형님은 부처님 곁으로 대륜 노스님 곁으로 덕암 큰스님 곁으로 갔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며 “우리 곁은 떠난다 하더라도 그쪽에서 오래 계시지 마시고 이 세상에 빨리 오셔서 불교를 위해 태고종을 위해 가피를 내려 주시길 원합니다”라고 혜초 대종사를 그리워했다.

조사에 이어 종도들의 헌화와 분향이 이루어진 뒤, 문도회를 대표해 감사말씀에 나선 재홍 스님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국에 영결식에 참여해주신 대덕 스님들과 불자 및 영결식을 종단장으로 치러주시느라 애쓰신 총무원과 선암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혜초 대종사의 법구는 나무인로왕보살번을 선두로 상진 스님의 집전에 따라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염하며 오전 12시께 강선루에서 다비장이 마련된 선암사 운동장으로 이운됐다. 이어 혜초 대종사의 법구는 미리 마련된 연화대에 안치되고, 20여 명의 스님들이 거화봉을 들고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고 외치며 장작더미에 거화했다.

오후 3시 반께 다비가 끝나자 문도회는 혜초 대종사의 사리를 수습한 뒤 사리함에 담아 선암사 만세루에 안치했다. 혜초 대종사의 사리는 71과가 수습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종정 예하 지허 대종사를 비롯해 총무원장 호명 스님, 원로의장 도광 스님, 중앙종회의장 법담 스님, 호법원장 지현 스님, 각급 기관장 스님, 전국 시도교구종무원장 스님, 전국 비구니회장 스님, 전국 교임전법사 및 한국불교종단협의회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삼종론 총무원장 지민 스님, 조계종 사회부장 성공 스님, 대각종 총무부장 원광 스님, 용화종 총무원장 법광 스님, 본원종 총무원장 만혁 스님, 여래종 총무원장 명안 스님, 염불종 총무원장 원광 스님, 조동종 총무원장 덕우 스님, 법상종 총무원장 해월 스님, 화엄종 총무원장 화응 스님, 불이종 총무원장 도원 스님, (재)일붕선교종 부원장 도명 스님,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진관 스님 등이 동참해서 혜초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도 조화를 보내 혜초 대종사의 열반을 추모했다.

혜초 대종사의 49재는 초재(9. 1)와 막재(10. 13)는 태고총림 선암사 만세루에서 각각 오전 10시에 봉행되고, 2재는 9월 8일 인천 서광사, 3재는 9월 15일 언양 구룡사, 4재는 9월 22일 부산 남운정사, 5재는 9월 29일 화순 학천사, 6재는 10월 6일 안동 유일사에서 문도 스님들이 각각 돌아가면서 오전 10시에 봉행한다.

1945년 청곡사에서 반웅 청봉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혜초 대종사는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해인사 불교전문강원에서 중등과와 사집과, 고등과, 대교과를 수료한 뒤 1953년 해인사에서 인곡 화상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어 1961년 불이성 법륜사에서 전득 덕암 스님을 법사로 건당했다.

1956년 해인대학(현 경남대학) 종교과 및 1976년 일본 경도에 있는 화원대학을 졸업한 혜초 대종사는 1966년 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당선된데 이어 1970년에는 한국불교태고종 중앙종회의원에 당선되는 한편, 태고종 총무원 사회부장과 포교원장, 연수원장, 총무원 부원장 등 요직을 거쳐 1996년 제17대 총무원장에 당선돼 종단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86년과 2004년 불이성 법륜사 주지를 두 번 역임한 혜초 대종사는 1988년 한국불교포교사 협회장으로 취임해 포교활동 및 수행정진에 진력한 데 이어 1993년 2월부터 5월까지 미국 뉴욕 전등사 초청법사로 초대돼 미국 전역에서 순회포교 활동을 펼치며 한국 불교를 미국에 알리는 것은 물론, 후학 양성 및 태고종의 기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 대통령 동백상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혜초 대종사는 지난 8월 26일 0시 주석하던 선암사 무우전에서 세납 89세, 법랍 75세로 원적에 들었다.

순천 선암사=주필 승한

사진=형정숙 선암사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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