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월 관휴의 산거시(山居詩)

중국선시에 있어서 대표적인 산거시를 남기고 있는 사람은 선월 관휴(禪月貫休, 832∼912)다. 선월 관휴는 절강성 난계에서 태어났다. 839년 그의 나이 8세 때 안화사(安和寺)에 출가했다. 시(詩)와 서(書)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는데 특히 시승(詩僧)으로 불릴 만큼 시에 재주가 특출했다. 방랑으로 일생을 보냈으며 승속을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친분을 두텁게 쌓았다. 다음의 시는 그가 산중생활의 기쁨을 경쾌하고도 날렵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안개바위 푸른 틈을 뉘 있어 그릴까나
계수향 떨어지는 물에 풀잎 향기 섞이네
안개 걷고 구름 쓸며 운모(雲母)를 뜯나니
돌을 파고 솔 옮기다 복령을 얻었네
꽃 속의 예쁜 새는 경쇠 소리 엿보고
물 같은 어린 이끼 금병을 덮네
욕하려면 욕하고 웃으려면 웃게나
천지가 개벽해도 또한 거기 맡기네.

翠竇煙巖畵不成 桂香瀑沫雜芳馨
撥霞掃雲和雲母 掘石移松得茯苓
好鳥傍花窺玉磬 嫩苔和水沒金甁
從他人說從他笑 地覆天飜也只寧

깊은 산 속에서 이처럼 절묘한 풍경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첫 1, 2구부터 시의 운치가 기막히게 살아나고 있다.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종류로 한방의 약재로도 쓰인다. '꽃 속의 예쁜 새는 경쇠소리 엿보고'가 산사의 평화로움,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한폭의 명화처럼 표현한 것이라면 '욕하려면 욕하고 웃으려면 웃게나'는 깨침을 구하고 있는 필자 자신인 산승의 유유자적함을 드러내고 있다.

선월 관휴는 이 같은 산거시 십 수편을 전해주고 있는데 한결 같이 산뜻하고 경쾌하며 활기가 넘친다. 고요하고 적막할 것만 같은 심산유곡의 산사 생활이 산의 온갖 정물(情物)을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활기차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산승 선월 관휴의 선적 관조 때문에 비롯된다. 이는 '은둔'과 '도피' 속에서 자연을 예찬하는 도가류의 시하고는 전격적으로 대비된다. 도가류의 시가 대부분 세속 삶에 대한 '체념'을 진하게 암시하고 있는데 반해 선월관휴의 산거시는 유유자적함 가운데서도 깨달음의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세속을 떠나 수행자 신분으로 은둔의 삶을 살고 있지만 '체념'과 '도피'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다. 오히려 '깨침'을 향한 삶에서 무위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고 산속의 생활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이미 무위진인(無位眞人)의 길을 닦아 완성해 놓았다. 따라서 자신과 자연의 정물이 따로 있지 않다. 그가 있는 그 자리가 주객일여(主客一如)의 경지가 놓인 자리다. 이를 선월 관휴는 산사의 정경을 빌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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