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1815년 봄에 벌어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황제위에서 폐위됐다. 이 전투에서 영국에 승리를 안긴 장군은 뛰어난 전술을 구사한 웰링턴이었다. 여왕은 전투에서 이긴 웰링턴과 용감하게 싸운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승전 축하연을 열었다. 식사가 끝나자 손 씻는 물을 담은 ‘핑거볼’이 나왔다. 한 시골 출신 병사가 그 물을 마셨다. 귀족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병사는 얼굴이 벌게졌다. 이를 본 장군이 얼른 일어나 핑거볼을 들고 말했다.

“워털루에서 용감하게 싸워 승리를 거둔 저 젊은 병사를 본받아 우리 모두 핑거볼로 축배를 듭시다. 브라보!”

웰링턴과 함께 축배를 든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즐거움을 나누었다. 웰링턴이 어떤 인품의 소유자이며 휘하 장병들이 왜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웠는가를 짐작케 하는 일화다.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고 돌아왔다. 친히 마중까지 나간 현종 임금은 장군을 위해 성대한 위로연을 베풀었다. 한참 주흥이 익어갈 무렵이었다. 장군이 시중을 들던 내시를 불러 귀에다 대고 말했다.

“내가 밥을 먹으려고 밥뚜껑을 열어보니 밥이 없네. 자네들이 실수한 것을 알면 임금께서 벌을 내릴 것이네. 내가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우거든 밥을 갖다 놓으시게.”

장군은 임금에게 소변을 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내시는 ‘진지가 식은 듯 하니 따뜻한 것으로 바꾸겠다’며 빈 밥그릇을 가져가고 새 것을 가져왔다. 장군은 이 사실을 끝까지 숨겼다. 은혜를 입은 내시가 동료에게 이 사실을 실토하자 소문이 퍼져 현종 임금도 알게 되었다. 임금은 그 인품에 감동하여 신하들에게 장군의 인품을 귀감으로 삼으라고 했다.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설법을 하고 있는데 장로 마하카사파(摩訶迦葉)가 왔다. 그는 오랫동안 작은 암자에서 혼자 수행을 하느라고 수염과 머리를 제대로 깍지 못해 행색이 덥수룩했다. 옷은 낡고 해어져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업신여겼다. 부처님은 이 같은 비구들의 모습을 보고 마하카사파에게 말했다.

“어서 오너라. 카사파여. 이리로 와서 나와 함께 자리를 나누어 앉자.”

마하카사파는 사양하다가 부처님이 권하자 할수 없이 좁은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앉았다. 부처님이 마하카사파를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모든 나쁜 법을 떠나 밤이나 낮이나 완전한 선정에 머무른다. 카사파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慈), 불상히 여기는 마음(悲), 기뻐하는 마음(喜),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평등한 마음(捨)을 성취했다. 카사파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자리를 나누어 앉는 것이다.”

『잡아함』 41권 1142경 「납의중경(衲衣重經)」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나중에 선종에서 부처님이 세 차례나 가섭에게 전법했다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의 하나가 되었다. 예로 든 세 가지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존경받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잘난 척하거나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덜 여문 사람일수록 자기 허물은 보지 않고 남의 잘못만 본다. 돈 몇 푼 있다고 가난한 사람을 종부리듯 하는 사람, 조금 힘 있는 자리에 있다고 군림하려는 사람이 그렇다. 더욱이 종교생활을 한다는 사람이 겸손은커녕 ‘갑질’을 하기도 한다. 그런 꼴을 보면 토가 나올 정도다.

부처님의 열 가지 별명 가운데 ‘위없는 신사(無上士)’가 있다. 인격과 교양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부처님과 같은 신사의 덕성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신사인 척하면서 뼛속까지 밴 속물 근성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지 않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불교평론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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