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유행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
종교와 정치의 최고 가치는
‘행복’
‘인간다움’ ‘사람다움’ 위해
진정으로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아야 할 때

 

코로나19가 다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 2월과 3월의 신천지 발 유행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8월 15일을 기점으로 제2의 대유행 단계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를, 우리네 삶을, 우리나라를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해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급기야 8월 23일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만 시행하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도대체 걷잡을 수 없는 이 사태, 악의 화신 같은 이 상황. 그러나 불행히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은 뒤 내년 말쯤에나 코로나19 재앙이 끝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빌 게이츠는 한국이 코로나19에 가장 잘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2월과 3월 하루에 몇 백 명씩 쏟아지던 대구 신천지교회 발 코로나19를 민·관·정과 의료계가 헌신적인 노력으로 잘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다섯 달도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는 다시 코로나19의 한복판으로 휘말리고 말았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계속 한 자리에 머물자 당국은 물론 국민들마저 느슨해진 탓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중앙방역대책본부(본부장 정은경)는 휴가철인 7월 말~8월 초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경고해왔다. 자성해본다. 우리 모두 그 말을 들었는가? 정부나 정치, 종교인들은 과연 그 말에 진실로 귀 기울였는가? 비록 일부 종교단체와 극우단체의 불법 집회에서 촉발되긴 했지만, 하루에 몇 백 명씩 쏟아지는 코로나19 확진자 앞에서 오늘,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본다. 종교의 본질(목적)은 무엇인가. 정치의 본질(목적)은 무엇인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행복’이다. ‘행복’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이 지구가, 온 우주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정·무정물 전체가 지향하는 가치 아닌가. 그런데 그 가치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실종됐는가? 누구 탓인가? 무엇 때문인가? 정치는 날마다 정쟁으로 아물 날이 없고, 종교는 종교라는 ‘페르소나(탈)’를 쓰고 자신들의 욕구(욕망)를 최선의 가치인 양 감추고 산다.

사랑제일교회 발 코로나19 재유행 사태는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선으로 가장한 자신의 욕구(욕망) 안에서 “하나님도 죽여버린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주범은 정부니, 문재인 대통령이니, 북한의 바이러스 테러니, 정치·종교적 탄압이니 하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수많은 우민(愚民)들이 그 선동과 세뇌에 넘어간다. 이 사회를 뒤집어엎고, 이 정부를 뒤집어엎고, 타종교를 뒤집어엎고 자신들만 살아남아야 그들이 지향하는 ‘행복’인가.

행복(幸福. happiness)의 정의는 간단하다. ‘복된 좋은 운수, 또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하거나 그러한 상태’를 이른다. 그렇다면 그 행복의 주체는 누군가. 바로 ‘나’다. 나를 빼놓고 어디서 행복을 찾는단 말인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재물은 그 길로 나아가는 하나의 도구(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특히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신천지교회는 그것을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부처님 말년(성도 후 44년)에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왕이 이웃인 왓지연맹을 정복하려 할 때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파멸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은 종교를 떠나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러주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쇠퇴(파멸)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첫 번째, 자주 모여 올바른 뜻을 논의해야 한다. 두 번째,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순종하며 서로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 법을 받들고 금기를 알며 제도를 어기지 않아야 한다. 네 번째, 대중을 보호할 능력이 있고 많은 지식을 가진 비구가 있으면 그를 공경하고 받들어야 한다. 다섯째, 바른 생각을 잘 지켜 간직하고 효도와 공경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여섯째, 음욕을 여의고 깨끗한 행을 닦으며 욕망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일곱째, 남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서며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이 일곱 가지를 지킨다면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며 정법은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정법은 나날이 더욱 자라나 줄어들거나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법과 올바른 대중이 머무는 승가는 파괴되는 일 없이 나날이 번창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구’를 ‘지도자’로, ‘승가’를 ‘국가’로 오독해도 좋다.) 참으로 정법(正法)다운 정법의 말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했다.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은 ‘인간다움’혹은 ‘사람다움’을 뜻한다. 인간다운, 사람다운 사람은 과연 어디 있는가.

-승한 스님(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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