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물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우리 모두 참회할 때
참회만큼 수승한
불교수행법도 없어
산에 올라
참회나무 앞에서
부처님께 懺悔하듯
참회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遺訓)이다. 그런 게으름을 다그치며 수행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로 산만큼 좋은 곳도 없다.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기도하듯 저 혼자 알아서 열심히 잘 오르고, 저 혼자 알아서 열심히 잘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산은 게으름과는 아주 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산을 자주 오른다. 게으른 나에게 산은 나 혼자 열심히 잘 오르고, 올라서 잘 읽고, 잘 내려올 수 있는 내 ‘마음경(經)’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경’ 중에 수락산이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 경기도 남양주와 의정부에 걸쳐있는 산이다. 그 수락산에 오를 때마다 나에겐 좀 야릇한 버릇이 있다. 일행보다 항상 여남은 발자국씩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좀 흐른 뒤엔 일행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 화들짝 놀라 걸음을 재촉하면 일행은 벌써 바위에 차분히 걸터 앉아 땀을 식히고 있다. 그러면서 놀린다.

“스님은 거북이 띱니까? 맨날 산에 다니면서 왜 그렇게 산을 못 타시는 거요?”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은밀히 미소 짓는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열심히 그 산의 나무와 풀들에게 말을 걸며 간다. 광대싸리를 만나면 광대싸리의 말을, 졸참나무를 만나면 졸참나무의 말을, 야생화를 만나면 야생화의 말을 열심히 나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광대싸리가 되고, 졸참나무가 되고, 야생화가 된다. 산과 풀과 나무의 평화가 되어 있는 나를 본다. 그러다보니 나의 산행은 항상 뒤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락산에 가면 나를 더욱 뒤쳐지게 하는 나무가 있다. ‘참회나무’다. 기실, 나는 참회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정확히 잘 모른다. 단지 ‘참회’나무라는, 그래서 항상 부처님 앞에 ‘참회(懺悔)하고 서 있는 듯’ 느껴지는 그 ‘말’이 좋아 그 나무를 좋아할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실제로 그 참회나무 앞에 서면 저절로 부처님 앞에 ‘참회(懺悔)하는 마음’이 된다. 참회나무와 함께 참회하듯 서서 부처님 앞에 참회하는 중생이 된다.

수락산 참회나무 앞에 가서 그렇게 참회를 하고 돌아온 어느 날, 그 이름말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참회나무는 ‘노박덩굴과의 낙엽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인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5~6월에 자주색 또는 흰색을 띤 녹색꽃이 취산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삭과로 10월에 익는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여담으로 모든 이름에 ‘참’자가 들어가면 최고로 좋은 것이 된다는 뜻이라며, 참회나무도 회나무 가운데 최고로 좋은 나무이기 때문에 참회나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좀 쑥스러워졌다. 명색이 글 쓰는 사람이 참회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도 모르고 산데다, 수락산에 갈 때마다 참회나무라는 이름이 그냥 좋아서, 그리고 그 참회나무 앞에만 서면 문득문득 거칠고 교만하게 살아온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잠시나마 부처님 앞에 참회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어서 그 참회나무 앞에 한참씩 머물다 오곤 했는데, 실제로 참회나무라는 학명에는 그런 뜻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좀 또 어떠랴. 참회나무 앞에서 내가 멋도 모르고 ‘참회(懺悔)나무’가 되어 참회 좀하고 왔기로서니, 그 참회나무가 자신을 욕되게 했다고 나를 책망하진 않았을 터다. 오히려 참회나무 앞에서 참회진언을 하듯 내 내면의 말들을 남김없이 털어놓고 오는 나에게 어쩌면 참회나무는 부처님의 미소처럼 가지를 흔들며 박수쳐주었을지도 모를 터다. 실제로 참회나무 앞에 서서 참회를 하다보면 가장 먼저 ‘나’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나’가 없어지면 그런 ‘나’로 살아온 교만한 ‘나’가 가장 먼저 용서되고, 그런 ‘나’가 용서되면 그런 ‘나’에게 불을 질렀던 모든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용서가 되고 화해가 된다. 그러면 그 자리가 바로 참회(懺悔) 자리가 되고, 부처님 자리가 된다.

얼마 전에도 도반들과 함께 수락산에 올랐다. 광대싸리를 지나, 졸참나무를 지나, 물푸레나무를 지나 또 참회나무 앞에 섰다. 도반 한 명이 또 놀렸다.

“스님은 오늘도 참회하실 거지요. 기왕에 참회할 것이면 스님 것만 참회하지 말고 우리 중생들 것도 좀 참회해주십시오.”

그 말을 들으며, 코로나19로, 정치로, 경제로, 사회로 참회할 것이 너무나 많고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참회나무 부처님’의 여린 이파리들이 천수천안의 손바닥을 흔들며 온 산 가득 초록 미소를 흩날렸다.

불교수행법 중에 참회만큼 수승한 수행법도 없다. 산이고 들이고 절이고 교회고 모두들 진짜로 그 앞에서 참회하고 사는 삶을 살면 좋겠다.

-승한 스님(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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